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하루였다. 21일 모 대학에서 열린 국제학회를 찾은 기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현대 수학의 거장 탄생 300돌을 기념하며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제학회에 내로라하는 세계 석학들이 모인 자리였다. 더군다나 이 학회를 주최한 이는 우리나라 국가 석학 10인에 뽑힌 수학 천재로 불리는 모 대학 C교수다. 하지만 이날 학회가 진행된 강의실에는 청중 보다 발표자가 많을 지경. 취재진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기자는 이 같은 상황을 앞에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일까? 행사를 주관한 C교수는 지난해 국가 석학 10인에 선정된 뒤 향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번 학회를 첫 번째 추진 사항으로 역설한 바 있다. 재직 중인 학교 홍보실을 통해서도 학회 홍보에 성의를 다했다. 그럼 3일간의 일정 때문에 청중이 분산된 탓으로 봐야 하나? 학회 첫 날 모든 발표자들이 자리하는데다 가장 저명한 교수의 주제발표도 첫 시간에 배정됐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하이라이트인데 반응이 이 정도라니. 그것도 아니라면 영어로 진행되는 발표‧토론 방식과 주제의 전문성이 걸림돌인가? 100% 영어를 이용한 발표와 토론은 대학가에서 이미 보편화된 방식이 아닌가. 또한 비전공자라 하더라도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문제를 풀기 위해 세계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는 학회에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토론을 벌이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모 교수는 발표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토론의 긴장감을 더했다. 수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도 모를 모습이다. 비전공자인 기자에게 발표 내용들은 암호 같은 수학기호로 가득했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곳엔 이런 느낌을 공유할 만한 젊은 청중은 손에 꼽을 정도. 학회에 참석한 뉴욕대 M 석좌교수는 "인터넷을 비롯한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 때문에 젊은이들이 분석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한국에서뿐 아니라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도 이공계 위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날 강의실의 풍경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특강이 자주 열린다. 그 밥에 그 나물 격의 대동소이한 강의들인데도 한 시간 남짓한 특강에 매번 청중과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치른다. 특강에 나선 정치인의 인기는 연예인 못잖다. 취업 특강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대조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학회를 주관한 C교수는 본래 물리학도였다. 석사 과정당시 한 교수의 수학 강의에 매료돼 수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20여년전 접한 수학계의 난제를 풀기 위해 8여년을 연구했고 우리나라를 이끄는 지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경험한 지적 충동이 이번 학회에서 누군가에게 재현되기 바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욕심에 불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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