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 위주 선발로 신입생 출신 고교·지역·계층 다양화

지난 2007년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도가 대학 입시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현 정부는 초·중·고교 교육이 대학 입시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 대입 제도 개선을 통한 교육개혁을 추진해 왔다. 현 정부의 대표적 개혁정책인 입학사정관제는 시행 4년을 넘기며 대학의 점수 위주 선발방식에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왔다. 대입제도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고교 교육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본지는 입학사정관제 선도 대학들을 취재, 제도 도입 이후 대학가에 나타난 변화를 짚어볼 계획이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입학사정관제는 빠른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입학사정관전형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도 전공이나 진로에 대한 목표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빠르게 대학에 정착하고 있다.”

홍석기 단국대 입학처장은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나타난 변화를 이 같이 설명했다. 지난 2009년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단국대는 지난해와 올해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으로 선정돼 정부지원을 받았다.

입학사정관제는 대입선발 방식을 변화를 꾀하기 위해 도입됐다. 점수위주로만 선발하는 방식에서 학생 개인의 잠재력·환경·창의력·적성 등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안착을 위해 지난 2007년 가톨릭대·건국대·경희대 등 10개 대학을 시범대학으로 선정하고, 재정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업규모와 지원대상을 꾸준히 늘려, 올해는 총 60개 대학에 325억 원이 지원된다.

■ ‘잠재력 위주 선발’ 학생 다양화 = 입학사정관제는 시행 4년을 넘기면서 대입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어넣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신입생의 출신 고교·지역·계층 다양화다. ‘잠재력’ 위주의 학생 선발이 수능·내신 중심의 입시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가 경희대의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입학사정관전형의 ‘고교 다양화율’은 일반전형(비입학사정관전형)에 비해 매년 2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특히 입학사정관전형 합격자 중 대도시 거주자의 수는 매년 줄고 있는 데 반해 읍·면지역, 도서벽지 거주자는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대도시·중소도시에 합격자가 편중돼 있던 일반전형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강제상 경희대 입학관리처장은 “경희대의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신입생 수도 2009년 110명에서 지난해와 올해 150명 이상으로 부쩍 늘었다”며 “보다 넓은 시각으로 학생을 바라보고 선발할 수 있는 게 입학사정관제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욱연 서강대 입학처장도 “성적이 아닌 소질과 특기를 바탕으로 선발한 학생들이 입학하다 보니 학생 구성이 다양해졌다”는 점을 제도 도입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 ‘목표의식 명확’ 학교생활도 우수 = 입학사정관제 입학생들은 재학 중 △학업성취도 △대학 만족도 △전공 만족도 △대학생활 적응도 면에서도 일반 학생보다 높은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한양대 입학사정관전형 입학생들의 평균 평점은 3.43점(4.5점 만점)으로 비입학사정관전형 입학생들의 3.14점에 비해 높았다. 또 건국대 입학사정관전형 입학생들의 전공 만족도는 3.69점(3.9점 만점)으로 3.53점의 비입학사정관전형 신입생보다 높았다.

이정은 한양대 입학사정관은 “모든 입학전형 합격자 중 입학사정관전형 입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좋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자기주도적으로 대학 생활을 설계해 나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권섭 전남대 입학관리본부장 역시 “입학사정관전형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의 입학당시의 성적은 일반학생에 비해 조금 낮다. 그러나 재학 중에 거둔 성적은 월등히 높은 편”이라며 “잠재력, 목표 의식이 있기 때문에 학습 효과도 우수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심층 평가’ 객관성·공정성 ↑ = 제도 도입 4년을 넘기면서 객관성·공정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대학들이 다면평가·다단계·심층평가 등으로 신뢰성을 제고시켜온 결과다.

