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 <본지 주필>

포항공대가 개가를 올리고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나노과학기술의 연구성과는 두 가지의 큰 의미를 지닌다. 머리카락 두께의 1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초미세 단위의 나노선은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포항공대가 해낸 그 연구성과는 미국의 그것보다 2백배나 더 가는 것이고 그것이 앞으로 전세계 IT산업 분야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하나의 의미는 이런 연구성과가 다른 종합대학들을 제치고 재학생 3천 미만의 단과대학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 대학은 비록 규모는 다르더라도 자주 이런 연구성과로 세계적 주목을 받는 대학으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발전의 배경은 무엇일까? 개교 후 5년의 짧은 역사밖에 못 가진 이 대학이 이만큼 주목받는 대학이 된 것은 물론 산·학·연 협동체제를 활발하게 추진시켜나갈 재정적 뒷받침이 든든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막대한 연구비를 받는 각종 연구팀은 다른 대학에도 많다. 나노과학연구팀 역시 돈 많은 세칭 일류 종합대학에도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흔히 '과학연구에는 자주 운이 따른다'는 말을 한다. 포항공대에서 이번 연구의 주역이 된 홍병희 씨가 30세의 박사과정 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에 대해서도 운이 좋았으리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포항공대가 발표해온 많은 연구성과를 보자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 대학이 얼만큼 연구하는 대학으로서의 알찬 운영체제를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며 그런 전제하에서만 행운도 때로는 따를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종합대학이란 무엇인가? 애초부터 실속없이 덩치만 불려 온 것이 우리나라 종합대학의 역사가 아닌가? 서울대가 종합대학으로 출발한 후 이 나라의 거의 모든 대학들은 서울대의 뒤를 따라 무조건 종합대학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경희대는 49년에 신흥초급대학으로 시작하더니 6년 뒤에는 벌써 신흥종합대학이 되었다. 한양대는 48년에 공대로서 뚜렷한 성격을 갖추고 출발하더니 59년에는 종합대학이 되었다. 중앙대는 47년에는 중앙여자대학이더니 6·25 전란중에 벌써 종합대로 바뀌었다. 거의 모든 대학들이 이렇게 최대한 모든 계열의 학과를 증설하고 학생 수를 늘려가며 백화점 대학으로 바뀌고 비만증을 과시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좁은 캠퍼스에 너무도 비대해진 몸집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서 분교가 등장했고, 그 분교 역시 종합대로 비대화작업을 지속시켜 나갔다. 물론 종합대학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종합대학도 그 모든 계열 모든 학과를 국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류대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또는 국제적인 일류대 일류학과가 만들어지려면 그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행정력이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백화점식은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큰 대학 종합대학만 알려주는 백성이다. 배고파 굶주리던 백성인 탓일까? 결국 이것은 규모는 적어도 전문화·특성화를 일류를 지향해 나가려는 참된 대학 발전의 길을 가로막아 오고 있다. 왜냐면 아무리 후진 학과라도 종합대 상표가 붙어 있어야 팔리는 학교가 되고 값도 나가니까. 이런 의미에서 포항공대와 같은 단과대학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몸집만 불리고 뒤뚱거리며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해온 대다수 종합대학들은 이제부터라도 뭔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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