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교수, 블로그에서 언론사 자성 촉구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카이스트 사태로 논란의 핵심이 된 영어강의와 관련, 대학평가를 해온 언론사들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이준구 교수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영어강의 대해 “정말이지 그 동안 내가 만나본 교수들 중 영어 강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며 “우리말로 강의할 때에 비해 강의 효율이 엄청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고 전했다.

 

이어 “대학 당국이 앞뒤 가릴 것 없이 영어강의를 밀어붙이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언론사에 의한 대학평가일 것”이라며 “국제화의 정도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평가항목이 바로 영어강의의 비율”이라며 대학평가를 실시하는 언론사 책임을 지적했다.

 

그는 “얼마 전 사립대 교수로 있는 제자에게 들은 얘기가 하나 있다. 언론사의 대학평가 순위에서 경쟁대학에 조금이라도 밀리게 되면 총장이 이사회에 불려가 엄청나게 야단을 맞고 온다는 것이었다”며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교육을 멍들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또 “현재 언론사가 실시하고 있는 대학 평가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이것이 대학교육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교수는 영어강의의 비율이 높아지거나 외국인 학생의 숫자가 많아지기만 하면 무조건 점수를 올려 주는 맹목적 평가방식하에서 대학교육의 왜곡은 피할 수 없다고 앞다퉈 대학평가를 실시하는 언론사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언론사의 대학 평가가 대학을 멍들게 하고 있다

 

요즈음 각 대학에서 유행하고 있는 영어강의가 숱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다. 정말이지 그 동안 내가 만나본 교수들 중 영어 강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우리말로 강의할 때에 비해 강의 효율이 엄청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서로가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강의를 하다 보면 별의별 코미디 같은 일들이 다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은 대학 당국이 왜 이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책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밀어 붙이고 있느냐다. 대학의 행정을 맡고 있는 사람은 눈도 막고 귀도 막고 살기 때문에 영어강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예 남의 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한다면 모를까, 적당히 귀를 열어놓기만 해도 영어강의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듣지 못할 리가 없다. 그들도 영어강의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름대로의 계산에 따라 이를 밀어붙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학 당국이 막무가내로 영어강의를 밀어붙이는 동기로서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사대주의나 허영심이다. 그러나 단지 강대국을 숭배하고 뽐내기를 좋아해서 그런다는 것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다른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많이 하니까 우리 대학도 따라서 하겠다는 생각이 결정적인 이유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이것들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대학 당국이 앞뒤 가릴 것 없이 영어강의를 밀어붙이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언론사에 의한 대학평가일 것이라고 본다.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국제화의 정도’를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화의 정도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평가항목이 바로 영어강의의 비율이다. 영어강의가 얼마나 내실 있게 이루어지는지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단지 영어강의가 전체 강의 중 몇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지만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사립대학 교수로 있는 제자에게 들은 얘기가 하나 있다. 언론사의 대학평가 순위에서 경쟁대학에 조금이라도 밀리게 되면 총장이 이사회에 불려가 엄청나게 야단을 맞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순위에 목을 거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질책이 결코 달가울 리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손쉽게 대학평가 순위를 올릴 수 있는 영어강의는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교육을 멍들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사의 대학 평가가 가져오는 부작용이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 각 대학 캠퍼스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 학생들 덕분에 우리 학생들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학업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가 공부할 의욕조차 부족한 외국인 학생들이 상당수 섞여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외국인 . 학생들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뽑아주는 분별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내 강의에 몇 명의 외국 학생들이 들어온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출석조차 제대로 한 학생이 거의 없었다. 그러고선 강의가 끝날 때쯤 해서 학점이 나쁘면 불이익을 당한다고 울고 불며 매달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소화하거나 한국어로 시험을 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학생이 어떻게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영어 구사능력이 훌륭한 것도 아니다. 물론 훌륭한 자질을 가진 외국인 학생이 많지만, 진정으로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도 만만치 않은 숫자임이 분명하다. 외국인 학생을 접해본 교수들은 대체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사의 대학 평가는 어떤 외국인 학생들이 우리 대학에 들어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외국인 학생의 숫자가 많아지면 국제화의 정도에서 무조건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맹목적 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으로서는 아무나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정책을 쓰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입학생 숫자가 줄어들어 애를 먹는 일부 대학으로서는 외국인 학생을 가려서 뽑을 처지가 전혀 되지 못 한다. 그런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 학생은 평가순위 높여주고 등록금까지 내주니 ‘꿩 먹고 알 먹고’가 된다.

 

학습능력과 의욕 모두에서 문제가 있는 외국인 학생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학의 양심을 좀먹는 행위라고 본다. 더군다나 우리 대학들은 입만 열면 정부의 강요에 의해 채택할 수밖에 없는 변별력 없는 입시제도에 대한 불평을 쏟아오지 않았는가? 한편으로는 변별력 없는 입시제도에 대해 불평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자질이 부족한 외국인 학생을 대거 받아들이는 일관성의 결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언론사의 대학 평가가 대학으로 하여금 비교육적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언론사가 실시하고 있는 대학 평가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대학교육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영어강의의 비율이 높아지기만 하면, 외국인 학생의 숫자가 많아지기만 하면 무조건 점수를 올려 주는 맹목적 평가방식하에서 대학교육의 왜곡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일 수밖에 없다. 그런 유인구조하에서는 교육자적 양식이 힘을 발휘할 공간이없어지기 때문이다.

 

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언론사는 영어강의의 비율이 높아지고 외국인 학생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왜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를 한 점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할 책임을 갖고 있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식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레토릭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말해 난 그런 알맹이 없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한 구토증을 느낀다. 영어강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누가 영어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는 말인가? 나 역시 기회 있을 때마다 영어 잘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부르짖는 사람 들 중 하나다.

 

문제의 핵심은 영어강의가 영어를 잘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며, 영어강의로 인해 교수와 학생 사이의 의사소통에 심각한 장애가 생긴다는 데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영어강의로 인한 득과 실을 엄정하게 평가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영어강의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자잘한 이득만을 내세우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전혀 지식인답지 않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 그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영어강의로 인해 학생들이 입는 손실은 누가 보상해 준다는 말인가?

 

학생들이 영어강의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만족하고 있다는 오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불만이 있는데도 입을 닫고 있을 따름이다. 이번 KAIST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쌓이고 쌓인 불만이 터질 기회를 갖게 될 때에야 비로소 폭발적으로 분출될 수 있을 뿐이다. 영어강의에는 예외적으로 학점을 잘 주는 비겁한 수법으로 학생들의 입을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솔한 생각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KAIST사태로 인해 영어강의의 문제점이 표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레토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 쓸모없는 레토릭은 당장 걷어치우고 영어강의가 실제로 학생들에게 얼마만큼의 득과 실을 가져다 줬는지를 엄밀하게 따져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내용의 강의를 영어로 들은 학생과 우리말로 들은 학생들의 비교분석을 통해 영어강의의 상대적 득실을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공이나 교양을 얼마나 충실하게 배울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 두 가지 강의를 비교해 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기초적 검증작업 없이 무조건 영어강의를 강요하는 처사는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언론사 입장에서 볼 때 선의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학평가가 실제로는 대학교육을 멍들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귀 따갑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으로는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영어강의 비율이 높아지고 외국인 학생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왜 교육의 질 향상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그와 같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던가, 외국 유학 가서 편리해진다는 등의 알맹이 없는 레토릭만으로는 절대로 우리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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