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와 튤립의 나라에서 온 히딩크가 영웅으로 부상했다. 반세기만에 우리 팀을 16강도 아닌 8강, 4강까지 올려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그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냈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그렇게 놀랄 만한 인물은 아닐 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가 훌륭한 감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성공은 특별한 비결 때문이기 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적 방법을 쓴 것이 가장 큰 성공의 원인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대표팀 구성을 실력위주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 특유의 학연 지연 등 구질구질한 조건을 배제한 실력위주의 선수기용. 이렇게 실력자를 기용한다는 것 이상으로 상식적이고 평범한 방법이 또 있을까? 유치원 아이가 감독이 되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이기려면 실력자가 뽑히는 것이 당연하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 그는 실력자를 키웠다기보다는 이미 있었던 실력자를 써먹은 것뿐이라 해도 좋다. 물론 누구든지 그의 강도 높은 훈련에 의해서 더욱 실력자가 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2류가 대표로 뛰고 1류가 운동장 밖에서 설움만 삼키고 있을 때 그를 불러들이며 자리를 바꿔 놓은 것은 이미 저쪽 구석에서 울고 있던 실력자를 써먹은 것뿐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기장 밖의 실력자를 불러들였다면 그 전에는 2류, 3류가 섞여서 뛰었고 그래서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 한번도 못 나갔다는 얘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대학에 적용해 보자. 교수 선발이 실력보다 학연, 지연 등에 있었다고 치자. 그래서 학과 교수들이 모두 그 스승과 선후배 제자들로만 구성되었다고 치자. 이렇게 되면 그 학과 또는 그 대학은 1류가 빠지고 2류가 대표로 뛰는 시시하고 맥 빠진 경기장이 되기 쉽다. 동문이 아닌 이상 어떤 1류라도 교수 채용에서 빠진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그래서 그런 대학은 아무리 정부가 지원금 퍼주고 기부금 몰리고 대기업들이 연구실, 도서관, 교수회관 까지 다 지어줘도 밖에 나가면 1백 등도 못하는 후진국 대학이 될 것이다. 학연 지연 등의 봐주기는 아름다운 인간적 정서의 표현인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공정성을 무시한 자기편 만들기는 결국은 이기적 발상이며 그런 조직 속에 새로 편입되는 인물은 어느 누구도 선배나 스승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함이 불문율이다. 그리고 학문세계에서 그것은 스승과 선배의 학문적 성과를 함부로 비판하고 능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후배들의 도전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똑똑한 실력자는 대학원 진학도 안받아주고 말 잘 듣는 2류 이하만을 식구로 영입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그런 대학은 영원히 2류 이하로 머물 수밖에 없다. 또 이런 가능성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대 졸업 후 국전 등에 출품해도 심사위원들이 자기편만 입선, 특선 시켜 준다고 해보자. 음악, 무용, 영화 등 다른 모든 예술분야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보자. 금전적 대가 등의 스캔들은 빼고 보더라도 그 결과는 한심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는 늘 2류, 3류 이하만 대표선수로 뛰고 1류는 스탠드에 앉아서 눈물만 삼키는 경기장이 될 것이다. 제발 대학만은 이런 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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