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진정성, 감동. 요즘 TV 예능의 대세는 이렇게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밥 한 끼를 둘러싼 리얼한 쟁투, 지금껏 숨겨왔던 비밀을 스스로 폭로하고 가식을 벗어던져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진정성, 오디션이 보여주는 멋진 퍼포먼스와 대비되는 개인적인 아픔. 우리 시청자는 리얼한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진정성을 짐작하고 감동한다. 그 대가로 시청률을 지불한다. 이렇게 오늘날의 인기 예능인, 이른바 미디어 엘리트들이 탄생한다.

새로운 엘리트들은 비밀로 자신을 은폐하기보다는 모두 공개하는 결단을 통해서 현재 지위에 도달했다, 물론 그 결단은 리얼하고 진정성이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동적이지 않다. 아무래도 당대가 미디어 사회인 까닭에 다른 사회적 엘리트 역시 유사한 전략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정치인이 미디어 엘리트에 가장 흡사할 것이다.

오늘날 중요한 정치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많은 비밀을 대중에게 노출해야 한다. 재산은 얼마인지, 군대는 다녀왔는지, 어떤 이유로 이사를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비밀이 없는 투명성, 바로 이것이 관건이다!

가장 걸출한 사회학자로 추앙받는 게오르그 짐멜은 정확히 105년 전 다음과 같은 이상한 얘기를 한다. “비밀은 인류가 이제껏 쌓아온 가장 중요한 업적의 하나다.” 비밀에 질색하고 투명성이 대세인 오늘날 이러한 발언은 매우 수상하다. 역시 사회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엉뚱하며 고약한 인간인가?

짐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이렇다. 근대가 되면서 개인들, 즉 사회적 행위자들은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따른 가면을 써야만 한다. 근대인들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다. 그 이유는 사회에 있다. 근대, 즉 사회가 전문화되고 분화되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었다.

예컨대, 칼럼의 필자는 아버지이자 교수이며 소비자다. 이들 역할이 언제나 조화롭지는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나’의 일관성에 집착하지 않고 각 상황의 경계를 어느 정도 지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아버지처럼 교수 노릇을 하거나, 마치 소비자처럼 칼럼을 써서는 안 된다. 즉 각 역할은 그 상황에 맞게 인간 전체의 특정 부분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 그릇에 담기지 않는 다른 부분이 바로 짐멜이 말하는 비밀이다. 비밀은 각 개인을 상대방에게 투명하게 보이지 않게 하며, 바로 이런 이유로 자유와 인권의 보루가 된다. 교수로서 나는 학생들에게 부족한 아버지, 치졸한 소비자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마치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 밖 생활을 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역할은 개인들의 비밀을 지켜주면서 사회가 적절히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

짐멜은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비밀은 지배의 근원이다.” 지배자, 지배체제는 타인의 ‘정보’는(폭로된 비밀은 정보로 변한다) 소유하지만, 강제력과 은폐와 기만을 통해서 자신의 비밀이 폭로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내 비밀은 노출하지 않은 채 남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힘이 된다. 또한 비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 행사됨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보와 비밀의 비대칭성이 사회적 수준에서 고착되면 전형적인 지배-피지배 관계가 된다. 바로 이럴 때 미디어가 필요하다. 즉 지배자들의 비밀을 폭로해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존재 근거다.

리얼, 진정성, 감동이 대세인 오늘날 미디어는 사명을 나름대로 잘 수행한 듯하다. 인기 예능인과 정치 엘리트들은 이전보다 비밀을 덜 가지고 있다. 다만 문제는 미디어 자신의 비밀이다. 현재 영국과 한국에서 미디어가 관련된 도청 문제로 시끄럽다. 미디어의 객관성과 공정성? 오늘날 미디어는 마치 기업이나 권력 기관처럼 사익(판매·시청료·권력)을 위해서 행동, 아니 ‘영업’하며 그렇게 비밀을 축적한다. 비밀 폭로에 특화된 미디어의 영업 비밀, 대체 누가 폭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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