[교과부-본지 공동기획]대학경쟁력 교육에서 찾다(4) 고려대

요즘 대학생들은 조모임 또는 팀플레이로 불리는 그룹별 학습활동을 되도록 피하고 싶어한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도 바쁜데 팀을 이뤄 별도의 시간을 내 토론하거나 수업을 준비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이하 교육역량강화사업) 성과평가 우수사례로 뽑힌 고려대 ‘자기주도 창의설계 프로그램’(이하 CCP·Creative Challenger Program)은 그래서 더욱 눈에 띈다. CCP는 그룹별 활동을 통한 협력활동, 기존 연구 성과를 넘어선 독창적이고 새로운 주제 선정이 전제 조건이다. 활동 주제나 분야를 한정짓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들 스스로 계획해 만들어내도록 한 것이다.

■ 학습부터 공모전, 취업까지 총체적 성과 = CCP는 학부생 3~4명으로 이뤄진 팀을 꾸려 관심 분야의 연구 주제를 설정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아 여러 분야,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 있는 게 최대 특징이다. 분야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자연과학 △인문사회 △공학 및 정보통신 △경제경영 △문화예술체육 등 5개 큰 틀로 나눴을 뿐, 어떤 주제를 다룰 것인지는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 됐다.

학부생 스스로 프로그램의 목표와 내용을 정하고 나면 활동 방법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연구와 현장 탐방·실습, 실험 등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접근방법이 허용된다. 큰 틀에서의 분야만 정해질 뿐, 프로그램 자체의 진행 방향은 학생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각 팀별로 지도교수가 있긴 하지만 외부 기관과의 연락 등 꼭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을 줄 뿐이다.

지난해 진행된 CCP의 경우 홍보·모집 기간을 거쳐 교수학습개발원이 지원한 팀들을 1차 심사해 3배수 선발하고, 분야별 심사 교수들의 2차 심사를 통해 참여 팀을 확정했다. 팀별 활동은 6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이뤄졌다. 활동 진행보고서와 중간보고서, 최종보고서를 제출하는 절차가 있는 데다 학기 수업과도 겹쳐 학생들 입장에서는 만만찮은 일정이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구체화시켜 실행에 옮기기까지 전 과정을 학생들이 준비하므로 팀플레이를 주로 하는 수업이나 공모전, 취업까지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귀띔이다. 보고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같은 실무적 단계도 거쳐야 해 일종의 시뮬레이션 모델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CCP를 주관하는 고려대 교수학습개발원 이희경 원장(영어영문학과 교수)은 “말 그대로 학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은 물론 그룹별 활동이나 프레젠테이션, 보고서 작성 절차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며 “CCP 결과에 바탕해 대외 공모전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다. CCP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단계가 작은 모형이 돼 어느 곳에서나 적용 가능한 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 “주인공은 학생” 교육·봉사 연계 효과도 = 고려대 CCP가 다른 대학들의 교육역량강화사업 우수사례와 차별화되는 것은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참여 학생들이 당장에는 막막함을 겪더라도 ‘자기주도 창의설계’란 프로그램 이름에 걸맞게 배우고 경험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2회 CCP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이 같은 프로그램 내용이 완성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기존 수업이나 공모전, 직장 프로젝트가 특정 주제나 분야를 선정해 결과물을 요구하는 반면 CCP는 온갖 내용으로 확장할 수 있는 ‘오픈 프로그램’을 지향했다. 대학생다운 열린 생각을 하고, 이를 실현시키는 힘까지 기르도록 했다고 교수학습개발원 측은 설명했다.

실제로 학문적 연구부터 실생활 적용, 지역사회 봉사와 재능 기부까지 다채로운 주제가 고대생들의 관심사가 됐다. 이번에 CCP 우수팀으로 뽑힌 6개 팀의 연구 내용도 제각각이다. △스마트 기기에 장착 가능한 시각장애인용 인터페이스 개발 △대학 스포츠 선수와 저소득층 청소년간 체육 멘토링 프로그램 △대학 내 도시농업 가능성 탐구 △표면 처리 금속 나노 입자를 분산시킨 유기물의 광학적 특성 향상 연구 △전기-전사 조절 회로, 중금속 정화 미생물 관련 국제대회 참가 △지역사회 성장 토대 마련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

우수팀에 뽑히지는 못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에코백을 만들어 화제가 된 팀도 있었다. 단순히 백을 디자인해 판 수익금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념품 사업 노하우를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소식이 널리 퍼져 프로 디자이너의 재능 기부를 받기도 했다.

이희경 원장은 “CCP의 가장 좋은 점은 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CCP 참가 학생팀의 연구 주제를 훑어보면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며 “대부분 수업이나 회사 업무는 결국 특정 주제로 귀결되지만, CCP는 이런 내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응용력’도 길러주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CCP에 참가한 많은 학생팀이 전공 분야와 실생활을 연결시키거나 일종의 재능 기부 방식을 택한 점도 주목거리다. CCP를 통해 기계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전공 분야를 살려 스마트 기기에 활용될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시스템을 개발했고, 운동부 학생들은 인근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직접 운동을 가르쳤다. 자연스레 교육과 봉사가 연계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학생들은 프로그램 참여로 팀원간 협력을 비롯해 사회적 관계로까지 시선을 넓히는 ‘보이지 않는 성과’ 역시 큰 소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 50여 팀 참여 속 학생·교수 높은 만족도 = CCP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부분 힘들었다는 말부터 먼저 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팀을 꾸려 의견을 조율해 성과를 내는 게 녹록치 않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학생들은 “힘들었다”에 그치지 않고 “그만큼 얻은 게 더 많다”는 말을 꼭 덧붙였다. 힘든 과정을 겪은 만큼 성취감도 컸고 자신감도 얻었다는 게다.

