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원 (강원대 정치학과 교수)

지난해 여름방학 한 달을 중국 연변에서 보냈다. 한국대학교육봉사협의회의 해외봉사단 중국팀 단장으로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약 40명의 봉사팀을 이끌고 1달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봉사의 마음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눈물이 나도록 느꼈다. 또한 봉사할 수 있는 젊음 역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다.

하루는 봉사지역 소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조선족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약간의 한족학생들도 있었다. 자연히 학부모들도 조선족 동포들이 많았다. 이 지역에서 학교 운동회는 마을 축제와도 같다.

마을 공동체의 단합대회 성격이 더 많다. 운동회를 빙자하여, 그간 못 만났던 마을의 유지나 어른들이 모두 모여 체육대회도 하고 음식도 잘 차려서 푸짐한 잔치를 벌인다.

아이들도 신나고 장사꾼들도 신나고 동네 강아지들도 신나지만, 무엇보다도 어른들이 신났다.

아침부터 백주(흰색의 독한 술)를 시작하여 하루종일 취해있기로 유명한 조선족들이다. 그래도 기본의 일은 있기 때문에 주위의 눈치는 보면서 홀짝거리는 나그네(조선족 말에서는 남편의 뜻)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운동회 날은 아마 새벽에 눈뜨자마자 먹기 시작해도 의기양양하고 위풍당당할 수 있는 떳떳한 날인가보다.

아침 일찍 모이기 시작한 어른들의 얼굴 빛만으로도 오늘이 축제의 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한국에서 봉사단이 와서 애들이 방학을 신나게 보내고 있는 터에 운동회가 열리니 우리 봉사단을 위해 한 상이 차려졌다.

소, 돼지, 닭, 오리 등 육류 요리만 열 다섯가지 정도가 조그만 상위에 두 겹 세 겹으로 쌓였다. 나는 봉사단 단장이라고 마을 유지분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서 접대를 받았다.

촌장, 부촌장, 교장, 교감, 보건소장 들과 기분좋게 음식을 들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조선족 마을 어른들의 안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낙네들은 꽤 있었다. 슬쩍 물어본 결과, 안사람들의 소재지는 한국의 수원, 안산, 오산, 의정부 등지의 갈비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이들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한국에 돈벌러 아무나 갈 수 없단다. 돈벌러 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단다.

자기네들은 돈벌러 가기 위해 돈을 벌었다고 했다. 운동회에서 음식 시중을 들고 있는 아낙네들은 이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인가?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이산가족 현상에 마음 아파할 수도 있다. 그래도 잘사는 남한을 뽐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진짜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 한족들이다.

남조선에서 벌어온 돈은 거의 고스란히 술값으로 뭐로 한족 수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족들은 그런단다.

"조선족 너희들은 일해라. 돈은 우리가 번다" 은밀한 얘기는 확인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생략하고, 외형적인 면만 보자.

아이들과 나그네들은 돈벌러 간 엄마와 아내를 그리워하고, 한국에서는 연변을 그리며 온갖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번다.

아이는 혼자 털레털레 학교에 가고 집에 와서도 본다는 것은 술 취한 아빠의 얼굴뿐이다. 좀 과장되지만 크게 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학교 교실 뒷 칠판에 써있던 낙서 비슷한 시가 적혀 있었다. 아바이, 어른들은 왜 술을 먹나/ 음, 마음이 울적하거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래, 그럼, 아빠, 나도 술 먹을래/ 남조선에 돈벌러 간 엄마가 보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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