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주목해야 하는 이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가지 없는 것 아니다

#1. 내년 9월 영국 런던 중심가에 ‘새 인문대학(NCH·New College of Humanities)’이 설립된다. <금융의 지배>를 저술한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 등 영국 출신 세계적 석학 14명이 교수진으로 참여한다. 확보한 기금은 무려 500만파운드(88억원). 역사학·철학·영문학·법학·경제학 등 인문·사회과학 계열 8개 학과에서 신입생 200명만 뽑는 소수 정예 엘리트 대학이다.

#2.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인문학센터에서 열린 ‘비블리오테크 회의’에서 구글의 머리사 메이어 부사장은 “구글은 올해 6000명의 직원을 채용할 예정인데, 이 중 4000~5000명을 인문분야 전공자로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메이어 부사장은 “구글은 다양한 분야에서 똑똑한 인재를 찾고 있지만, 인문학 전공자가 특히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사용자환경(UI)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함께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 그는 “인류학자와 심리학자가 가장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학가 안팎에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인문학 대중 강연이 활발하게 열리고, 인문학 서적도 잘 나간다. ‘인문학 위기’ 목소리가 이어졌던 그간 사정을 돌아볼 때 이 같은 인문학 대중화는 반가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 무엇보다 장기적인 플랜이 없다는 점이 거론된다. 인문학 열풍을 무조건 반기기보다, 왜 인문학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돌아볼 때가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문학에 주목해야 할까. 작가 은희경씨는 이달 초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전체가 실용주의로 가고 있다”며 “실용주의가 효과를 보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 상업적인 예술도 기초예술을 바탕으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은씨는 이에 대해 “효율 면에서 인문학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호종 한국연구대단 인문학 단장(경상대 중어중문과 교수)은 이 질문에 “인문학은 공부와도 같은 것”이라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우선은 단기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라는 분위기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의 열풍 속에 나오는 위기의 목소리와 이를 우려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문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금 명확해진다.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는 것. 이와 같은 이유는 인문학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인문학은 즉시 돈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환금성에 대한 조금함을 덜어내야 우리도 NCH와 같은 인문학 시설을 만들 수 있고, 구글처럼 인문학자들을 대거 채용할 수 있다고.

“눈에 안 보인다고 가치 없는 것 아니다”
[인터뷰]이광철 한양대 인문과학대학장

한양대는 전통적으로 ‘이공계가 강하다’고 알려졌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동아시아문화연구소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임지현(서양사)·박찬승(한국사)·정민(고전문학) 교수 등이 인문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오는 가을부터는 석사과정으로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을 신설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결과 2011 QS 아시아대학평가에서 인문학 분야 아시아 49위에 오르는 등 기염을 토했다. 인문과학대학 학장인 이광철 중어중문과 교수<사진>를 만나 다시 인문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으면 인문학이 다시 부흥하고, 인문학이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겠죠. 양보다는 질을 따지는 시대가 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미리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학장은 이와 관련 “우리 교육이 기술만 따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을 논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논의에 인간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학장은 “과학기술이 무엇을 위해 발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니 “사람 아니겠느냐”고 답한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추상적인 이야기다. 당장을 생각할 때, 인문학은 어떤 효용이 있는 걸까.

“인문학은 돈이 안 된다는 생각. 이른바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게 바로 인문학 홀대의 핵심이죠. 뭔가를 바로 만들어내지 못하니 홀대 받는 겁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게 가치가 없는 일일까요? 예를 들어 한·일 월드컵 때 보여준 우리의 응원문화, 그걸 돈으로 어떻게 환산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때 보여준 우리의 응원문화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그는 이와 관련 “지금은 문화의 시대”라고 말했다. 아니,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상 “문화의 전쟁 시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우린 제대로 된 문화를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가 우리의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해야죠. 예를 들어 중국은 우선 중국어를 퍼뜨리고, 나아가 지중파를 만들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200만명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하겠다더군요. 후진타오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한빤’을 통해 이런 일들을 추진하고 있어요.”

이 학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한양대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냈다. 한양대가 그동안 이공계를 우선하느라 인문학 분야가 뒷전으로 밀린 감이 있다는 것. 한양대 인문과학대학의 경우, 학과가 여섯 개에 불과한 작은 단과대학이지만, 앞을 내다볼 때 경제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지난 3월 새로 취임한 임덕호 총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임 총장이 단과대학별 예산 분권화를 선언하고, 이공계 이외의 분야도 성장시키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양대 인문과학대학은 규모가 작지만 그동안 정말 열심히 해왔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요. 단과별로 독립체산제가 된다면, 일반 대중 강좌라든가 여러 가지 것들도 고려하고 다른 대학의 인문학과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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