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전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지난해 인천대 한 강의실. 문이 열리고 강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앉아 있는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여러분은 졸업하면 뭐가 되나요?” 대답이 없는 학생들을 향해 강사는 나직이 말했다. “여기 앉은 여러분의 90%는 노동자가 되거나 최소한 노동자의 가족이 됩니다.”

인천대 학생들은 ‘노동자’라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단어를 통해 하종강<사진> 전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그는 30년 가까이 노동현장을 누비며 노동자 교육 전문가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지난 3월, 하 씨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5년 동안 출강했던 인천대에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됐고 공교롭게 23년 활동한 연구소 문도 닫게 됐다.

“이번 학기부터 인천대 강의를 안 합니다. 비정규직 강사는 잘려도 학교에서 아무런 통보가 없어요. 새 학기쯤 조교가 전화로 ‘강의계획서 입력하세요’라고 하면 ‘이번 학기 강의가 개설되는구나’라고 아는 거고 전화가 없으면 잘린 거죠.”

인천대는 그를 내보내면서 ‘예외적 상황(변호사, 회계사 등)을 제외하고는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만 채용한다’는 규정을 들었지만, 그는 5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최고점에 가까운 강의평가 점수를 받아온 인기 강사였다.

“이전에도 (박사 학위자 채용)규정이 있었지만, 올해부터 제대로 적용하려 한다고 하더라고요. 2년 전에도 인천대에서 이런 적이 있었어요. ‘한국사회와 노동문제’를 강좌는 놓아두고 강사를 바꿔버렸죠. 개강 전에 학생들이 미리 알고 항의해 다시 수업을 맡을 수 있었죠.”

대학의 매몰찬 행동에 싸울 법도 한 데, 그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듯 보였다.

“싸우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연구소 직원으로 있으면서 대학 강사를 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비정규직법 대상자도 아니에요. 대학 강의를 하면서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시간이 모자란 데, 내가 강의를 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그 강의를 좋아하고 생각이 변화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던 거죠. 다른 부당 해고라면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랐겠지만, 대학 강사는 제가 연연해 하는 직책이 아닙니다.”

그는 요즘 전국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노동자를 만나고 특별강연 등 여러 자리를 통해 대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노동문제에 대해 왜곡된 시각과 부족한 소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OECD 가입국 중 많은 나라는 초·중·고 제도권 교육에서 노동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죠. 다른 나라에서는 교장선생님, 장관이 노조에 가입하고 심지어 경찰노조 군인노조가 있는 나라도 적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스스로 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사회가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이라는 점에 그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라는 단어를 무슨 ‘빨갱이’와 비슷한 단어로 생각하죠.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인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생각인 것으로 취급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변화와 조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문제에 대한 생각도 언젠가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대학강사, 소장 자리를 내려놓은 그에게 여기저기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는 잠시 공백기를 두려고 한다. 노동운동가로서 그의 삶이 특별히 달라질 일은 없다.

“전국에 있는 노동자들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감하고 싶은 게 저의 꿈이죠. ‘당신 남편이 귀밑머리가 하얘지도록 평생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냐’는 질문에 제 아내가 ‘딴 거 할까봐 걱정되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에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굉장히 오래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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