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5·18시위 논란 점검

지난 18일 한총련의 5·18 23돌 기념행사 방해 사태는 대학가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건 초기 한총련은 국가행사에서 폭력난동을 부렸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곧 국민과 5·18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한총련이 아직도 구태의연한 운동의 내용과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판과 동시에, 한총련의 폭력성이 지나치게 과장됐으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수행한 것뿐이라는 대비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화물연대의 파업사태와 전교조와 교육부의 갈등 등 다른 사회적 갈등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함으로써 일과성 해프닝에 불과한 사건이 침소봉대됐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한총련 합법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나선 시점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이 어떤 파장을 미칠지도 주목거리. 그 논란을 따라가 봤다. ◇'난동'인가? ‘정당한 비판’인가? = 정재욱 한총련 의장(연세대 총학생회장)은 시위로 인한 파장이 커지자 사건 다음날 연세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8일 대통령께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 결과적으로 기념식 행사를 지연시키려는 것처럼 비춰졌다”며 “5·18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또 검·경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출두를 요구한다면 직접 출두해 해명하겠다고 말해, 꼬인 매듭을 풀려는 적극성을 보였다. 경찰과 일부 언론으로부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이하 남총련) 역시 “조화를 짓밟고 버스를 흔드는 등 폭력행위에 대한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한총련이 수세에 몰리자 미묘하게 말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한총련은 지난 16일 홈페이지를 통해 “굴욕적인 방미 외교를 사과하지 않는다면, 5·18 묘지 방문을 저지하겠다”는 5·18 투쟁 방침을 알리고, 의견을 전하는 방법으로 △피켓시위 △성명서·항의서한 전달 △5·18묘지 봉쇄 계획 등을 세워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건 직후인 19일 새벽 한총련 홈페이지에 띄운 성명서에서 묘소 참배를 ‘가로막은’ 행위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사태 전개가 우발적이었는지 여부는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총련 학생들의 일부 행태를 부각시키기보다 구체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다른 차원의 문제제기도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와 관련,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한총련 학생들의 주장도 겸허하게 들을 자세를 갖는 것이 참여 정부의 자세다. 사법 처리된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지키겠다"고 말했다.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도 정부의 ‘관련자 엄정처벌’ 방침을 강력 비판하고 “젊은 지성인들인, 학생들의 5·18시위를 보며 희망을 읽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런 인식은 정부의 대북정책과 방미외교 성과와 관련한 세간의 논란과도 관계가 있다. ‘과공’논란까지 부른 노 대통령의 친미발언에 이어 대북정책에 있어 강경한 흐름이 감지되자 국민의 상당수뿐만 아니라 집권 정당 내부에서 조차 노 대통령의 정책변화를 의아해하거나 방미외교 성과 논쟁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한총련의 주장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하는 만큼 정부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노 대통령은 지난 21일 5·18관련 단체의 ‘선처’ 호소를 사실상 수용해 당시 가담 학생들에 대한 사법조치는 최소화될 전망이다. 이에 앞서 21일 새벽 광주지방법원은 경찰이 제출한 한총련 의장 등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소명 자료가 부족하고 체포할 만한 사유가 충분하지 않다”며 기각 이유를 밝혔다. 경찰이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강경몰이에 조건반사적으로 동조했다는 비판이 이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영장 재청구보다 처벌 대상자를 크게 줄이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법화에 차질 생기나? = 정부는 이번 일과 한총련 합법화 문제를 기본적으로 연계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내놨지만, 한총련 합법화 시기가 일정기간 늦춰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 강금실 법무장관은 지난 21일 “지금까지 한총련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오면서 조만간 가시적 조처를 취하려 했으나 이번 사태로 당분간 논의가 중단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한총련이 이번 사태를 사전에 의도했는지와 국민 여론을 감안하고 11기 발대식 등 향후 행보를 지켜본 뒤 검토 여지가 있으면 다시 합법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송광수 검찰총장도 22일 “한총련이 일부 변화움직임을 보이지만 기본노선이나 강령의 기본정신, 추구하는 기본방향 등은 변화가 없는 만큼 검찰입장도 변화가 없다”며 “한총련도 사회변화에 따라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는 쪽으로 노선이 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최근 내려진 한총련에 대한 대법원의 이적규정을 여전히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합법화의 선행조치로서의 ‘수배해제’를 일단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강 장관이 밝힌대로, 애초 한총련 합법화 논란은 법리논쟁이라기 보다 보수정서를 설득하는 문제였다는 점에서 향후 여론의 추이가 합법화 재논의와 그 실현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울러 11기 한총련이 ‘발전적 해체’ 입장까지 언급하며 “자기 개혁노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장으로 삼겠다”고 호언했던 ‘한국대학생 5월축전’(5월30~6월1일 개최 예정)이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치러질지도 주목할 만하다. 어쨌든 보수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권 차원의 결단을 통해 해결하려했던 한총련 합법화가 뜻하지 않게 암초에 부딪친 것에 대해 정부나 한총련 모두 당혹스러운 기색임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가 최대한의 선의를 보여줬음에도 한총련이 자승자박한 꼴”이라는 주장과 “이념과 강령의 문제인 합법화의 쟁점과 이 시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 사이의 간극을 메울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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