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포기할까 생각도”

시간강사 A씨(49)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서울 한 사립대에서 독문과 강의를 맡았다. 전임교원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10년 동안 강단에 섰지만 갑자기 학과가 폐과됐다. 비인기학과란 이유로 학사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전과했고, 전임교원들도 다른 학과로 적(籍)을 옮겼다.

A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 해당 학과 학생들이 남아있어 강의를 하고 있지만, 3년 후면 이들 학생도 모두 졸업하기 때문이다. A씨는 전공과 교직 선택을 후회할 때가 많아졌다. 차라리 학문을 포기하고 장사를 해볼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평생 연구와 강의만 해온 그에게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폐과된 학과 강사들은 심한 불안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수강하는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면 강의 자체가 없어진다. 당장 생활비와 직결되는 문제다.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학사구조조정으로 인해 폐과된 학과 강사들은 교권과 생활권, 학문 추구권을 모두 박탈당했다. 대학과 국가가 나서서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문화정보학과와 히브리·중동학과를 폐과한 건국대는 소속을 잃은 강사들에 대한 대책을 내놨다. 이 대학 이우광 스마트교육혁신팀장은 “해당 강사들을 교양학부에 편입시켜 계속 강의를 맡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독문과를 없앤 동국대는 소속이 없는 강사들을 대학 측이 도와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폐과에 따라 소속을 옮긴 일부 교수들도 새 체제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새 학과로 옮겼지만 원래 전공과 유사한 강의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굴러들어온 돌’이란 생각 탓에 학과 운영에 개입도 꺼린다. 해당 학과 학생인 조모씨(27)는 “일부 교수들은 여전히 예전 학과를 그리워한다. 학생들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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