CCP에 참여한 46개 팀 169명의 학생들은 다각적 프로그램의 장점을 첫 손에 꼽았다. 이들은 △주체적으로 목표를 정해 연구를 수행한 점 △개인이 하기 힘들거나 재정적 문제로 하지 못했던 연구를 할 수 있었던 점 △대학원에서 연구하기 힘든 주제를 자유롭게 공부했던 점 △연구 수행에 필요한 부분을 알게 된 점 △팀워크와 리더십을 적용해 협력한 점 등을 들었다.

참여 학생들의 만족도는 CCP 설문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79%(매우 그렇다: 28%, 그렇다: 51%)에 달한 것을 비롯해 다음 학기 CCP 참여 희망 여부가 무려 95%(매우 그렇다: 51%, 그렇다: 44%)에 이르렀다. CCP를 통해 관심 분야에 대한 흥미가 더 생겼다는 답변도 94%(매우 그렇다: 51%, 그렇다: 43%)나 됐다. 협력 학습을 통한 창의적 문제 해결능력 향상을 묻는 질문에도 78%(매우 그렇다: 40%, 그렇다: 38%)가 긍정적 답변을 내놓는 등 대부분 항목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도교수들도 CCP 프로그램과 참여 학생들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전반적 만족도는 85%(매우 그렇다: 30%, 조금 그렇다: 55%) 수준이었으며 다음 학기 지도교수 참여 여부에도 80%(매우 그렇다: 50%, 조금 그렇다: 30%)가 참여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생들의 성실성에는 85%(매우 그렇다: 70%, 조금 그렇다: 15%)가, 이로 인해 학생들이 창의적 연구를 실현했는지에 대해서는 90%(매우 그렇다: 65%, 조금 그렇다: 25%)가 합격점을 줬다.

[인터뷰]서지원(기계공학·4)

스마트 기기에 장착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인터페이스를 개발한 ‘4BLACK’팀의 리더 서지원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일을 마무리한 기억, 팀원끼리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노력한 경험이 남았다”고 CCP로 활동한 반 년을 요약했다.

- 팀명의 뜻이 궁금하다. 연구 내용은 무엇인지.
“시각장애인(BLACK)을 위한(for) 팀이란 의미에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 모임 도중 우연히 팀원 하나가 장애인 대상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해 힌트를 얻었다. 스마트폰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적용돼 시각장애인들이 활용할 수 없는 구조다. 시각장애인용 홈페이지를 보면 이미지는 없고 문자 형태로 돼 있다. 그 점에 착안해 그래픽을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점자 형식으로 변환가능한 기기를 만들었다.”

-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콘셉트 잡는 게 제일 힘들었다. 생각하는 포인트도 조금 달랐다. 팀이 기계공학 전공 3명과 경영학 전공 1명으로 짜여졌는데 분야가 다르다 보니 기기 메커니즘 이해에 차이가 있고 역할 배분도 어려워 트러블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법을 알게 됐달까. 시각장애인 인터뷰나 성과를 문서로 정리하는 부분은 경영학을 전공한 팀원이 많이 도와줬다.”

- CCP를 마치고 얻은 점이 있다면.
“리더로 팀을 꾸린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수업으로 바쁜 시기도 겹쳐 스트레스도 받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는 게 괜찮은 경험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어떤 주제나 해야 할 목표를 정해주는 수업과는 달라서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런 결과도 안 나오니까 더 열심히 매달렸던 것 같다.”

[인터뷰]최윤진(체육교육·4)

‘SPORTS KU #2’팀은 운동부 선수와 저소득층 청소년의 체육 멘토링 프로그램을 펼쳤다. 팀 리더인 최윤진 씨는 “이번 프로그램은 저소득층 어린이들에 대한 봉사 뿐 아니라 체육특기자 출신 친구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계기가 있었나.
“전공이 체육교육인 것도 있고, 체육특기자로 들어온 운동부 친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운동부 학생들이 운동 외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만약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체육 지도를 하는 것까지 생각했다. 평소 그런 고민이 있었는데 팀원 중 하나가 일본 와세다대에서 이런 멘토링 프로그램을 보고 왔다. 아이디어가 서로 맞아 프로그램을 하기로 정했다.”

-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점은.
“의외의 모습을 많이 봤다. 운동을 가르쳐준 청소년들 중에 매일 핸드폰 게임만 하는 왕따인 아이가 있었는데, 나중엔 먼저 찾아와 같이 운동해달라고 말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운동부 친구가 애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도 봤다. 힘들었던 점은 멘토-멘티 관리였다. 아이들도 의지가 부족했지만, 운동부 친구들도 멘토링 프로그램 열리는 토요일이 운동을 쉬는 날이라 많이 힘들어했다. 지속적 사람 관리가 참 힘들다고 느꼈다.”

- CCP는 스펙과 크게 연관이 없지 않나.
“스펙 쌓는다는 생각은 없었다. 운동부 친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을지 고민했었는데, 마침 CCP 같은 계기가 있어 실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운동부 학생의 봉사나 재능 기부 사례로 다른 학교에도 전파됐으면 좋겠다. 졸업반이라 취업 준비 때문에 힘들겠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음 기회에도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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