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심제’ 공정성 토대로 인재상·전형 따라 선발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제에는 ‘스토리’가 있다. 같은 스펙이라도 그 배경을 읽어내려고 힘쓴다. 점수가 말해주지 않는 것,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스토리에 집중해 학생들을 뽑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 선발에만 그치지 않고 그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는 점이다. 합격생과 사정관들이 만나 얘기를 나누고 그 과정을 책으로 엮어낸 게 대표적이다. 평소 합격생들의 활동계획을 함께 고민하는 것도 사정관의 몫이다. 스펙을 이기는 스토리를 발굴해내고, 그런 변화를 진지하게 알려내는 것.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제가 주목받는 이유다.

■ ‘3심제’ 다수-다단계선발 공정성·신뢰성 확보 =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전형의 기본 원칙은 다수-다단계 평가다. 인재상과 전형별 중점요소에 맞춰 여러 명의 사정관이 수차례 평가를 진행해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취지다. 점수보다 사람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전형의 특성상 택하는 정성평가 방식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서류평가에 3심제를 도입했다. 우선 1심에서는 전임·위촉사정관이 전형·모집단위별로 교차평가에 나선다. 2심은 선임사정관에게 맡긴다. 각 전형에 따른 분과위원회를 열어 1심 결과를 심의·검토하는 절차를 거친다. 3심은 종합평가를 위해 꾸려진 선발위원회 심사 단계다. 입학처장과 입학사정관실장, 교수 위촉사정관, 담당 전임사정관 등으로 구성된 선발위원회가 앞선 단계의 심의 내용을 바탕으로 서류평가 최종합격자를 결정한다.

입학사정관전형 선발 과정에 참여하는 교직원 자녀가 지원할 경우 해당 교직원은 평가에서  자동 제외되는 제도도 마련했다. 불필요한 공정성 시비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성균관대는 평가위원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서약서를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

■ 인재상·전형 따라 다르게 선발 “정답은 없다” = 수험생들이 정착기로 접어드는 입학사정관전형의 모범답안을 물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전형에 노하우는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입학사정관전형’이라는 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세부 전형과 인재상에 따라 요구하는 내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성균관대가 내세우는 인재상은 크게 세 가지 모델로 나뉜다. △능력을 갖춘 ‘교양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전문가’ △글로벌 역량을 갖춘 ‘리더’가 그것이다. 이름 뿐만인 인재상이 아니라 각 전형과 연계돼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학교생활우수자·자기추천자·지역리더육성·리더십·나라사랑전형 등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제는 각 인재상에 걸맞은 능력을 평가해 선발한다.

교양인에게는 종합적 사고와 의사소통 같은 기반 역량, 전문가에게는 가치창출·문제해결 등의 창의 역량, 리더에게는 글로벌·리더 등의 주도 역량을 요구한다. 이승연 입학사정관은 “입학사정관제로 선발된 학생들은 가능성·잠재력을 갖췄다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인재상이나 해당 전형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르므로 전형별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 멘토링에 책자 발간까지… 스스로 뿌리내리다 = 이런 교육철학과 노력에 힘입어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제는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각 전형 성격에 따라 수험생들의 교외 활동, 수상 실적과 꾸준하고 성실한 고교생활을 고르게 평가하며 다양성을 확보한 게 컸다. “하나가 아닌 여러 줄 세우기”에 주력하는 입학사정관전형의 도입 취지대로인 셈이다.

성과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성균관대가 입학사정관전형을 본격 시행한 2009학년도 합격생들의 출신 고교 183개는 2011학년도 286개로 늘어났다. 50% 이상 껑충 뛴 숫자는 ‘공교육 살리기’를 표방하며 시작된 입학사정관제의 모범사례로 꼽힐 만하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사정관들이 겉으로 드러난 스펙보다 성장 환경과 지역적 차이 같은 스토리에 집중하며 그동안 소외됐던 계층 학생들이 더 많이 성균관대에 입학하고 있다.

