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잡상인 출입금지.’ 서울 강남 어느 고등학교 교무실 입구에 나붙은 엽기적(?)인 문구다. 어느 사회에서나 최고 지식인층으로 존경을 받아오던 대학 교수들이 이처럼 일선 고등학교에서 견디기 어려운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게 마치 오늘날 우리 지방대학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방대 교수들이 잡상인 대우를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이 입시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03학년도부터 입시정원이 역전되면서 몇몇 지역 지방대 교수들은 본업은 뒤로한 채 수험생 유치나 졸업생들의 취업 알선을 위한 세일즈에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사례는 지방 전문대뿐만 아니라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4년제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실제 지난 여름방학 동안 호남 A대학은 수도권 학생 유치를 위해 ‘OO대 서울캠프’까지 개설하면서 교수들의 고교방문을 독려해왔다. 일선 고등학교 입시관계자에 따르면 여름방학동안 지방 전문대 교수에서부터 4년제 지방대 교수들의 방문이 매일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같은 교수들의 신입생 유치활동은 방학기간에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입시철이 가까워질수록 그 강도는 차츰 높아진다. 일부대학의 경우 신입생 유치실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가 하면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폐과 조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단다. 어느 지방대학 한 교수는 “학과가 정원미달로 폐과 당하지 않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신입생 유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한 교수는 “신입생 유치와 취업시즌이 겹치는 10·11월은 연구실에 앉아 있을 시간도 없다”며 “대학 존립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연구·교수에만 몰두할 수 없지않느냐”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교수가 소속 대학의 위기를 느끼고 대학 살리기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본업을 내팽개친 채 ‘주객전도’식 대학 살리기는 오히려 그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대학당국은 교수들만 다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차원에서 구조개혁을 통한 효율적인 대학운영을 모색해볼 때다. 또 고등교육 수요를 반영하지 않고 대학설립을 무분별하게 허가해준 정책 당국의 책임도 큰 만큼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