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보장과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전에 표현을 억제하는 행정적 장치들에 대해 일관되게 검열 판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영화는 물론 음반 및 비디오, 방송광고 등 사전에 표현물을 제출하게 한 뒤 유통 여부를 행정기관이 결정하는 시스템을 헌법재판소는 가차없이 검열이라고 단정지었다. 민간기구가 행정기관의 위임을 받아 사전 심의를 담당하는 경우에도 검열 딱지를 떼기 어려웠다.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면 어떠한 표현행위도 사전에 검열할 수 없다. 방영금지가처분과 같은 예외가 있으나 그것은 사적인 분쟁을 사법기관이 해결하는 절차라고 해석돼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일찍이 정리되었다.
우리들 삶에서 거짓말은 일상적이다. 거짓말과 거짓말 아닌 것의 경계가 그렇게 명확한 것 같지도 않다.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라는 지켜질 가능성이 낮은 말을 던져 놓고 물경 몇 년씩 보내기 일쑤다. ‘밥’ 먹으로 가자고 해 놓고 정작 식탁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국물을 마시고 찬도 먹는다. 누군가를 장미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묘사하거나 멀쩡한 사람을 달덩이 같다고 너스레를 떠는 경우도 너무 잦다. 종이편지, 이메일, 문자 메시지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여러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온라인 통신망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거짓말을 하면서 지내고 대개의 경우 그러한 거짓말을 기분 괜찮은 거짓말로 간주하거나 굳이 거짓말이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무하면서 살아간다.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허위의 통신’을 할 경우 처벌받을까? 작년 12월 28일 헌법재판소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공익’이라는 개념이 너무 추상적인데다 저마다의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원리로서 명확성의 요청,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공익의 개념이 이현령 비현령, 혹은 고무줄처럼 제각각의 것으로 쓰일 수 있어서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국민들로서는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명의 헌법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허위사실의 표현’도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 영역에 포함되며 결국 ‘허위의 통신’도 표현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있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그로부터 두 달 보름 후, 이른바 이상호 기자의 X-파일 사건에서 대법원은 ‘비상한 공적관심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굴지의 재벌 경영진과 유력 일간지 사장이 대통령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문제, 정치인 및 검찰고위 관계자에게 이른바 추석 떡값을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에 대해 이미 8년 전에 이뤄진 일로 시의성이 없고 비상한 공적관심사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5명의 대법관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 선거와 검찰조직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태는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 매우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돼 있다는 반대의견을 냈으나 다수의견에 묻혔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이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MBC 이상호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두 사람은 허위의 사실을 말해서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공적인물들이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눈 것이 진실한 사실임을 공표했다는 이유로 법적인 책임을 졌다.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공적인 인물들이 모여 국가질서의 근간을 흔들 정도의 대화를 몰래 나눈 자료를 어렵게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대화한 사실과 대화의 내용이 설령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이라고 하더라도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말지어다. 대법원의 결론이다. 소수의견이 지적하듯이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어떤 경우에도 통신비밀의 공개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익을 핑계로 허위통신을 규제하려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고 허위사실의 표현도 헌법의 보호영역 내에 있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의 작년 말 결정 취지에 비춰보건대 언론의 참말까지도 유죄라고 봉쇄해버린 올 봄의 대법원 ‘비상한 공적관심사’론이 오히려 비상한 공적 관심사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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