선발 이후 관리에 힘써 제도가 온전히 뿌리내린 것은 사정관과 합격생들이 함께 노력한 덕분이다. 성균관대는 추수관리 담당 사정관을 별도로 둬 합격생들을 돌보고 있다. 700명이 넘는 합격생을 일일이 살피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서는 피드백이 가능해졌다. 학생들이 스스로 고교생 멘토링과 온라인 상담에 나서는 선순환 구조가 정립된 것이다. 입학사정관실의 책자 발간에 이어 합격생 모임에서도 미래의 후배들을 위한 책자를 펴낼 계획. 성균관대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정관과 합격생, 동반자로 만나다
[인터뷰] 이승연 입학사정관, 김미선(자연과학계열1)

“제 점수는요…” 화제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이 유행어가 딱 들어맞는 관계인 사정관과 수험생이 만나면 어떤 분위기일까. 딱딱하거나 의례적인 대화가 오갈 것이라는 선입견은 금세 깨졌다. 잡다한 일상부터 수험생 대상 행사를 어떻게 함께 준비할지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승연 사정관<사진 오른쪽>과 김미선 학생<사진 왼쪽>을 1일 만났다.

입학사정관제 리더십전형에 합격한 김씨는 원래 이과계열에 관심이 많았다. 대부분 또래와 달리 꿈이 구체적이고 뚜렷하다. 아토피약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을 만들고 싶단다. 따로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꿈과 관련된 활동에는 열심이었다. 고교 시절 클럽활동도 과학탐구반에 들었고, 교내 과학경시대회가 열리면 빼놓지 않고 참가했다.

이 사정관은 준비한 게 없다는 김씨의 말을 살짝 반박했다. 그는 “전형 합격자 중에는 물론 화려한 스펙을 지닌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충실히 교내 활동을 하고, 동아리 연계성도 높았으며 성적이나 면접 점수도 괜찮았다”고 말했다. “3년 내내 학생회 임원을 맡은 것도 합격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귀띔도 잊지 않았다.

김씨는 여전히 “왜 합격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잠재력을 평가하는 게 입학사정관제라 지원했는데 결과가 좋았다”며 “눈에 띄는 교외 수상 실적이 없었을 뿐더러 출신 고교도 입학사정관제 준비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다. 전형 정보부터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준비까지 스스로 또는 부모님과 함께 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김씨의 이런 점이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사정관은 “입학사정관제를 유별나게 준비하지 않은 것일 뿐, 성실한 고교 생활을 보낸 것 자체가 꾸준한 준비”라고 말했다. 평가 기준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비유하자면 볼거리가 많은 스펙터클 영화와 잔잔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우열’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비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정관들은 고교들의 성향도 알아두려고 노력한다.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과 시골에서 온 학생의 TOEIC 점수가 같다 해서 평가까지 같을 수 없다는 논리다. 실제로 교내 수상 실적을 남발하거나 입학설명회 자리 등에서 학생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강하게 어필하는 고교들도 있다. 때문에 더더욱 학생들의 속이야기를 듣고 뒷이야기를 읽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김씨는 입학사정관제 합격자모임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다. 추수관리에 앞서 학생들이 스스로 고교생 대상 멘토링이나 역량 강화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김씨는 “학생들이 주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게 재미있다”며 “모임을 통해 자기 비전을 공유하거나 목표가 뚜렷해지고, 대학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줘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 사정관은 “입학사정관제의 핵심은 이 학생이 대학교육의 혜택을 받았을 때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라며 “합격생들이 자기소개서에 쓴 계획대로 꿈을 키워나가는 것을 볼 때 사정관으로 가장 보람을 느끼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균관대의 경우 입학사정관제 도입 전에도 정성평가 요소가 강한 특기자전형이 있었다. 입학사정관전형 시행에 큰 도움이 됐다”며 “지나치게 사업 선정에 몰두하기보다 정성평가로의 관점 전환에 힘을 쏟다보면 자연스레 입학사정관제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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