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 중간고사로 바쁘게 오가던 고려대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게시판을 유심히 보고 있다. 게시판을 보던 한 여학생의 낮빛이 심상치가 않다.

게시판의 대자보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지난 97년이후 현재까지 고려대여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무려 I5번 이상 발생했다는 것. 이 대자보는 고려대 여학생위원회가 성폭력 사절을 위한 학칙을 제정하기 +위해 '성폭력박람회' 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위원회에 접수된 성폭력 사건들을 학내 곳곳에 게시해 놓은 것이다.

대자보에 고발된 학내의 성폭력 사건들은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여학생위원회는 성폭력이 여자화장실, 타학교 대동제, 신입생 수련회 (일명 새터) , 공중전화박스, 연·고전, 심지어 학교주최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서도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성폭력의 내용도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모욕감을 주는 언어폭력으로부터 직접적인 신체접촉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대자보에서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성기삽입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는 현 형사법의 성폭력 개념은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파생된 잘못된 것"이라며 "성폭력은 피해자 중심에서 언어와 신체적 접촉을 막론하고 성을 매개로 하는 정신적, 심리적 학대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최근 대학가는 잇따른 성추행 사건으로 바람 잘날이 없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이 성추행을 인정하며 스스로 사퇴했고 고려대 총학생회장도 옥중에서 성추행과 관련해 반성문까지 썼다.

또한 대학생이 주회원인 나우누리 정보통신모임인「찬우물」의 시샵이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져 탄핵당한 일까지 발생했다. 대학내 여성운동 단체들은 이러한 성추행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내 성폭력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처벌할 수 있는 성폭력 학칙 제정이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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