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과 지방대학 육성(3) 교육재정 확보와 지원

“대학도 망할 수 있고, 대학간 빅딜도 이루어질 것이다!” 설마 했던 것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미 10여년전부터 예견된 일이기는 했으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거나 대학들은 자기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그동안에도 매년 대학들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급기야는 선착순 입학, 경품 입학제도가 등장했다. 대학들의 학생 모시기 사태는 지방대학일수록 더욱 심각하며, 학생부족이 초래하는 재정난으로 인해 문을 닫는 건 아닌지 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02년 전국 대학들의 미충원률은 5.5%이며, 이 중에서도 지방대의 미충원률은 7.5%로서 전체 미충원자의 86.5%를 차지하고, 전남의 경우는 미충원률이 20.1%에나 달했다. 이제 지방대학 살리기는 단순히 낙후된 지방대학의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라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고사 직전에 놓인 지방대학의 문제는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 지방의 사회경제문화적 위기로 이어진다는 암울한 현실로까지 번질 우려를 낳고 있다. 다행히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는 교육정책 중에 최대 코드의 하나로 ‘지방대학 살리기’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가 한달 여 가량 활동을 하였으며 교육부총리 인선 과정의 산고를 겪고 난 현재 시점에서 과연 지방대학 살리기가 과연 처음 생각대로 잘 될까 걱정이 앞선다. 아마도 새 정부의 지방대학 살리기 의지가 얼마나 결연한지, 또 그 구체적 실현 방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정책들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런데 보고서에서는 지방대학정책 중에 R&D지원금 비중을 현재의 8.1%(2001년 기준)에서 20%(2007년 기준)으로 올리겠다는 정책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재정적 대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 외에는 지방대학에 대한 정책적 지원책을 펼쳐 나가겠다는 원론적 수준의 방안만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상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재정적 측면에서 얼마나 소요되고 그에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해낼 것인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안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몇 안되는 정책 어젠다들마저도 대부분 종래의 구두선에 머무른 적이 많았던 정책의 반복이라는 감을 지울 수가 없다. 앞서의 R&D 재정을 지방대학에 현재의 8% 수준에서 20% 수준으로 올린다는 방안만 해도 그렇다. 4년제만을 기준으로 해도 학교수면에서 전체의 3분의 2를 넘어서는 지방대학에 배분되는 연구비 규모를 향후 5년간 그 절반도 아닌 겨우 20%로 늘린다고 하는 것이 과연 지방대학의 몫이나 제대로 챙겨주려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또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간의 분배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일면 그럴 듯 해 보이기는 하나, 이는 결국 수도권 대학들에 배분되던 몫을 지방대학으로 재배분한다는 논리로 발전하여 결과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지역간, 대학간 갈등의 소지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한 재정적 대책은 이러한 제로섬 형태의 배분정책보다는 추가 확보재원을 투자하는 전략으로 접근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지방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재정적 측면에서 먼저 살펴보고 어떤 대책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가 검토해보아야 한다. 수도권 집중이 위기 초래
지방대학이 안고 있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접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1>에 나와 있는 한 조사결과를 보면 지방대학 위기의 원인은 수도권에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절대지배적이다. 이외 교육부의 정책 잘못이나 자구노력 부족 등도 지적되고 있으나 지방의 자원부족이 가장 큰 이유임에는 분명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방대학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집중된 인적 물적 자원을 지방으로 이관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 귀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 함정이다. 말하자면 수도권에 집중된 인적물적자원이 지방으로 이관되면 자연히 지방대학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순환론적 오류에 빠져 능동적 대책을 세워서 상황을 바꿔놓기보다는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논리를 뒤엎어야 한다. 즉 지방대학의 위기가 인적물적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야기하는 원인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대학을 살리지 않고는 이와 같은 집중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지방대학을 살림으로써 새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서 지방대학의 교육과 연구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지방대학의 위기가 가속되었고 그 결과 다시 수도권집중이라는 모순을 낳았다고 보아야 한다. 지방대학의 미비한 교육과 연구여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지방대학만이 안고 있는 재정문제에 대한 생생하고 정확한 정보자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재정의 전체적 구조로부터 추정해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와같이 전체 대학의 상황을 지방대학의 것으로 환원하여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반박할 수 있다. 첫째 지방대학의 상황은 전국 평균에 비해 최소한 더 낫지는 않다는 점이다. 앞서 인수위보고서에서 정부의 R&D 예산의 8%만이 현재 지방대학에 배분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서도 현실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둘째로 수도권의 대학이나 지방대학의 사정이나 다 똑 같은데 새삼스럽게 지방대학만 문제 삼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학은 외딴 섬이 아니다. 즉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여건은 단순히 대학 캠퍼스 내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문화적인 여건과 자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수도권의 대학들은 자체 캠퍼스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각종 교육 및 여건들을 수도권에 온통 집중된 사회인프라를 충분히 동원할 수 있으나, 지방의 경우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학의 전체 수준으로부터 훨씬 아래에 놓여 있다고 추정되는 현장이 지방대학이라는 가설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우리는 <그림2>에서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재정이 선진제국의 그것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총 GDP 중 고등교육비의 비중은 고작 0.4% 수준이며 OECD 평균 1%의 절반에 불과하고 미국의 1.4%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또한 총교육비 중에서 차지하고 있는 고등교육재정의 비중도 OECD 평균이 20%를 상회하고 있지만 우리는 10% 미만에 불과한 수준이다. 