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전당인 대학까지 당장의 생존과 이익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방관하면 그 변화에 희생물이 되고 맙니다. 시대가 변하는 속도를 앞질러 가야 대학의 위상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정홍섭 신라대 총장은 최근 대학구조개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서도 위기돌파를 위한 대학 체질개선의 필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정 총장은 임기 내 ‘지역 상위권 대학’이란 목표를 설정,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세부전략을 마련했다. 특히 대학 특성화 분야인 마린바이오, 동북아비즈니스, IT·디자인 분야와 건강·웰빙 관련 분야를 지렛대로 대학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 취임한지 백일이 지났는데 대학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고 있나.

“대부분 대학들이 아직까지 백화점식 학과, 연구중심 대학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무얼 가르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시대 변화에 뒤처져서는 안된다. 대학 구성원들의 마인드를 시대에 맞게, 교육중심대학으로 바꾸고 대학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제 교수들은 연구·강의에만 전념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학생을 입학시키고 취업까지 책임지는 시대가 되었다. 교육에 있어서도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더 가치 있는 것인지 시대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 부산지역 사립대 중 유일하게 사범대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사범대학 특성화 계획은 어떤가.

“사범대학은 교원 수급계획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 있어 대학 특성화 분야로 육성하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최근 취업난으로 수험생들의 사범대학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사범대학은 그 나름대로 역할을 다해 나가고 마린바이오, 동북아비즈니스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해 문을 연 마린바이오산업화지원센터는 우수한 연구 인력과 첨단 기자재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 바다생물을 활용하는 마린바이오산업은 무궁무진한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중국 유학생 유치 붐이 일고 있는데 우리대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유학생 유치를 위한 동북아사업을 진행, 이 부문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현재 전국에서 제일 많은 3백50여명의 중국 유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간혹 중국 유학생들이 대학을 이탈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우리 대학에서는 이런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그만큼 유학생 관리에 신경 쓴 덕분이다.”

- 국내 모든 대학들이 특성화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대학별 차별화가 안되고 모두 비슷비슷하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나.

“우리 대학의 경우 특성화 한 부문인 IT 분야가 최근 인기가 떨어져 애를 먹고 있다. 또 중국유학생 유치 프로젝트인 동북아비즈니스도 된다 싶으니 여러 대학이 사업에 나서고 있어 참 난감하다. 특성화 프로그램은 지역산업과 연계, 각 대학별 역할분담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 총장 선거 당시 교육혁신 5대 과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임기 중 역점사업은.

“대학편제의 개편, 교수업적 평가제 개선, 교육과정의 개편과 교육방법 개선, 취업률 제고, 국제화 추진 방안 등을 마련, 전 구성원들이 ‘공부하는 대학’을 만드는 데 전념토록 하겠다. 아울러 대학 위기 타개를 위해 공격적인 대외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입시생의 지속적 확보를 위해 여러 고등학교들과 상설 협력관계를 구축할 생각이다. 그밖에도 국책사업 유치나 지역사회와 연계한 캠퍼스 개발에도 역점을 둘 계획이다.”

- CEO형 총장을 요구하는 시대다. 대학발전기금 유치 활동 계획은.

“지방대의 경우 발전기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발전기금 유치보다는 대학 자체적으로 수익사업에 역점을 둘 것이다. 대학이 위치한 서부산권은 물류중심의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는데 재단과 교육부지 52만평을 활용하는 수익사업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산학협력단 내 태스크포스팀 구성을 통한 대형국책사업 유치 극대화와 골프연습장, 웰빙센터, 실버텔 등 학교관련 기업들을 유치해 수익모델을 창출해 나갈 계획이다. 총장이라는 자리는 명예로운 자리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조직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CEO라 생각한다.”

- 대학 평가에 대해 말이 많다. 특히 서면 평가방식에 대해 총장들의 불만이 많던데.

“평가를 준비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서 그렇지 실효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컨설팅 하는 입장에서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 평가를 한번 받고 나면 대학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 설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서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 대부분 총장들이 입시정책을 대학에 맡겨 줄 것을 요구하던데. 지방대 총장으로서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기부입학제, 본고사, 고교 등급제 금지 등 3불정책 이외에는 대학 자율권이 많이 신장됐다. 일부에서는 3불정책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본고사가 부활하면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초·중·등교육이 또 다시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기부입학제는 대학의 빈익빈 부익부를 더 심화시키고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의 균형발전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기부입학제로 해외 유학비용을 줄이자고 하지만 기부입학제로 외국유학이 줄어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국내 대학 중 세계 백위권 안에 드는 대학이 없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학운영에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국내 대학만큼 생산성 높은 대학이 어디 있느냐. 대학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투입되는 것은 생각지 않고 산출되는 것만 보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됐다. 가령 대학평가기준이 되고 있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 기준을 지방 사립대에 들이대면 되겠느냐. 대학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고 보지만 너무 대학을 몰아세우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장기적인 안목의 교육정책을 세워야 하는데 교육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들어 순수학문, 순수예술, 기초과학이 죽어가고 있다. 교육에 있어 모든 것을 시장논리로 풀어가서는 안된다. 급기야 연구중심대학까지도 실무·기능위주의 교육으로 가고 있다. 지금처럼 모든 대학이 기초학문을 도외시한 채 너무 현실 위주 교육만 추구하면 안된다.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의 철저한 이원화가 필요하다. 또 대학구조개혁은 일정부문 시장원리에 맡기고 순수학문분야 보호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정홍섭(59) 총장은 경북대 교육학과를 나와 지난 85년부터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기획실장, 교무처장,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총장선거에서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얻을 만큼 정 총장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는 크다. 정 총장은 산악자전거와 보디빌딩, 등산 등을 통해 몸을 다져 주위로부터 건강만큼은 따라 갈 사람이 없다는 부러움을 살 정도. 운동과 함께 총장실에는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차(茶)를 마련해 두고 틈날 때마다 끽다로 심신의 평정을 찾는 차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대담 : 이인원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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