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동안 '나눔의 운동' 실천해온 송상현 교수

법학계의 권위자 서울대 법학과 송상현 교수. 아내와의 약속을 계기로 시작한 나눔 운동을 2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다. 차갑고 엄격할 것만 같은 느낌의 법, 법학자인 그가 선행을 베푼다는 것이 왠지 선뜻 가다오지 않아 ‘법과 인정은 상반된 느낌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따뜻한 논리가 살갑다. “우리사회에서 ‘법원칙대로 한다’는 말과 ‘인정이나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말이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법이란게 상식에 기초해서 공동사회의 평화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구성원이 지켜나가야할 규범을 마련해놓은 것이 아닙니까. 바로 그 규범들이야말로 오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창출된 것입니다.”법원칙과 인정이 결코 거리가 먼 얘기가 아니란 뜻이다. “기부를 하는 사람도 분명한 목적과 절차와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 송교수가 맡고 있는 직책은 20여개.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을 비롯해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한국위원회부회장, 아름다운 재단 이사, 정해복지재단의 이사장 등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위한 단체들이다. 그러나 그가 맡고있는 직책들이 많다고 해서 영향력을 가진 어느 학자의 이름빌려주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평소 나눔에도 제각각 나름의 방법과 체계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그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의 실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그의 믿음을 적용해왔다. 이는 그가 이사로 있는 한국 백혈병 아동재단에서의 활동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재단에선 물론 모금사업도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에게 보다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도움을 되는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도그럴것이 백혈병으로 대표되는 소아암 환자는 보통 3~4년의 장기입원자가 대부분이라 환자는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지치고 힘든 시간이라는게 송교수의 설명이다. 그래서 대학병원 근처에 ‘사랑의 집’이란 쉼터를 운영하고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투병 중인 아이들이 오랜 병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놀거리와 교육까지 책임진다. 완치된 아이들의 사회적응을 위한 훈련이나 연말자선파티같은 다양한 이벤트도 벌써 십 수년째 진행해 온 일 가운데 하나. 다른 단체들의 활동에서도 그가 들이는 노력의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도 주말이면 연락도 없이 아름다운 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둘러보거나 유니세프 기금 활동에 참가한단다. 이 모두에 소홀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자연스런 나눔과 기부문화를 정착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도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한 아내와의 약속으로 시작한 선행은 노인복지와 관련한 것이었다.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효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러나 ‘노인도 유권자’라며 ‘정치적인 계산이 숨어있는게 아니냐’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좋은 일을 하려다 마음의 상처만 안은 송교수는 하마터면 거기서 선행을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이후 도움이 꼭 필요한 곳이나 사람들 관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만을 찾아다녔단다. 의료혜택 정도나 환경이 극도록 열악했던 어린이백혈병 재단이나 라이따이한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해복지재단 등은 그래서 알게 된 곳들이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강단에 서면 그는 일절 ‘나눔’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선행이란게 말한다고 들리는 것도 아니고 그가 굳이 나서서 얘기하지 않아도 주위엔 조용히 선행을 하는 사람도 많은 까닭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적인 경향이 강해서 선행에 무관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자선단체에 나가면 굳이 성금과 같은 물질적인 형태의 나눔이 아니라도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자기희생 정신을 본받고 싶은 젊은 패기들을 만난다고. 나눔이란 길게 내다볼 줄 아는 것이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호기부리듯 한번에 충동적으로 주는 기부금은 설령 거금이라도 반갑지 않다. 차라리 보다 많은 사람이 한달에 5천원이라도 오랜 기간 잊지 않고 모아주는 정성을 기다린다. 단지 돈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서로 관심을 갖고 작은 정성이라도 함께 하는 바람직한 기부문화를 정착하고 싶기 때문이란다. 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자상한 할아버지에게 옛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포근한 기분으로 돌아간다. 생은 질기고 귀한 것이라며 어린아이들이 아픈 것을 볼 때면 언제나 가슴 한켠이 불편하다는 그는 ‘희망’이란 단어를 펼쳐든다. “절망에 빠져 포기해버리기 쉬운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투명하게 재단을 운영하고 더욱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마음껏 나눔을 베풀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겠습니까” 서울대 법대 15동 525호, 송상현 교수의 연구실이 위치한 법대 건물 한 모퉁이에선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별 생각없이 지나쳐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장애학생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 중이란다. “지금은 단 한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겠냐”며 그는 환한 웃음을 짓는다. 최근 서울대 교수들이 함께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가의 보조장비를 선물했다는 가슴따뜻한 소식에서부터 그동안 턱없이 부족했던 법대 여학생 화장실 보충, 장애학우를 위한 계단공사 등 가려져 있던 생활 구석구석의 작은 불편들을 보살피는 손길들 한 가운데 송상현 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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