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대회 단체전 우승 주역, 구기종목 최초 금메달

“1973년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평소 우승해도 울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시상식에 올라섰을 때 감격이 너무 컸다. 다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었다. 발써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의 감동이 생생하다.”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가 최근 보직 인사에서 기획처장을 맡았다. 대학행정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에리사 씨를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전설적인 탁구선수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리사 처장은 지난 1973년 체코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의 주역이다. 우리나라 스포츠 사상 구기종목의 첫 세계 제패였다.

TV도 별로 없던 시절 라디오 중계를 통해 전해지는 감격스런 승전보는 힘들고 어렵던 시절 국민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귀국한 선수단은 시청 앞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쳤으며 그 맨 앞에서 가장 환영을 받은 선수가 이에리사였다. 

이 처장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번번이 3위를 했다. 한 번은 꼭 넘어서고 싶었는데 예선에서 중국을 이겼을 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며 “그 상승세가 이어져 결승에서 일본을 3대 1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당시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피나는 훈련의 결과였다고 말한다.

이 처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훈련을 했다. 훈련을 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밥 먹을 때나 심지어 잘 때도 항상 시합 생각만 했다. 실수 없이 한 번에 랠리 1000번을 했고, 라켓이 손에 있는지 없는지 감각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맹훈련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1977년 현역은퇴를 하고 이듬해부터 서독에 진출,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다. 서울올림픽과 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탁구 감독을 맡았으며, 지난 2005년 3월부터 2008년까지 태릉선수촌장을 역임했다. 임명 당시 일각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인사’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었다.

그는 “1966년 태릉선수촌이 설립된 이래로 여성이 촌장을 맡은 건 처음이었다. 태릉선수촌은 선수시절 내가 자라온 집과 같기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재임기간에 훈련시설을 리모델링하고 훈련비를 대회 전 105일에서 200일로 늘렸다. 지도자 수당도 올리는 등 선수와 지도자들이 훈련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힘썼다. 그 결과 우리나라 올림픽 대표팀은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7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며, 그에게 향했던 일각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했다.

이번 새학기 기획처장 보직을 맡으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에리사 처장은 용인대에 먼저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태릉선수촌장을 맡을 당시, 용인대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그때의 도움이 있어서 태릉선수촌장 재임기간 자신감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이 처장은 “비유도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기획처장이라는 보직을 맡게 돼 영광스럽지만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학내 구성원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세계적인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체육행정가로서 발군의 역량을 쌓아온 이에리사 기획처장이 대학 행정에 어떤 변화와 바람을 몰고 올지 학내 안팎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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