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대학 구성원 “정부가 구해 달라” 호소

“우리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환멸을 느낍니다. 정부에서 제발 우리 대학부터 구조조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학자금대출제한대학(이하 대출제한대학)에 선정된 D대 A교수는 “재단의 권한은 막강하고 의무는 없는 게 전형적인 부실대학의 모습”이라며 “10여 년간 D대에 재직하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월급이나 처우를 제공받지 못했다. 우리 대학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2009년 경영부실대학, 지난해 대출제한대학에 선정된 대학들은 이른바 ‘부실대학’으로 분류돼 최우선 정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A교수는 “정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체 대학의 3분의 1정도는 퇴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대학을 포함한 부실대학들에 대한 엄격한 평가와 구조조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삶 전부 바쳤는데…” = D대에서 재직한 지난 10여 년간 A교수의 삶은 오직 학교뿐이었다. 2~3개의 보직을 동시에 수행하며 수업·연구·봉사도 타 교수들만큼 해내야했기 때문이다. A교수는 보직 수행을 도와줄 사무직원 한 명도 없이 자잘한 잡무까지 모두 혼자 처리해왔다. 그럼에도 A교수의 현재 연봉은 2500만~3000만원 선으로 일반대학 교수들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A교수가 이처럼 많은 일들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이유는 일할 만한 능력을 가진 교수가 학내에 몇 명 없기 때문이다. 교수채용 시 D대는 우수한 지원자가 아닌 부족하고 결함 있는 지원자를 우선 선발한다. 되도록 적은 돈을 들여 교원 확보율을 높이겠다는 속셈이다. D대에서는 대학에 약 20억원을 낸 지역 인사의 아들이 10년 넘게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A교수는 “교수들이 학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대학 측은 ‘그럼 나가라’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친 뒤 승진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린다”며 “어느 순간부터 교수들도 학교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체념하게 됐다. 정부가 우리 대학의 잘못된 점들을 낱낱이 파헤쳐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정은 또 다른 대출제한대학인 S대 역시 마찬가지다. S대 B교수에 따르면 대학 측은 매년 건물 신축·보수를 명목으로 예산을 책정하지만 수년째 새로 세워지거나 리모델링된 건물은 없다. 1990년대 말에 착공한 건물이 10년이 넘도록 기초공사 중이고 학내 시설이 망가지면 보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B교수는 “우리 대학은 오너 총장이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자기 배를 채우는 부실대학의 표본”이라며 “학교 공사를 위한 예산이 분명히 책정·투입되는데 올라가는 건물은 없으니 그 돈이 다 어디로 가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B교수는 “총장의 뜻에 따라 우리 학교는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정부 지원 사업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정부로부터 돈을 받으면 그만큼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라며 “총장의 전횡이 날로 심해지면서 학교가 계속해서 썩어 들어가고 있어 정부의 대대적인 감사와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 “입학해보니 도서관조차 없어” = 대학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생 교육도 제대로 이뤄질리 없다. 특히 몇몇 경영부실대학·대출제한대학들은 대학의 가장 기본적인 교육·복지 시설인 도서관·기숙사 등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아 학생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S대 한 학생은 “우리 대학 도서관 건물은 부실공사로 무너질 위험이 있어 사용 금지된 상태다. 대학에서 다른 건물 한 층을 도서관으로 꾸며줘 겨우 사용하고 있다”며 “다른 대학들과 등록금도 비슷하게 내는데 도서관조차 없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교에 청소해주는 아저씨·아주머니들도 없다. 강의실에 항상 먼지가 수북하다”며 “기숙사는 입사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직접 청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대출제한대학인 또 다른 S대는 개교한지 7년이 지났지만 대학본부·도서관·기숙사·강의실 등이 모두 미완성인 상태다. 이 대학 인근주민은 “개교 당시엔 학교 건물이 모두 조립식이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벽돌로 짓고 있다”며 “내 자식이면 저런 대학에 절대 안 보낼 것 같다. 정부가 왜 S대에 설립 인가를 내줬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학교 측의 부실한 행정을 보며 일부 학생들은 “정부 구조조정을 통해 차라리 우리 학교가 큰 대학에 흡수 통폐합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이 퇴출돼 ‘고아’가 되느니 미리 다른 대학에 ‘입양’되는 게 낫다는 의미다.

