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주임 선생한테 불려 가서 무릎꿇고 앉아 잘못을 비는 학생. 지난번에 국회의원 나리들 앞에 불려 가서 꾸중 들어가며 사과한 한완상 부총리의 모습이 꼭 그랬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안겨준 "그 아픔과 책임을 통감하며 이 모두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반성한 것이다. 한완상이 사과한 죄목은 수능고사 문제 난이도 조정 실패라는 것이었다. 수능점수가 평균 60점 정도 하락할 만큼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풀 수 없는 시험지 앞에 놓고 절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험생들을 절망시키고 부모들을 통곡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라면 그 근본원인은 난이도 조정기술의 미숙이 아니라 줏대 없이 난이도를 조정하겠다고 변덕을 부린 데 있다. 애초에 학력고사를 수능고사로 바꾼 취지는 뭐였던가? 수능고사는 문자 그대로 수학능력만을 평가하는 고사다. 입학 후에 공부를 따라갈 능력이 있는 지만 검증한다는 것이었다. 그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어느 대학이라도 기본 자격이 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적성을 가려내고 내신이나 심층적 면접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된다. 이처럼 수학능력만의 평가라면 천재만 풀 수 있는 문제까지 낼 필요 없이 수능 시험은 쉬워도 된다. 그리고 그래야 이 나라 입시제도로 인한 온갖 부작용도 덜 수 있다. 서울대가 이번부터는 학과별 심층적 면접 결과에 더 큰 비중을 두겠다고 한 것도 뒤늦게나마 그것이 옳은 길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애초에 그런 취지로 쉬운 수능 정책을 수립했다가 이번에 변덕을 부리더니 대국민 사과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면 쉬운 수능을 갑자기 어려운 수능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소신이 바뀐 탓이라면 말도 않겠다. 바뀐 이유는 오직 일간지들이 선전한 '국민 여론' 때문이었다. '변별력이 없는 물수능' 이런 비난이 정책 변경의 이유였다. 그렇지만 만점자가 60명이나 되고 고득점자가 많이 나왔더라도 동점자가 많아서 선발불능이었거나 고득점짜리가 모두 바보였음을 입증한 대학은 없다. 아니 수능생 전체가 만점인들 어떠랴! 그러면 정말 분별력이 없는 제도가 되나? 수능점수가 아니면 아무도 우열분별이 불가능할 만큼 대학교수들이 눈이 멀어 있단 말인가? 수능시험점수만이 수재와 둔재의 절대적 선별기준이라 믿고 그 서열로 대학서열을 삼고 있는 이것은 이 나라가 지니고 있는 가장 우매한 교육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일부에서 별뜻없이 서털구털 내뱉는 불평을 침소봉대한 일간지 선동기사에 굴복하고 쉬운 수능을 어려운 수능으로 바꾼 것이다. 그럼 이번에 또 일간신문에 얻어맞고 국회에 나가서 사과까지 했으니 다음에는 다시 쉬운 수능으로 돌아서나? 국민이 정부에 막강한 권한을 맡겼다면 그만큼 소신을 갖고 책임 있는 행정을 펴 나가야 한다. 침소봉대와 선동적 기사로 재미보고 있는 언론의 위력이 아무리 커도 정부가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이제 교수노조 교대파업 교원 정년연장 교총 정치 참여 등 온갖 문제로 사면초가인 교육부가 그렇게도 소신도 책임감도 없다면 이 나라가 어찌될까? 교육부는 지금부터라도 확고한 소신과 책임감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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