결국 한국의 고등교육재정 전체 구조자체가 원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국내적으로는 수도권 대학들에 다시 치이는 현상이 우리의 지방대학이 안고 있는 현실이다. 대학의 교육 및 연구여건을 위한 재정은 어디로부터 와야 하는가? 또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이러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하여 왔는가? 그리고 대학들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가? <그림3>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우리나라 대학들의 답을 서글프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대학의 재정구조를 형태별 설립별로 살펴 본 결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요컨대 대학의 재원은 75% 이상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의 돈을 교직원 인건비에 지출하고 있다. 물론 국립대학의 경우는 등록금 의존도가 45%로서 비교적 덜 한 편이나 사립 비중이 훨씬 큰 전문대학의 경우는 거의 90%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추론되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재정구조상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나치게 높은 학생등록금 의존도는 대학재원의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참고로 미국의 공립대학들은 학생등록금 의존도가 20% 미만이며 사립대학의 경우도 40% 수준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정부지원금이 약 1/3, 그리고 R&D 재원이 1/3 정도로 구성된다. 이렇게 하여 미국대학들은 학생수의 증감에 의해 대학재정이 휘청거리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학생수의 감소가 곧바로 대학의 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국립대학의 경우 상대적으로 최근의 학생감소 위기를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학생모집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사립대학들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는 불문곡지의 사실인 것이다. 둘째 우리의 지방대학들은 틀림없이 재원의 대부분을 인건비에 쓰고 나면 실제로 교육 및 연구여건의 개선에 쓸 돈은 거의 없게 마련이고, 다시 대학의 경쟁력 악화와 연이은 학생 모집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을 것이다는 점이다. 대학간 통폐합 모델 검토 지방대학이 왜 살아야 하는가? 수도권대학도 살아야 하는데 지방대학만 유독 더 많은 재정을 투자하여 살려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와같은 질문들은 충분히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차원에서 논리적 근거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방대학들이 왜 죽어가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은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수도권에 집중된 사회적 인프라 때문이다. 지방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지방대학만의 자구책을 구하라는 것은 논리 모순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수도권에 집중된 대학들은 지방의 인재와 교육재원을 다시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흡착기제로 확립되어버린지 오래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 무엇보다도 지방의 가난한 천재들이 갈 곳을 잃게 되고 급기야는 아까운 재능을 썩혀버림으로써 궁극에는 국가적 자원을 손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지방대학의 소멸과 수도권에의 종속은 지방의 소멸과 수도권 종속을 그동안도 초래해 왔듯이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며 급기야는 수도권의 폭발로 인한 국가적 재난을 초래하고야 말 것이다. 이제야 말로 보다 구체적인 방책을 생각해야 할 때다. 듣기 좋은 말의 나열이 아닌 자기 희생을 전제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몇 가지 대책을 생각해보자. 첫째는 무엇보다도 새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GDP 6%의 공교육재정을 확보하고 그로 인해 확보된 재원 중의 1/3을 지방대학에 투자한다는 정책 방향을 정립하고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할 것이다. 향후 5년간 실질경제성장율이 5%라고 가정했을 때 추정되는 2008년의 GDP는 약 8백조원에 해당되며 이로 인해 추가로 확보되는 1%의 공교육재정은 약 8조원에 해당된다. 물론 이러한 전망이 예상대로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출발점인 현재 시점에서라도 정책방향은 분명히 정립해둘 필요가 있다. 둘째는 지방의 국립대학 및 사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은 원칙적으로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그로 인한 대학의 재정누실을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이 경우 정부는 대학에 대한 직접재정지원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며 지방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 대한 대폭적인 장학금 지원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방의 경우 대학의 등록금 인상은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사립대학의 등록금 부담을 둘러싼 분쟁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며, 국민가계의 경제규모를 생각해볼 때 현재의 등록금 규모도 이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셋째로 대학간 통폐합 모델을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미구에는 외국 자본들이 대학 부문으로 들어오고야 말 것이며, 그 대상은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이며, 당연히 지방대학들은 또 한번 외국 대학들과의 싸움터에 나서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루 속히 대외적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대학간 협력라인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대학간 또는 수도권대학과의 M&A 모델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넷째는 지방대학생들을 위한 대단위 기숙사 단지를 조성하는 일이다. 지방대학생들의 학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수도권 학생들 못지않게 숙식경비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대단위 기숙사 단지를 조성하고 저렴한 값으로 학생들의 숙식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숙사 단지 조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 재정만 투자하기 보다는 민간 재원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투자 사업은 건설투자 부양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천세영 <충남대 교수.본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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