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차 전문가 이근수 경희대 회계세무학부 교수

이근수 경희대 회계세무학부 교수는 ‘특이한’ 인물이다. 회계세무학부 교수지만 무용과 녹차에 조예가 깊다. 지금까지 낸 무용 평론 책이 2권, 녹차 관련 에세이집이 2권이다.

이 교수와 인사를 나눈 후 앉자마자 “회계를 전공하신 교수이시면서 왜 전혀 다른 방면인 무용과 차에 관심을 두시게 됐느냐”고 묻자 씩 웃으며 말한다. “우선 차나 한 잔 하죠.”

교수실 한가운데 놓인 기다란 티테이블은 벤치를 닮았다. 티테이블 위에는 잘 정렬된 다기들과 수십여 개의 찻잔이 눈길을 끈다. 이 교수는 전기포트로 끓인 물을 다기에 부은 후, 작은 찻잔 하나에 담아 건넸다. 녹색의 미지근한 녹차에서 우러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다들 회계와 무용은 관계가 없다 생각하지만 사실 둘은 많이 닮았어요. 둘 다 ‘밸런스’를 추구합니다. 회계는 대차대조표를 통해 밸런스를 추구하고, 무용의 아름다움은 밸런스에서 나오지요. 회계가 회사의 사정을 나타내는 일종의 언어라 한다면, 무용 역시 몸의 언어라는 게 닮은 점이죠.”

이 교수의 전공은 회계감사다. 그러면서 그는 무용계에서 이름난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회계감사와 평론가 역시 닮았다는 주장이다.

“무용가가 무용을 만들면 평론가는 가치 있는지 판단하고 다른 이에게 전달하죠. 그런 점에서 회계감사와 평론가는 또 닮았다 할 수 있어요.”

이 교수가 무용 공연에 흥미를 들인 것은 20년이 넘는다. 20여년 전 경희대 일반대학원 교양학부장을 맡았는데, 동료 무용과 교수들이 주는 공짜 티켓으로 공연을 보러 다니다 재미가 들렸다는 설명이다. 말은 없지만 음악 속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게 좋아 보직을 그만둔 후 자발적으로 공연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자신이 본 무용의 재미를 남에게 알리려 글을 쓰기 시작해 평론가가 됐다. 굵직한 무용 잡지들이 그의 평론을 기다린다고 할 만큼, 활약이 대단하다.

“녹차 역시 25년 동안 이어온 취미지요. 경희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제 덕에 녹차를 접했어요. 오늘도 점심 먹고 동료 교수들이 와서 마시다 갔지요. 박상수 경희대 경영대학원장은 작년부터 재미를 들이더니 이제는 다기도 잔뜩 사고 저한테 좋은 차도 구해 달라 합니다. 학생에게 녹차의 맛을 알리기 위해 ‘차 문화의 과학과 이해’라는 과목까지 만들게 됐어요.”

차 관련 과목을 개설하고, 차에 얽힌 이야기를 엮은 책도 두 권이나 썼다. 이런 사실들로 볼 때, 이 교수에게 무용과 녹차는 더 이상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두 분야에서 모두 인정받은 전문가가 된 셈이다. 취미에서 전문가까지 가는 것은 고사하고, 취미를 위한 시간을 내는 일도 사실 버거운 일이다. 이 교수는 여기에 고개를 저으며 “여유를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답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여유가 생기면 취미를 즐기겠다’ 합니다. 그러면 평생 여유는 안 생기는 거예요. 여유가 없으면 만들어야죠. 여유를 만들어야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알듯 모를 듯한 답변. “그렇다면 여유를 만들기 위해 다른 일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아뇨. 여유는 버릇과도 같아요. 버릇이란 들이면 생기는 건데요, 형편이 좋아지길 기다리지 말고 훈련으로 만들면 되는 겁니다. 저 역시 경영대학원장,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등 대학에서 여러 보직을 거쳤지만 바쁘다고 한 번도 제 여유를 포기한 적은 없었어요. 바빠서 여유를 낼 수 없다는 건 한마디로 ‘변명’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억지로든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투입하라는 간단명료한 이야기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취미부터 찾으라는 조언을 덧붙이며 인터뷰를 끝냈다.

“저처럼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하는 건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행운을 기다릴 게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평생 좋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으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전문가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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