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횡령·유용, 공사비, 재단 비리 등등 줄줄이


대학가에 연구비 횡령부터 학교공사·재단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내부적으로 곪아있던 비리가 외부로 드러나면서 관련자들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되풀이되는 상아탑 비리, 원인은 무엇일까.

■ 잇따른 자살사건…대학비리 '도마 위' = 28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두 달 사이 4명의 교수·직원이 각종 비리와 관련해 목숨 을 끊었다. 지난 22~23일에는 국립대 창호비리 사건으로 충주대 전·현직 교직원이 하루 간격으로 자살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2009년 충주대 시설담당 직원으로 있을 당시 특정 창호업체로부터 금품을 받고 2억여 원의 창문과 창틀의 공사를 몰아준 혐의를 받았다.

앞서 지난 4월 10일에는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던 KAIST 박모 교수가 자살했다. 박 교수는 교과부 감사 결과 연구비 유용혐의가 드러 나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대전 모 사립대에서도 1000만원의 학과 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던 학과  조교가 이를 갚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잇따른 자살로 재조명된 대학가의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과부 ‘2009사학 감사 백서’에 따르면 2007년 종합감사를  받은 7개 대학에서 평균 20건의 지적사항이 적발된 데 비해, 2009년 종합감사 때는 4개 대학에서 평균 23건이 발생했다. 교과부 감사 와 지적에도 전혀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 잇단 재단비리…사립대는 개인 소유? = 재단 관련 비리도 끊이지 않는 문제다. 지난 3일 거창 승강기대학에선 총장 선임과 관련, 1억 원을 교부받고 수익용 기본재산 30억 원을 임의로 처분한 A이사장이 불구속 기소됐다. 또 토지브로커 B씨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뒤 감정 평가를 거치지 않고 인근 토지를 고가로 매수해 대학에 재산상 피해를 입힌 이 대학 C상임이사와 D사무국장, 토지브로커 B씨도 구속 기소됐다.

또 최근 청와대 개입 논란을 불렀던 서일대학은 재단인 세방학원 설립자 이용곤 전 이사장과 김재홍 이사 간 권력다툼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밝혀져 ‘비리백화점’이란 오명을 얻었다. 이 씨의 개인비리는 물론 이 대학 교수의 자격증 장사와 연구비 횡령, 교수채용 비리 등이 줄줄이 경찰에 접수됐다.

이 중 경찰은 이 씨가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받은 국가보조금 3억8000여만 원 중 1억8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이 대학 소속 박 모 교수가 레크리에이션 자격증 3만4000장을 팔아 얻은 수익금 29억 원 중 16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포착,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 30년간 사립대 50%만 감사 받아 = 이처럼 진리의 전당인 상아탑에 각종 비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내부고발이 아니고선 비리가 밝혀지기 어려운 대학구조가 원인”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교과부의 종합감사는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고, 사립대가 1년에 1~2번 실시하는 자체감사는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 내 감시기구 중 하나인  대학평의원회 역시 형식상의 기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조사대상 157개 사립대 가운데 교과부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대학이 78개교다. 30년간 절반의 대학만이 교과부 감사를 받은 것이다. 교과부 감사총괄담당관실 정회택 교육연구관은 “대학 전체를 훑어보는 종합감사 의 경우 3~5년 마다 실시하게 돼 있지만, 인력난으로 정기적 감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립대가 1년에 1~2번 실시하는 자체감사는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끝나기도 한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자체감사에서 1건의 비리가 적발된 대학이 종합감사에서는 20건이 적발된 사례도 있다”며 “이는 자체감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견제기구 대학평의원회 ‘유명무실’= 대학 내부의 공식 견제기구인 대학평의원회 역시 형식상의 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대학평의원회는 지난 2005년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의해 모든 사립대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학칙 개정, 대학발전계획,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러나 지난해 김상희 민주당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조사 대상 4년제 사립대 145곳 가운데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이화여 대 등 11곳은 평의원회를 설치하지 않았다. 더욱이 평의원회를 설치한 134곳 가운데 68곳(50.7%)은 평의원회에 보직 교수가 1명 이상  참여하고 있었다.

사립학교법 제 27조에선 평의원회에 학생대표, 교수회대표, 직원대표가 고루 포함된 15인으로 구성되게 했지만, 각 대표들의 구성은 학칙에 맡기고 있다. 서울 사립대의 한 교수는 “평의원회 교수회 대표가 총장이 위촉하는 보직교수로 구성되고 있다. 사실상 평의원회가 무용지물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평의원회가 의결기구가 아닌 심의기구라는 점도 문제다. 사립학교법 제26조 2는 평의원회를 심의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손홍열 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 사무총장은 “평의원회에서 심의한 내용을 이사회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평의원회가 의결기구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내부고발로 밝혀지는 비리 = 내외부의 견제기구가 제 역할을 못 하면서 대학의 각종 비리들은 대부분 내부 고발자에 의해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국립대 창호비리 사건 역시 해당 창호업체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이를 제보하면서 드러났다. 한 국립대 시설담당과장은 “내부에서 단 서를 제공하지 않고서야 뇌물을 받고 공사를 몰아준 정황까지 교과부 감사에서 적발이 되진 않는다”며 “공사비 비리는 사실상 내부 고발 없이 밝혀지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내부 고발자가 대학비리를 외부로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이들에 대한 보호 장치는 미흡하다. 오히려  내부 비리를 고발했다가 징계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다. 서강대 내부고발 교수 4명은 국고연구비를 횡령한 동료 A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해교행위를 했단 이유로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받았다. 법원이 이들의 교수 지위를 인정하라고 결정했지만, 학교 측은 연구실 을 폐쇄하는 등 정상적인 교원업무 수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동아대 전 현직 교수협의회 의장 2명도 재단인 동아학숙의 비리의혹을 제기했다가 파면을 당했다. 이에 지난 8일 법원은 이들 교수에  대한 학교 측의 징계처분은 재량권을 일탈해 위법하다고 판단, 복직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2명의  교수는 법원에 간접강제 신청을 한 상태다.

이처럼 내부고발자에 대학이 징계처분을 하면서 사실상 고발이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한 지방 사립대 교수는 “내부 고발자 에 대한 어떤 보호 장치도 없고, 오히려 중징계를 하는데 누가 나서서 고발을 하겠나. 내부에서 비리가 터져도 서로 쉬쉬하고 넘어가 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자체 감독기구 현실화 시급”= 이에 따라 대학의 자체 관리감독 기구를 현실화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대학가의 각종 비리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손홍열 사교련 사무총장은 “사학비리는 이사장과 총장 등이 학교를 개 인재산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온다”며 “국립대와 마찬가지로 재단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고, 증액된 재산의 출처를 밝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사립대 재단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는 법안을 입법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임은희 연구원은 “무엇보다 교육당국인 교과부가 체계적인 종합감사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교과부 감사원 인력을 충원해서 실질적으로 사립대에 대한 재정문제를 감시하는 정부차원의 대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종 횡령·유용 혐의가 끊이지 않는 연구비 비리에 대해선 연구비 관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 사무총장은  “대학이 연구비를 인건비, 재료비 등등 종목에 맞게 지급하는 총괄전담부서를 마련, 교수가 연구비를 개인용도로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위 박보환 의원도 “삼진 아웃제 등을 도입해 연구비 비리를 되풀이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통해 대학사회의 자정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충북대 박철희 시설담당 과장은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직원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문제는 또 다시 발생한다”며 “감사원 등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도록 해 자정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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