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대충하는 데다 익명보장도 믿음 안 가”

“강의평가를 해야 성적열람이 가능하니까 학생들이 의무감에 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랜덤으로 막 찍기도 해요.”

세종대 김린아씨(영문과 4)는 이번 학기 성적을 열람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속이 탈 뻔 했다. 성적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곧바로 열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적을 보기 전 작성해야 하는 강의평가가 걸림돌이었다.

국내 대학들이 강의평가제도를 도입한지 어느 덧 2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각 대학들은 다양한 방식의 강의평가제도를 내놓으며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강의평가제도 결과를 정말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상당수 학생들이 강의평가에 솔직하거나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경성대·단국대·성신여대 등의 인터넷 학생커뮤니티에서는 강의평가에 관한 의심의 글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강의평가 정말 익명 맞죠?’, ‘솔직하게 평가했다가 혹시나 다음 학기에 같은 교수님 수업 듣게 되면 불이익 받는 거 아닐까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에 ‘나는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 ‘조교한테 들었는데 주관식의 경우 출석부 순서대로 교수한테 넘어가서 교수가 맘 만 먹으면 다 알 수 있다’, ‘나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서 교수님께 수고하셨다고만 쓴다’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강의평가 방법·시기가 적절하지 않아 학생들이 진지하게 평가에 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광운대 김환희씨(미디어영상학부 3)는 “광운대의 경우 강의평가 제도가 종강을 앞둔 일주일 전 시험기간에 진행된다”며 “시험공부에 바빠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줄 세워서 체크하는 학생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문항수도 많은 데다 수업의 특성과 맞지 않는 평가항목이 대다수라 처음엔 열심히 하려다가도 읽다보면 귀찮아 성의 없이 평가를 하는 일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강의평가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각 대학들은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지난 2008년 1학기부터 강의평가를 하고 난 후 12시간 후에 성적을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하는 데 급급해 강의평가를 소홀히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고려대 신희주씨(공과대학 2)는 “강의평가를 한 뒤 12시간 뒤에 성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평가에 임할 수 있다”며 “다른 학생들도 큰 불만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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