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반 성매매 문화 답습하는 남성중심 교수사회 문제 '심각'

성폭력사건 처리에서 나타나는 상아탑의 일그러진 자화상 대학에서 재단과 교수들이 학교운영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학재단이 절대적 권한을 갖는 한국의 교육상황에서 교수사회는 상대적 약자로서 교권과 대학민주화를 위해 정당한 투쟁을 벌여왔고 이 과정이 민주적 대학운영을 촉진해왔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비춰볼 때 최근 2~3년간 일부 대학의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교수들이 보여준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해 보인다. 학연으로 얼키설키 패거리화한 교수들이 성폭력 가해자인 동료교수의 구명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가하면 징계위원으로 선출된 교수들이 가해자 옹호에만 급급해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교수들은 침묵으로 방관하거나 방조한다. 여기엔 동료 교수에 대한 비뚤어진 연민이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성균관대 국문학 박사과정)는 “교수들은 동료교수가 실수나 잘못으로 곤란에 처했을 때 윤리적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수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으로 전이시켜 옹호해주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 교수에 임용되는 과정을 공통적으로 겪어온 만큼 가해자로서 보다는, 해임의 위기에 처한 동료 교수로 느끼며 잘못된 직업적 연대감을 과시한다는 지적이다. 학교당국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명예 실추’를 들이밀어 피해자에게 침묵이나 어설픈 화해를 강요하거나 조속하고 조용한 해결만을 강조하는 일은 교수성폭력 사건 때마다 학교측이 연출하는 공식이 됐다. ‘학교발전 논리’를 범죄 무마의 명분으로 삼는 셈이다. 서강대의 한 교수는 “학생들은 몇 년 있으면 졸업하는 부유적 존재이다. 재단이나 학교측은 이런 학생들보다 교수를 옹호해주면서 자기 식구를 보호해준다는 명분을 쌓겠다는 얘기인데 물론 환상에 불과한 생각이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학생들의 교육권은 떠도는 말로만 존재하게 된다”며 학교당국의 오도된 인식을 꼬집었다. 이쯤 되면 교수성폭력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학교측과 교수 사이에 ‘학생권력 배제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지적은 빈말이 아니어 보인다.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마치 학생들의 권력을 배제하는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것 같다.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재단이나 학교측은 선심쓰듯 교수 편에 선다. 학생들은 성폭력 교수로부터 수업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이를 관철할) 힘은 미약하다. 실력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보이코트나 비판을 제기하는 수준인데 그랬을 때 (징계 등) 개인적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고액의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의 의사표현을 소비자 운동의 차원으로 본다면 그런 식의 불이익은 어이없는 것이기도 하다”(동국대 조은 교수) 남성중심 교수사회의 왜곡된 성의식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교수사회 일각의 동정적 시선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성매매가 낀 접대문화는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도심뿐 아니라 주택가 반경 1~2km안 어디에서나 성매매를 할 수 있는 유흥주점과 숙박업소 등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교수들은 3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중장년층을 망라한다. 이들 세대에게 이른바 ‘매춘’이 개입된 접대문화의 ‘향유’는 더 이상 도덕적 수치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일의 효율적 처리를 위한 ‘윤활유’로써 판공비가 쓰이기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일종의 ‘놀이’로써 성매매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를 정당한 상거래로 생각하기조차 한다. “지도교수의 출판기념회나 사은회를 공식적으로 끝내면 남성 교수와 제자들만 참여하는 술자리가 이어지고 자연스레 이른바 ‘도우미 여성’들이 있는 술집으로 향하게 된다”는 대학원생들의 증언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실정법을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상화된 성매매 문화는 이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시선을 고정화시킨다. 물론 이러한 ‘문화적 체험’에 참여했거나 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러한 시선에 동조적이기 쉬워진다.
이러한 저변의 문화가 성폭력 가해교수가 ‘제자에 대한 성폭력’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거나 이를 지켜보는 교수들이 이 문제에 민감한 도덕적 반응을 보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 여성단체들의 공통된 지적이기도 하다. 상지대 김정란 교수(교양학)는 “다른 인격체에 대한 매혹을 성적인 언행으로 표현하는 것은 본인에게는 인격장애지만 피해자에게도 더 없는 고통을 주는 행위”라며 “이런 생각의 바탕은 인간이 이성적 주체성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계가 깊은 인간성에서 발현되는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힐난한다. 김 교수의 말처럼 한국사회의 문화적 뒤틀림을 성폭력 교수에 대한 면죄부로 삼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할 책임은 결국 개인의 몫일 뿐 아니라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며 피해자를 심각한 고통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식인으로서 누리는 지식권력을 염두에 둘 때 자신과 동료집단에 대한 평가에 더욱 매서워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과 관련해선 더욱 그러해 보인다. 이와 관련 “다른 분야나 영역에 대한 교수들의 생각은 매우 진일보해졌지만 성폭력에 대한 교수들의 왜곡된 인식은 이상하게 변하지 않고 있다. 이를 깨는 일은 교수들의 허위의식을 깨는 마지막 작업일 것”이라는 김 교수의 지적은 새겨들을 대목이다. 아직은 아쉬운 '조용한 변화' 움직임 그렇다고 이어지는 대학가 성추문의 고리를 끊을 방법에 대해 지레 회의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서울대는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있었던 의대 교수의 간호사 성희롱 사건에 대해 가해교수의 병원 겸직해제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 교수는 진료활동을 할 수 없고 서울대병원에서 지급하는 급여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는 서울대가 지난해 12월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하며 “앞으로 교내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행위는 신분을 막론하고 학칙과 규정에 따라 엄중히 처리할 것”이라고 밝힌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교수직 해임까지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가 높지만, 이러한 결정은 과거 신교수 성희롱사건 때에 서울대 당국이 보여준 태도와 비교할 때 단호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데서 일단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동아대 역시 여러 대학 중 가장 먼저 교수와 조교를 대상으로 남녀차별에 관한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 태도를 보이는 대학의 하나. 동아대는 이미 지난 99년부터 ‘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해마다 보직자와 교수, 조교, 직원, 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에게 년 1회 이상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해왔다. 이들 대학들은 요식적인 성폭력 학칙 제정이 아닌,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는 대학당국의 분명한 의사표현이 교수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예방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일부 성폭력 사건서 보여준 교수사회의 자기정화를 위한 몸짓이다. 경북대 인문대학 교수회는 지난해 11월 성추행 사건으로 해직됐던 동료교수가 복직을 추진하자 `학원내 성범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회는 성명에서 "신성한 학원에서의 성범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으며 또한 어떤 이유로도 보호되거나 은폐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교수를 비롯해 교육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학원의 모든 구성원은 성범죄에 대해 단호한 개선 의지와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교권은 보호돼야 할 권리이지만 이 권리가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에 부응하기 위한 자정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국대 성추행 K교수의 복직 서명운동에 참여했던 교수 중 일부가 서명을 철회한 일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처음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교수들은 사건의 본질을 학생과 교수의 대립으로 호도해 징계결과로 나온 해직 처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K교수가 피해자 등을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는 등 심각한 윤리적 결함을 드러내면서 서명 교수 중 일부가 서명을 취소하고 자신들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게 된 것이다. 이들 대학에서 보여준 가능성은 아직 혼돈 속의 극히 일부의 흐름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 울림은 자못 큰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성폭력학칙 제정과 성교육 의무화 등 제도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교수와 학생, 학교당국이 성폭력만은 대학사회에서 불용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노력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학내 구성원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소용돌이쳤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기회비용 면에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권이 살아 숨쉬는 지성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도 더없이 필요한 노력임을 되새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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