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시 100% 국고환수 스스로 손뗄 운영자 없어

7월 초 감사원의 대학가 예비감사를 앞두고 한국대학총장협회는 박범훈 교육문화수석 앞으로 ‘대학등록금 문제와 관련한 건의’라는 제목의 짤막한 문건을 보냈다. 이 문건에는 “대학 스스로의 혁신 노력을 유도함과 동시에 대학 설립자의 사회적 기여도를 감안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퇴로를 법적으로 열어주시기 바란다”는 요청이 담겼다.

‘반값 등록금’ 논란이 부실대학 퇴출 논의로 이어졌지만 탈출구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현행법이 학교법인 해산시 잔여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학교법인의 해산 인가 신청’에 관한 사립학교법 제34조와 시행령 제15조는 대학 퇴출은 “공익법인 설립을 위한 재산으로 잔여 재산을 출연하는 경우에 한한다”고 명시했다.

부실대학 정리의 절차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설립·운영자가 해당 대학을 정리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학 퇴출시 해당 재산이 100% 국고로 환수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대학 운영에서 손을 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대학 설립자에게 잔여 재산의 일정 비율을 돌려줘 자율적 퇴출을 유도하자는 법안이 이미 수차례 발의됐으며, 잠자고 있는 이 법안들을 현실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학 법인 관계자들이 강조하는 ‘법적 퇴로’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2009년 정부가 제출한 사학법 개정안은 학교법인 해산시 잔여 재산 일부를 설립자에게 돌려줄 것을 제안했다. 대학 부채 탕감 등 해산 경비를 제외한 돈은 사회복지법인 재산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부실대학의 자발적 퇴출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하지만 이 안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3년째 계류 중이다.

지난해 김선동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립대학 구조개선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사립대 구조개선 법률안)도 핵심은 잔여 재산 처리다. 이 법률안은 “사립대 법인이 해산 내용이 포함된 자율구조개선계획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승인받을 경우 현행 사학법 조항에 불구하고 해산할 수 있다”고 정했다. 또한 잔여 재산 일부를 처분계획서에 명시된 자에게 돌려주거나 공익법인·사회복지법인 설립에 출연할 수 있게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립자가 돌려받는 몫을 구체적 수치로 정한 안도 있다. 올해 초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학법 전부개정안이 그것이다. 개정안은 “학교법인 해산시 설립자 또는 존비속에게 총 잔여 재산의 30%까지 지급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도록 했다.

이들 법안은 모두 대학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사학에게 법적 퇴로를 열어주자는 내용을 담았다. 부실대학 낙인 찍기에 앞서 해당 대학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는 방법을 찾자는 문제의식이 공통점이다. 김선동 의원 측은 “부실대학이 등록금과 혈세라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연명해왔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잘하는 대학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율적으로 부실대학을 정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적 법제화 움직임은 학령인구 감소세와 맞물려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났지만 사실 부실대학 정리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쟁점이 됐다. 김영삼 정부가 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해 급격히 늘어난 대학 숫자가 이 같은 우려를 낳았다. 그간 부실대학 퇴출 논의가 제자리를 맴돈 것은 잔여 재산 처리를 둘러싼 첨예한 의견차 때문이었다.

여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사학법 개정안 처리 의사를 밝히자 곧바로 야당이 “비리 재단에게 재산을 돌려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반대한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한계·부실 사학 퇴진으로 이어지는 자율적 구조조정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먹튀’ 설립자의 잔여 재산을 챙기기 위한 고의적 부도 사태로 변질될지, 아직도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사학 법인 관계자들은 ‘명예퇴진’ 기회부터 달라고 입을 모은다. 부실대학 낙인을 찍어가며 강제 퇴출하는 방식보다 우선 자율성을 부여한 뒤 사후 규제를 하는 게 순리라는 입장이다.

반대편에서는 다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논의되는 ‘대학 숫자 줄이기’ 방식 대신 전체 대학의 입학정원을 줄이는 동시에 각 대학 교육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학생 숫자 줄이기’ 방식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는 최근 논평을 내 “부실대학 운영자들이 고의로 부도를 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차라리 ‘한몫’ 챙기고 대학 문을 닫는 게 낫다고 판단하지 않겠느냐”며 “원활한 대학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합리적 원칙과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오히려 공공성 강화와 지역균형발전이 구조조정의 원칙이 돼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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