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과 밭이 거북 등처럼 금이 가고 쩍쩍 갈라지며 타 들어갈 때는 농민들의 가슴속도 그렇게 갈라지고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장마철에 들어서면서 땅바닥은 젖을 만큼 적셔지고 물난리가 나는 곳도 있다.

물난리는 해마다 거른 일이 없는 연례 행사다. 그때마다 높으신 양반들이 서로 앞다투어 이재민을 찾아가고 TV에 얼굴을 파는 것도 연례 행사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장마는 걷히고 햇빛은 쨍쨍 뜨거운 여름이 이어지며 이재민의 고통 따위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대개들 잊고 살아간다.

그런데 가뭄에 타들어 가는 농민들의 가슴은 비가 알맞게 내리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많은 대학들은 언제쯤 해갈을 하게 될지 막연하다.

대학의 가뭄은 첫째가 돈 가뭄이다. 재정문제가 대학에 위기를 몰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지역적인 것이면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사립대는 재단이 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대학 운영자금은 거의 학생들 등록금에서 충당된 것이며 대학의 재단들은 대개 그것을 댈만한 능력도 없고 애초부터 그럴 의지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일부 지방대학들은 수 년 전부터 정원미달 학과가 생기고 많은 학생들이 서울 등 대도시의 대학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더구나 이런 현상은 무한경쟁의 시장경쟁 논리를 타고 더욱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시키며 많은 지방대학들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머지않아 돈 가뭄으로 고사할 수밖에 없는 대학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돈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현상은 지역적인 문제다. 서울에만 비가 오고 있고 그 중에서도 일류대학에만 늘 풍족하게 마음껏 샤워하고 수영하고 부티를 내면서 그래도 부족하다고 기부금제도까지 들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전체 땅덩어리와 서울의 일부 대학 캠퍼스 면적과 비교하면 이 같은 지역적 문제는 거의 이 나라 대학 90% 이상의 총체적 위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밖에 기초학문분야가 타들어 가고 있는 것도 심각한 대학의 위기이며 중고생들을 학원의 기형적인 입시 준비로만 몰아가며 천재들까지도 둔재로 만들어 가는 대학의 입시제도도 큰 위기일 수밖에 없다.

이제 이런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이유는 지금이 방학이기 때문이다. 바쁜 때에는 누구나 허둥지둥 곁을 바라볼 여유도 없지만 지금은 긴 방학을 맞이해서 좀 더 깊게 넓게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금주부터 제주, 부산, 목포 등지에서 전국 대학의 총장과 교무처, 학생처, 기획처, 홍보처장들이 모여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가치 있는 일이겠다.

다만 이것이 방학 때에만 보직 교수들이나 총장이 일류 호텔에 가서 한번 만나 인사하고 그 동안의 피로나 풀고 헤어지는 연례 행사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총장이나 각 처장들은 이 나라의 많은 대학들이 위기라고 하더라도 가뭄 때 타 들어가는 논바닥을 바라보는 농민처럼 그들 역시 이 문제를 그 같은 위기의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문제 또는 자기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오늘의 대학 위기를 누구나 다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것이다. 이 나라 모든 국민의 미래를 위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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