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공부가 어려워 포기하려할 때마다 채근해준 가족들, 그리고 학구열을 돋워 주셨던 교수님, ‘아저씨’, ‘형님’하며 따라준 동료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건설업체를 경영하는 두 손자를 둔 할아버지 대학생 유재기(57)씨가 학과수석(졸업평점 4.18점)으로 대학을 졸업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9년 중앙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유씨(99학번)는 오는 21일 고교 졸업 후 37년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유씨는 지난 66년 대경상고를 졸업하고 가정사정으로 대학진학을 포기,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36세에 한 건설회사의 직원으로 말레이시아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에 장애를 겪는 등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고 향수병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유씨는 이 때부터 대학진학과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만 품어왔을 뿐 용기를 내지 못했던 유씨는 지난 92년 본격적으로 수능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직접 건설업체를 설립, 공사현장에서 필요한 각종 자격증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
유씨는 곧바로 서점에 가서 수능시험문제집을 과목별로 모두 사왔다. 늦깎이로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민망해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을 이용해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오십을 훨씬 넘긴 사람이 지도해 주는 선생님도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던 그는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도 했다. 이 때 가족들이 손해볼 것 없으니 일단 시험은 보라고 격려해줬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유씨는 이 대학 영문과(야간)에 합격했다.
대학에 들어간 유씨는 금방 공부하는 재미에 쏙 빠졌다. 4년동안 회사의 거래처에 양해를 구하면서 꼭 필요한 모임에만 참석했고, 주말에도 밀린 공부를 위해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가족과의 생이별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 결과 8학기 내내 장학금을 한번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됐다.
동료 학생들도 큰 힘이 됐다. 막내 자식뻘 되는 다른 학생들은 그를 ‘아저씨, 형님’으로 부르며 함께 스터디 모임도 갖고, 간식도 같이 먹었다.
유씨의 향학열은 멈출 줄 몰라 2003학년도 중앙대 일반대학원 영문과 입학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한 상태. 앞으로 유씨는 언어학을 전공, 말레이시아에서 토착화된 영어인 ‘Manglish’나 싱가포르 영어 ‘Singlish’ 등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에 대한 특성을 연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씨는 공부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진학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바로 지금 용기를 내 도전해 본다면 길이 생기고 잘 될 것”이라며 말한다.
중앙대(총장 박명수)는 오는 21일 중앙대 졸업식에서 57세의 고령에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유씨에게 학술상을 수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