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양교육의 본질이다.”

‘인간’ 또는 ‘인류’를 의미하는 말인 ‘후마니타스(Humanitas)’는 원래 철학자 키케로가 ‘문명을 만드는 인간’이란 뜻으로 사용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의 생각과 유사한 ‘이상적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다시 부활시켰다.

경희대가 이번 학기부터 대학 교양교육의 본질을 되찾기 위해 다른 대학과 차별화한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프로그램은 △중핵교과 △배분이수교과 △기초교과 △자유이수교과 4개의 트랙으로 운영된다. 총괄하는 거버넌스 기구도 마련했다. 바로 ‘후마니타스 칼리지’다.

부총장급에 해당하는 ‘대학장’을 맡아 이를 진두지휘하는 이는 대표적 인문학자인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사진>다. 조인원 총장의 부탁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설계하고, 1년 6개월여동안 준비위원회를 이끌어 왔다. 그리고 지난 3월 1일, 드디어 첫 발을 내딛었다.

“학제성의 원칙, 지구성·다양성·복잡성의 원칙, 지평융합의 원칙, 비직선성의 원칙, 문제탐색의 원칙, 핵심공유의 원칙, 여섯 가지 원칙입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이 원칙에 맞춰 교양교육에 대한 접근부터 달리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도 대학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많이 고생했다는 뜻이다. 기존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그야말로 ‘혁신’이 진행됐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특히 4개의 트랙 중 하나인 ‘중핵과목’은 이름 그대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핵심이다.

“1년에 두 과목을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 모두 합쳐 5000여명의 학생이 동일한 텍스트를 통해 공부합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철학·문학·역사·사회·자연과학이 모두 들어가 있어요. 획기적인 일인 동시에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죠.”

생소한 과목명만큼 내용도 생소하다. 1학기에는 ‘문명전개의 지구적 문맥 I : 인간의 가치 탐색’을 배운다. 중심주제는 인간의 이해다. 2학기에는 ‘문명전개의 지구적 문맥 II : 우리가 사는 세계’다. 중심주제는 세계의 이해다. 인간과 세계. 신입생들은 1년 동안 이 과목을 들어야 한다.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진은 무려 50여명에 달한다. 그동안 교양학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교수들이 주축이 됐고, 외부에서 쟁쟁한 교수들도 영입했다.

“한 사람이 이 과목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래서 ‘좋다, 가르치는 사람을 우리가 직접 양성하자. 서로 공부하고 연구해서 가장 강한 교양교육 교수진을 만들자’ 다짐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교수들이 고생을 좀 해야 할 겁니다. 이번 학기 내내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이 진행됩니다.”

이미 몇 차례의 워크숍이 진행됐다. 이어질 워크숍에도 계속 참여해야 한다. 자신의 전공 내에서 알고 있는 것을 풀어놓고, 남들과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배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중핵과목의 제 1장이 사랑인데, 이를 위해 철학·문학·물리학도 들어오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리히 프롬·오비디우스 등이 등장합니다. 워크숍에 전문가를 모셔다가 배우고, 교수들은 ‘이렇게 가르치겠다’는 발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게 어색할지 몰라도 저는 이들이 가르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중핵과목 이외에 학생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7개의 중요한 주제 영역을 다루는 ‘배분이수교과’와 글쓰기·영어·시민교육 등을 포함한 ‘기초교과’, 외국어·체육·예술 등 ‘자유이수교과’ 역시 녹록치 않다. 4개의 트랙과 모든 과목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지금까지 우리 대학들의 교양교육은 어땠습니까. 전공의 일부를 가르치는 수준 정도에 그쳤습니다. 물론, 전공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대학교육에는 전공 외에도 제대로 된 교양교육도 필요합니다.”

결국, 후마나티스 칼리지는 학부교육의 지속적 혁신을 통해 대학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겠다는 경희대의 의지, 도 대학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양교육의 미래도 달려 있다는 게 도 대학장의 설명이다.

“교육이 뭘까요? 들어올 때는 다른 인간이 되서 다른 인간이 돼 대학의 문을 나서는 겁니다. 인간을 형성시킨다는 게 그런 걸 겁니다. 교육의 최대목표는 자기 변화입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 보고 있어요.”

지금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길은 험난하다.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도 대학장의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눈이 번뜩인다.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기다렸다는 듯 이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 신입생이라 할지라도 모두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행동을 지배하고 자기를 움직이게 강요했던 이 가치관을 대학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게 맞는 것일까’는 의문과 함께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겁니다. 자기를 지배해 온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도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목표는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김기중 기자 gizoong@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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