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본지 논설위원·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

“한국에 KAIST가 있다는 게 부럽다.”

세계 곳곳의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투자하는 일본 벤처 투자자들이 하는 말이다. 기술력과 창의성,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한국 벤처기업들의 핵심 엔지니어들을 보면 KAIST 출신들이 많다는 직접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넓게 보면 KAIST 출신들은 우수한 엔지니어로서 직접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기여했고, 공과대학 교수로서 공학교육을 선진화해 엔지니어 후속 세대를 양성했으며, 기반 연구를 통하여 산업발전의 초석을 쌓아왔다.

그랬던 KAIST가 지금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다. 재학생들의 자살이라는 외부적으로 표출된 현상,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안타깝고 심각한 문제다. KAIST 출신으로서, 후배들의 잇따른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표출된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이 철저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문제를 풀어가는 대응 방식도 최고의 교육기관답지 않다는 데에 있다.

KAIST가 선도적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기관이라면 당연히 엔지니어링·과학 뿐 아니라 리더로서의 자질을 배양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먼저 공학·과학적 지식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어야 하며, 융복합화 하는 기술 추세에 맞춰 다양한 분야의 핵심 기초지식이 튼튼한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또, 급변하는 사회 및 기술의 변화 추이를 정확히 읽어내는 지혜를 쌓아야 한다. 졸업생들이 인간적인 매력이 흘러넘치는 리더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KAIST의 의무다. 그래서 졸업생들은 겸허함과 도덕성, 봉사와 협동정신,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잘 조화돼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KAIST의 교육체제는 재학생들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설계·운영돼야 하며, 주기적인 평가를 통하여 개선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밖으로 드러난 KAIST의 교육체제는 그렇지 못하다. 상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학점이라는 숫자놀음의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체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체제에서 학생들은 탐구하는 학습자가 아닌 학점 기계로 전락한다.

따라서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체계를 쌓으려고 하기보다는 점수 잘 받는 공부에 열을 올린다. 잘 가르치는 과목보다는 학점 따기 쉬운 과목을 좇는다. 긴 안목에서 보아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데에 필요한 인접학문과 기초학문을 공부해 융복합화의 기술발전추세를 따라가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과목군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서 리더로서 꼭 필요한 미래를 보는 지혜를 쌓지 못하게 되며 도전정신과 창의성도 말살되기 쉽다. 또, 무한 경쟁에 파묻혀 협동정신과 도덕성도 길러질 수 없다. 그러니 학교생활은 꿈을 앗아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고, 꿈 없는 불행한 학생들에게 인간적 매력은 차라리 사치스러운 존재이다.

교육체제도 문제다. 다양한 입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는 매우 교육적이다. 그렇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신입생 선발제도를 바꾸었으면 과학고 출신 학생들만 선발하여 교육하던 옛 교육체제도 동시에 바꿨어야 했다.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교육체제가 동시에 마련되어야 했던 것이다.

대학운영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지금의 이 심각한 문제들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학내 구성원은 교수진이다. 그러나 총장과 학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교수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총장의 독선적 운영체제가 낳은 결과물일 것이다. 이러한 면모의 일부는 학생들과의 대화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KAIST 비극의 근저에는 총장의 낡은 교육철학과 낡은 학교운영방식이 두껍게 깔려있다. 그러므로 그 낡은 교육철학과 그 낡은 운영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KAIST의 비극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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