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말했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부모가 다 생존해 있으며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며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를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 이 말에서‘영재’와‘교육’이라는 말의 어원이 맹자에 있음을 알겠다.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는 선발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무 입학 지원자나 대체로 받아 들였을 것이므로 선발 방법 따위를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을것이다. 맹자 정도면 제자가 되어 공부를 하겠다는 젊은이를 물리쳤을 리가 없다고 본다. 그 가운데 영재가 있으면 망외(望外)로 가르치는 즐거움까지 맛볼 뿐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천하의 영재를 얻기 위해 대학 입시라는 방법을 쓴다. 그 중심은 국가가 실시하는 수능시험이다. 올 해 수능시험은 너무 어려웠다고 말이 많다. 수능 당국을 변호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려우면 다 같이 어려우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가 어려워야 공부 잘하는 수험생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려 내는 변별력이 있다. 암기보다 창조력 중심으로 문제를 냈으므로 고등학교 교육을 이 방향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수능 시험 성적 위주 대학 입학의 장점으로서 입을 모아 자화자찬하는 것은 그것의 객관성 하나 뿐이다. 고등학교 공부과정을 제대로 했는지, 앞으로 영재 대학생이 될 자질을 갖췄는지, 이 두 가지를 가려 내는 것은 실은 주안점이 아니다. 대입수능시험에서 객관성이란 것은 한 마디로 통계에 의존하자는 것이다. 전국 총 수험자의 시험 성적 전수(全數)통계, 개별 대학의 각 과별 지원자의 시험성적전수통계가그것이다. 한 수험생의 성적은 두 번 쓰인다. 한 번은 통계를 내는데 사용되고 다른 한 번은 이 통계에 따라 결정된 합격 점수에 개별 수험생의 성적을 비추어 보아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데 사용된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한국 사람은 거의 나자마자 시작하여 그 다음 18년 간은 대입수험생으로서 인생을 모두 바친다. 인간성이 완전히 소외된 통계라는 객관성의 우상을 위해 말이다. 소외(疏外, alienation)는 개인이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쫓겨남을(estranged) 뜻한다. 이 말은 마르크스주의가 전세 내기 전에 철학과 종교 등에서 두루 쓰였다. 특히 알베르 카뮈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인‘이방인’이나‘변신’은 제목부터 소외를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인간 소외는 자본주의에 의한 생산 과정의 철저한‘객관화(objectification)’가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의 4가지 특성을 한국의 대입 수험생에 적용해 보자. 1)수험생(노동자)은 자기가 공부(노동)한 것의 성적(생산물)으로부터 소외된다. 왜냐하면 그 성적은 통계를 위하여(자본가에 의하여) 몰수되고 수험생은 그것에 대해 아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2)수험생은 공부 자체로부터 소외된다. 공부 자체의 재미로부터 추방되기 때문이다. 공부는 통계를 위한 원료(상품)로 전락된다. 3)수험생은 자기의 인간성으로부터 소외된다. 앞에말한두가지의소외때문에인간성이 말살되기 때문이다. 4)수험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외된다. 대학입시(자본주의)가 사회관계를 입시관계(시장관계)로바꿔놓기때문이다. 수험생은 인간적 품성으로 평가되지 않고 성적순(시장에서의위치)으로매겨진다. 한국의 대학 교수들도 맹자처럼 군자삼락(君子三樂), 그 가운데서도 세 번째인‘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들을 교육하는’즐거움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통계의, 통계에 의한, 통계를 위한’객관화된 수능시험을 위하여 유소년기 전부와 청년기의 가장 중요한 도입부분을 몽땅 바침으로써 인간에서 철저히 소외된 젊은‘영재’들을 교육하는 것으로는 즐거움을 얻기는커녕 스스로도 교육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외로부터 구원되는 길은 ‘교수노동조합’을 만드는 것보다는 대학 입시의 인간화 복원을 모색하는데서 찾아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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