황규홍 동아대 입학관리처장은 “입학사정관제의 객관성·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수·다단계로 평가를 진행한다”며 “서류 하나를 보더라도 3명 이상이 보고 3단계에 걸쳐 다면적으로 학생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홍성심 충남대 입학관리본부장도 “다각적인 서류 검토,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며 “면접은 전임사정관 면접, 위촉사정관 면접 등 최소 2번에 걸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각 대학의 전임 입학사정관 수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정부와 대학이 제도의 내실화를 위해 사정관들의 고용 안정성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홍석기 단국대 입학처장은 “현재 4명의 정규직 입학사정관을 확보했고 오는 2학기 중 2명을 추가할 계획”이라며 “입학사정관제 안착에 대한 총장의 의지가 입학사정관 신분 안정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스] 학생들 “원하는 공부 할 수 있어 만족”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대학생활을 꾸려갈 수 있어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많은 학생들은 “특기·잠재력을 위주로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학업이 버거울까 걱정했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박민영씨(자연과학계열 1)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수능으로 들어온 학생들보다 학업성취도 등에서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고민했는데 학교를 다녀보니 그런 것은 없었다”며 “확실한 비전이 있기 때문에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학 졸업 후 제약회사 연구원이 되는 게 꿈이다.

한양대 이나영씨(국어국문학 1)도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확실히 정해놓고 입학했기 때문에 교수님께 모르는 것을 적극적으로 물어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수업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다”고 했다.

입학사정관제 입학생에 대한 학내 시선도 긍정적이다. 뚜렷한 목표, 남다른 잠재력을 가진 학생만이 입학사정관전형에 합격할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동아대 신옥철씨(패션디자인학과 1학년)는 “학내에서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학생들을 독창적이고 자기 능력을 키울 줄 아는 학생으로 평가한다. 스스로도 입학사정관전형으로 입학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학교에서도 입학사정관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교 “진로·적성 고민하는 학생 많아져”
대입 통로 다양화...고교선 동아리활동 활발해져

입학사정관제는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도 도입 4년 만에, 대입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고교 교육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가장 긍정적 변화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성적위주로 선발하던 대입이 특기·적성·잠재력까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대학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학생들이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공간도 넓어진 셈이다.

영등포여고 최병기 교사는 “그 동안 대입을 위해 학업에만 매달리던 학생들이 적성개발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는 점이 입학사정관제 도입의 가장 큰 성과”라고 지목했다.

입학사정관전형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은 고교 생활 전반의 자율활동·동아리활동·봉사활동·독서활동·진학준비 사항을 틈틈이 기록한 뒤, 대학입학에 앞서 이를 입학사정관전형 ‘스펙’으로 내놓게 된다.

한 편에선 수능·내신 공부에 입학사정관전형 스펙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커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인천 숭덕여고 유성호 진학지도부장은 “학생들이 수능·내신 공부를 하면서 스펙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학습부담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선 바로 이런 점이 공교육을 살리는 기반이 된다는 평가다. 최병기 교사는 “성적만 갖고 대학에 진학시킬 때에 비해, 학교가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 개발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교육 살리기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그간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던 동아리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고교마다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재능을 키워주기 위한 동아리를 늘리고 있고, 거기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특히 고교 저학년 때부터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는 점도 제도 도입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 안산의 경안고 김민승 교사는 “1~2학년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성적위주의 선발방식에서 벗어난 제도가 도입된 뒤 점수만큼 적성개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숭덕여고 유성호 부장도 “우리학교의 경우 과학반 학생들이 자신의 점수보다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에 진학한 케이스가 있다”며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동아리 활동이 입시와 연결되면서 그간 성적으로 진학하지 못했던 학생들에게도 기회가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전형 스펙 쌓기가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 △특목고 등 상위권 고교가 수혜를 보고 있다는 점 등이 고교 현장에서 불만으로 제기된다.

이에 대해 최병기 교사는 “아직까지 제도 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교사와 학교의 대응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며 “공인어학성적을 전형요소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특목고 등 상위권 고교에 절대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하영·민현희·박준범·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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