대출제한대학인 L대 한 학생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좀 더 큰 대학에 흡수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인근에 있는 비교적 탄탄한 사립대와 합친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또 경영부실대학·대출제한대학에 모두 선정된 S대 한 직원도 “차라리 정부가 같은 재단의 대학과 통폐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줬으면 좋겠다”며 “퇴출보다는 통폐합이 출혈이 덜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우리대학도 부실대학인데…” = 경영부실대학·대출제한대학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구성원들이 스스로 부실대학이라고 시인하고 나선 학교들도 있다. 경주대·성화대학 등이 대표적이다.

경주대는 지난해 대출제한대학 초기 50개교에 포함됐다 구제됐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선 “우리대학이 부실대학이다”, “제발 교과부 감사를 나와 달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대학 C교수는 “대학에서 임의로 30여명의 전임교수를 대량 해고한 뒤 올해 필리핀 등에서 외국인 교수 50여명을 채용했다”며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 교수들을 모두 전임교원으로 발령 내는 등 편법을 통해 교수충원율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교수는 “설립자 부인이 총장직무대행을 맡으면서부터 대학은 멀쩡한 화장실을 개조하거나 시설물을 리모델링하는 등 매일 공사를 하고 있다”며 “실험실습비, 연구비는 줄이고 시설공사비에만 엄청 투자를 한다. 전형적인 교비횡령 수법으로 교과부 감사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27일부터 교과부 감사를 받고 있는 성화대학은 교직원 월급을 13만 6000원 지급하며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혔다. 등록금 납부율이 90%가 넘는데도 경영부실로 교직원 월급조차 주지 못한 것이다.

급여논란으로 인해 밝혀진 성화대학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대학 설립자는 교수 채용대가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2월 법정구속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수십억대 교비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 요직은 설립자의 가족이 독점하고 있다. 이사장은 부인, 총장대행은 큰딸, 총무팀장은 둘째딸이 맡고 있는 등 학교 운영 자체를 가족이 맡고 있다. 전형적인 족벌경영 체제로 사실상 투명한 예산집행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이 대학 교직원들은 “교비 횡령 등 비리를 일삼은 법인 측이 대학의 파행을 불렀다”며 “대학의 부실운영 실태를 고발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교과부도 “감사결과에 따라 대학의 폐쇄 등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 “노력하고 있으니 기회 달라” = 그러나 모든 부실대학들이 정부 구조조정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학들은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일정정도의 성과를 거둔 학교에는 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출제한대학인 Y대 D교수는 “지난해 대출제한대학에 선정된 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고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며 “지방대의 경우 수도권 집중현상, 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른 타격을 더욱 크게 입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노력해 성과를 냈다면 인정해줘야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Y대는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취업률은 8%, 재학생 충원율은 7.9%, 전임교원확보율은 10.5%가량 상승시켰다. D교수는 “대출제한대학에 선정된 뒤 학생모집 등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며 “피땀 흘려 노력한 만큼 올해는 (대출제한대학에서) 제외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출제한대학인 J대 E교수 역시 “노력하고 있는 대학을 또 한 번 섣불리 부실대학으로 낙인찍지 말아 달라”며 “대학이 체질 개선에 팔을 걷은 만큼 우리대학을 부실대학이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경영부실대학·대출제한대학에 모두 포함된 한 전문대학 학생도 “대출제한대학에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이 상했던 건 맞지만 이로 인한 동요는 없었다”며 “대출제한대학 발표 후 교수님들이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해오는 등 학교가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대로 퇴출시키기 보다는 한 번쯤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현희·홍여진·조용석·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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