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학생 교육권을 보는 '인식의 장애'

지난 7일부터 서울대에서는 장애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학생들의 1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인 시위에 참가한 박윤정(경영2·청각장애 2급)양은 “학교측이 청각장애 학생을 위해 속기사를 고용해 대필서비스를 해주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학교측의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 양은 지난해 1학기에 3과목, 2학기에 4과목의 수강을 이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신입생이 된 이모 군(청각장애 2급)은 토론이나 조별 발표 등 의사소통이 필요한 수업에 참여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며 한달이 넘게 학교를 나가지 않고 있고, 지난 1월 50살의 나이로 서울 법대에 합격해 화제를 모았던 한 장애인도 캠퍼스 내의 이동권을 제약받아 심각한 불편을 겪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장애 학생들의 실질적 교육권에 대한 보장도 하지 않을 거면서 왜 뽑아놨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고 있다. 또 “장애인의 서울대 입학을 ‘인간승리’로 묘사해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것에 분노와 자괴감을 느낀다”고 전한다. 문제는 대부분 대학에서 실시되는 장애인 학생을 위한 지원체계나 대학당국의 인식이 서울대의 이러한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낙후된 장애인 지원시설과 지원체계의 문제는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에 대한 대학들의 편견, 차별에 대한 민감하지 못한 의식, 이로 인한 잘못된 접근에서 비롯된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김형수 연구원은 “장애인학생들을 가장 좌절하게 만드는 건 ‘우리 학교 학생이니까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게 최대한 지원해준다’는 것이 아닌, ‘베푸는 차원에서 뽑아준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해라’는 대학당국의 태도”라고 설명한다. 재작년 모대학에서 한 장애인학생이 학습권을 침해받았다며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내자 그 대학의 학생처장이 한 말이 인상깊다. “요구하는 것은 친절하게 다 들어줬다. 그런데 아무런 상의 없이 소송을 걸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큰 배신감이 밀려온다”. 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일이 요구해야 무언가 얻을 수 있는 처지가 그 학생에게는 ‘구걸’처럼 비참한 것은 아니었을까? 먼저 헤아려 학생 편의와 편리를 도모하는 것이 실력있는 학교행정이라면 장애인학생으로서 본 학교행정이 ‘영 아니올시다’였던 것은 아닐까? 대학들도 항변할 말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일반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강요하는 희생의 수준보다 대학은 덜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딱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럴때는 차별과 편견의 상처를 자신에게 투사해보는 연습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한 정치인은 “오늘 아침 출근이나 통학 길에 당신이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멀쩡했던 당신이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될 확률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종문제의 도외시가 아닌, 장애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이중 잣대와 배타성을 꼬집으며 장애 위기가 ‘편재해 있음’을 뜻한 말이다. 자신에게만은 장애의 고통이라는 굴레가 씌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나약한 소망보다 장애인을 내 친구·형제로 어깨걸이 하는 사회적 가치는 그래서 소중하다. 지식과 진리의 요람이어야 할 대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대학들이 마음 속에 녹아있는 인식의 장애까지 치유하는 ‘무장애대학’에 다가가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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