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영 교수 /충남대 교육학과

대학 내에도 빈부의 격차가 발생할 조짐이 보인지 오래다. 대규모 대학에서는 이미 빈부격차가 고착화되어버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학내의 빈부격차라 함은 학문분야별 교육의 질적 양적 격차를 의미하며 대체로 그 원인제공자는 재정 격차다. 대학의 예산이 공공회계절차를 통해 편성되고 집행되기 때문에 이러한 격차는 이론상으로는 성립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원인부터 살펴보자.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학문분야별 재정격차는 역설적으로도 그토록 바래왔던 대학의 연구비재정지원이 커지면서 생긴 일이다. 절대액 규모면에서는 아직도 미국이나 선진국의 규모에 못 미치지만 대규모 대학들은 이미 재원구조의 3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대학의 재원이 정부지원금과 학생납입금 및 연구비 등 외부기여금간의 3자 균형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주자인 연구비재정은 대학본부와는 상관없이 교수개인의 통제권에 놓여있다. 물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과연 그 새가 어느 둥지에서 자라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이다. 이른바 잘 나가는 학문분야에 소속된 교수들의 연구비 획득경쟁력이 순전히 그 개인들의 탓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속된 대학이 수십년에 걸쳐 쌓아 온 명예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교수의 연구와 교육활동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지원금과 학생납입금은 공공재정이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N분의 1로 나누면서 연구비는 일정 집단에게 독식되고 있으며, 결국에는 대학재정의 심각한 불균형 배분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무엇인가?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아말감이라는 점에서 기업연구소와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 미국의 R&D 정책이 유럽의 그것에 비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소중심의 연구보다는 대학중심의 연구정책을 펼쳤던 때문이며, 그 핵심은 연구와 교육을 화합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연구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교육이다. 여기서 교육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가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단순한 법칙이다. 즉 대학내 빈부격차의 해소가 곧 대학에서 교육을 살리는 길이며 결국에 가서는 연구를 살리고 연구비 재정을 키우는 길이다. 전인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기초학문없이 응용학문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이른바 비인기학문들과 경쟁력없는 학문들은 인기학문들과 경쟁력있는 학문들의 어머니요 고향인 것이다. 우선 당장은 어머니와 고향을 잊어버리는 것이 내 살기에 좋을지 모르지만 후회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타산지석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빈부격차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개인만 부자 만들고 국가는 가난하게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개인간 빈부격차가 비대해져, 결국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훨씬 커졌고 국가경쟁력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 각 부문들도 이같은 ‘우’를 답습하고 있으며, 대학도 그 선봉에 서있다. 그러나 대학은 사회를 선도해 가는 곳이어야 한다. 외부연구기금을 많이 확보해오는 것이 대학총장의 능력 지표인것은 옳지만 궁극적인 지표는 그 돈을 잘 써서 보다 장기적인 대학의 경쟁력 기반을 갖추는 일이다. 대학내에 학문간 빈부격차가 커져간다면 결국 그 대학은 이미 썩어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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