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펴낸 오종우 성균관대 교수

올해 초 출간된 <백야에서 삶을 찾다>란 책이 있다. 러시아 고전 걸작 3편을 다뤘다. 언뜻 평범한 프로필이다. 책장을 넘기면 생각이 달라진다. 텍스트를 충실히 분석해 고전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고 있어서다. 현학적 이론과 언어를 생략해 쉽게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진지한 감동과 꼬리가 긴 여운이 입소문을 타더니 방송 3사의 독서 프로그램에 모두 소개됐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부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까지. 한번쯤 이름은 들었지만 선뜻 집어들기 어려운 대작들을 꼼꼼히 풀어 많은 독자들과 교감한 책의 저자, 오종우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를 28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학문이란 뭘까요?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해석해 미래를 열어내는 것입니다. 간단한 정의 같지만 의미가 있어요. 이 책을 쓴 계기가 고전 강의였는데, 고전은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실생활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죠. 과거에 국한된 게 아니라 현재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가 학문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학문의 개념을 명쾌하게 정의했다. 학문이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개입해 작은 것 하나부터 바꿔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책의 제목은 이런 문제의식을 은유했다. 작품의 배경인 러시아 백야 현상을 가리키는 동시에 ‘명쾌한 듯 보이면서 애매모한 현실’이란 중의적 의미가 있다. 낮과 밤을 쉽사리 분간할 수 없는 백야 같은 현실에서 진실된 삶을 찾는 성찰의 창(窓)이 학문이란 얘기다.

오 교수는 “러시아에서 밤인데도 환한 백야의 묘한 느낌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었는데 낮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분명한 것 같지만 모호한 백야의 몽환적 느낌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듯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우리 현실과 닮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의 ‘학문하기’ 관점에서 삶의 형태와 제도를 획일화하는 지배가치는 백야의 현실과 통한다. 그는 20세기에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지금은 경제 자본이 사람들의 삶을 예속시킨다고 지적했다. 특정 이념에 매몰되면 현실 속에 파묻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물질과 반비례해 정신은 피폐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고전과 학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때문에 그는 학문과 예술은 비(非)실용적이란 사회적 통념을 반박한다. 지배가치와 다른 시선을 갖게 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통찰력을 지닌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실용적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실용을 굉장히 좁게, 도구적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학문과 예술이 개개인의 정신세계에 기여했다면 그 자체로 실용적인 겁니다. 물론 현실 속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겠죠. 실질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 문·사·철(文·史·哲)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른바 지금의 ‘실용주의’도 이미 실용이 아닙니다. 굳어진 이념일 뿐이죠.”

인문학자가 자연과학의 논리로 실용을 논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필요가 없으면 사라지게 마련인 세상에서 살아남은 것은 실용적이란 게다. 그는 “학문이나 예술은 역사상 한번도 소멸한 적이 없지 않느냐. 강한 생명력과 실용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고리타분한 학문서란 편견을 벗고 대중에게 ‘실용적’으로 다가서는 책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무던히 노력했다. 원래 900쪽 가까이 썼던 원고 분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난해한 철학 이론과 개념을 다룬 내용은 모두 쳐냈다. 대학 교수의 본성인 먹물 냄새를 최대한 줄여보자는 의도였다.

오 교수는 이번 책으로 많이 행복해졌다고 했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가 아니다. 책의 부제인 ‘삶을 찾는 인문학 강의 여행’처럼 그는 때로 강의하고 때로 여행하며 학문과 실용, 삶의 접점을 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방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번 책은 대중을 만나려고 썼거든요. 사실 책 분량 줄이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진짜 재미는 감동이 있고 삶에 변화가 생기고 여운이 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양으로 읽어야지 하고 책을 접했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오신 분들이 꽤 돼요. 방송에 불려나가며 흐뭇했던 게 그런 분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는 거죠. 이래서 학문을 하는구나, 하고 저도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