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개혁과제를 제시했는데’ 어째서 실천되지 못했는가를 설명하는 칼럼(강명관, 실학산책, 2011.6.10)에서 “균전(均田)도 양전(量田)도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문제가 어디에 있고,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알았지만 아무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사회가 회복할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진 것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1920년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4회에 걸쳐 연재된 동아일보 사설은 ‘조선교육에 대하여 一. 二. 三. 四’였다. “아! 교육문제를 논하려 하니 분연 沸然한 心緖가 査積하여 자연히 眼孔이 轉轉하고 咽喉가 鳴咽할 뿐이로다”로 시작되는데, 결론은 민족의 혼을 살리려면 학교가 있어야 하고 민족의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가르쳐 진선미를 갖추고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백, 수십 년 전 상황을 오늘과 비교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과거에서 지혜로움을 얻어 쓰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살얼음판과 같던 일본제국주의를 극복하고,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싹틔우고 경제강국의 토대를 만들어 낸 것은 학교 교육이었다.

매년 계속되던 대학 등록금 문제는 대학생들의 염원과 정치권의 합류로 거리의 촛불시위로 확대되었고, 등록금 관련 태스크포스의 가동, 대대적인 대학 감사 계획 발표로 이어지다가 결국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게 되었다.

말대로라면 원래 껍질을 벗겨내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고,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러한 중대한 문제들로 경영부실과 급속한 학령인구의 감소, 대학의 질적 수준 등을 들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대학 선진화를 위해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 투자 증가, 교육환경 개선이 시급한 시점에서 추가재정의 확보는커녕 반값 등록금의 위기에서 어떻게 활로를 찾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적인 구조개혁을 위해 우선 지혜로운 선별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대학조직은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며, 가치창조적이다. 대학은 시대적·환경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그들의 특수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조직이다. 번뇌와 갈등이 있는 한 새로운 창조를 위한 여유도 필요하며, 어떤 지표에 편중되거나 단기적 시각으로 판단되어서도 안 된다. 최소한 학문의 특수성, 지역적 특수성, 역사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 선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대학구조개혁의 기본은 지원을 통한 선진화여야 한다.

고등교육 취학률이 80%에 육박한다는 것은 한국의 큰 잠재력이고, 자랑스러움이다. 발전적 정책은 고등교육인구를 줄이려는 노력이 아니라, 어떻게 양질의 교육 수혜자가 되어 세계 시장에서 유능한 직업인으로 나서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며, 선진적인 교육내용과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에 적합한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턱없이 부족한 단위교육경비, 교수인력을 보완해야 한다. 대학당국은 한정된 재정을 완급을 고려해 교육과 연구에 우선 활용하는 합리적인 사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학인구 감소를 빌미로 대학의 구조조정을 강요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발전, 새로운 학문 개척 등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함량 미달의 대학 승격이나 신설을 교육행정당국에 강요하는 정치꾼들도 없어야 한다.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행로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원들이 지혜를 모아 “선진화의 대열로 진입하고자 하는 온 국민의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새로운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가장 이상적인 한국적 기적을 이루는 대학모델을 만들어 낼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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