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과 지방대학 육성2 - 학벌주의 청산을 위한 고언- 한완상 한성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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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3.0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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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열화, 인간·사회구조 병들게 해
한국대학의 서열화는 참 능력에 의한 서열화가 아닐 뿐 아니라 그것은 인간과 사회구조를 함께 병들게 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라 하겠다. 대학 서열화가 진정한 실력에 의해 이뤄진다면 걱정할 것 없다. 이를테면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기존의 관례를 개혁해내는 능력,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위기를 더불어 대처하고 극복해낼 수 있는 능력,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능력, 복잡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내는 능력과 같은 것으로 서열화 된다면 오히려 그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 형편에서는, 대학서열화가 고3학생들의 수능 점수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이뤄져왔고, 수능 점수의 높낮이는 주로 학생의 암기력으로 결정되어 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여기서 암기력이 갖는 부정적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기력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기억해서 옮길 수 있는 능력이다. 암기력은 기존의 틀을 그대로 존중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베껴 낼 수 있는 능력일 뿐이다. 그러기에 암기력을 존중하는 교육풍토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나올 수 없다. 창조는 기존의 관례와 틀을 깨지 않고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거기 있는 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창조는 있을 수 없다. 물론 무(無)에서도 유(有)를 만들어낼 수 있겠으나, 이것은 신학적인 논쟁의 문제요, 일상사에서는 창조란 일단 ‘거기 있는 것’을 깨뜨리거나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러기에 암기력에 뛰어난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나라의 엘리트가 되면, 그 나라의 앞날이 그다지 밝을 수 없다. 국가사회가 정체될 뿐 세차게 발전해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정말 슬프게 하는 것은 이 같은 대학 서열화가 인간 서열화를 촉진시키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류·삼류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이류·삼류 인간이라는 뼈아픈 정체의식에 평생 시달리게 된다. 열등의식이 깊이 내면화되어 평생 업보처럼 따라다닌다. 교육의 원래 목적이 사람다운 존엄한 존재로 떳떳하게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면, 이 같은 대학 서열화에 따른 인간 서열화는 교육의 목적을 스스로 뒤집어 놓는 일이 되고 만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비극이다. 오늘 우리나라의 학부모들 태반이 ‘일류대학입학=출세보장’의 가치관을 깊이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자녀들의 조기과외수업을 위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붙고 있다. 일년에 사교육비가 정부의 공교육비 총액보다 더 많다고 한다. 일년에 29조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부모와 당사자 자식들이 겪게 되는 경제적 고통, 심리적 고통, 사회적 고통을 비용으로 합친다면 그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왜 이런 비용을 사교육비로 쏟아 부어야 할까? 그 까닭은 우리사회 국가의 최고위계층의 핵심부에 일류대학 출신이 너무 많이 포진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국민들이, 특히 학부모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10년 전 내가 통일부총리로 임명되어 첫 국무회의 하는 날, 24명의 국무위원들의 출신대학을 찬찬히 따져보니까 꼭 삼분의 이가 S대 출신이였다. 검찰최고위층 33인의 90%도 바로 그 한 대학 출신이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우리의 학부형들이 왜 모르겠는가! 그러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 자식만은 그 대학을 보내겠다고 비장한 작심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면, 암기력을 존중하는 수능시험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로 이같은 학부형들의 절박한 사정을 백분 활용하는 것이 사교육기관인 학원과 과외가 아니겠는가. 과외가 바로 수능시험 성적 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나. 바로 이 같은 왜곡된 기존의 한국 교육 관행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면 혁명적인 개혁을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여기서 지속적 추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학벌타파에 엄청난 시간과 광범위한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학부모들의 한(恨)풀이식 출세욕구(자녀의 출세를 통한 대리만족)를 바로 잡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학부모 가치관 변화를 과녁 삼는 온갖 사회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뿐인가 특정 일류대학이 사회 엘리트층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를 고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기업의 충원방식도, 진급방식도 새롭게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게다가 언론도 (특히 조중동) 교육 문제를 선정주의로 다루는 관행을 버리고, 백화점식 경영을 탈피해야 한다. 특성화를 통해 기존의 대학 서열화를 파괴해야 한다. 여기서 지방대학은 더더욱 특성화 전략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은 지방대학 사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방대학의 특성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정부는 행정 및 재정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방에 있는 인재들이 일차적으로 지방대학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학벌주의 청산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정부, 시민단체, 학부모, 언론, 기업 및 정치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이 같은 학벌타파가 여러 영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될 때 비로소 학습자들이 입시지옥의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고, 부모들이 엄청난 사교육비 조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창의력과 상상력을 존중해주는 열린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 교육선진국의 모습도 뚜렷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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