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기나 긴 여름방학이 지나고 개강을 맞았다. 무더위의 위세가 꺾이고 아침저녁으론 제법 서늘한 기운마저 돈다. 가을 문턱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 계절엔 독서가 안성맞춤임은 물론이다. 한가위를 +이용해도 좋고, 평일과 주말을 이용해, 대학생들이 읽을만한 도서를 소개한다.

○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소설 '두물머리'와 신화 해설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등을 최근 +잇달아 펴낸 번역가 이자 소설가인 이윤기의 진수를 알아볼 수 있는 작품.

신화해설의 전문가인 이윤기는 우리나라 최고 번역가로 꼽히는 작가로 +77년 문단데뷔 이후 번역만 20여 년 동안 전문으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나 창작과는 거리가 먼 작가로 판단하면 오산. 문단에서는언어감각이 빼어난 소설가와 산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윤기의 네 번째 산문집인 '잎만∼'는 필자의 관심사인 동서양에 관한 +비교문화적 고찰, 언어에 대한 성찰 등을 선보인다.

경상도 사람이지만 전라도 정서를 좋아해 고향 친구들로부터 '족보가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매도당하고, 번역가인데다 미국에 오래 머물러 +친미주의자로 공격받는 자칭 '회색분자'의 삶을 29편의 글에서 풀어내며 자기 자신을 내보인다. 이윤기는 또 올 가을에는 장편소설 '그리운 +흔적'을 펴낼 예정이다. (동아일보사 펴냄/7500원)

○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위험사회론'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등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독일 뮌헨대 +사회학과 울리히 벡(Ulrich Beck)교수의 최근 역작.

큰 스케일과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일련의 벡의 글과 같이 이 책 또한 특유의 거침없는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책들이 20세기를 성찰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면 이 책에서는 21세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평가된다.

벡은 이 책에서 '자유의 아이들'이라고 명명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서 +즐거운 삶과 풀뿌리 저항을 연결시키고 있다. 급격한 가치체계의 몰락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통탄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2차 근대성'을향한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벡은 또 최근 우리 사회의 제 4의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여러 사회운동, 시민주도 집단, NGO 등이 정치적으로 권력을 잡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다.

'적이∼'는 세계화의 개인화가 초래하는 온갖 변화상들이 만화경처럼 얽히고 있는 지금 우리의 본 모습과 현재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가늠해 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새물결 펴냄/정일준 옮김/13000원)

○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응로, 윤이상에 이어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의 희생자인 송두율 교수의 최근 작품으로 남북 화해무드시대에 꼭 읽어볼 만하다.

현재 독일 뮌스터대학에 재직중인 송 교수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려 하는 한편 북한의 주제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한 학자로 꼽힌다. 송 교수는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조국의 통일을 위한 나름의 길을 제시하는데 게으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민족은∼'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민족은∼'는 '지구화 시대에 통일은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올곧게 무장된 이론적 바탕 위에 풀어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자 개인의 통일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남북정상회담을 이역만리에서 바라보고 떠올린 생각들도 담겨져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아온 경험세계가 상이한 남북의 +통일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에 송 교수의 해법은 간단하다. 50년을 다른 경험세계에서 성장한 우리가 다른 세계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차이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를 전제하면서도 상대방의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남북통일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두 체제가 상당기간 공존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북의 연방제나 남의 한민족공동체가 공동분모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통일운동의 동지였던 고 윤이상 선생과 얽힌 여러 이야기와 현재 소송 진행중인 황장엽씨 발언에 관한 내용도 흥미를 끈다.(한겨레신문사 출판부 펴냄/8500원)

○ 신화는 만들 수 있어도 역사는 바꿀 수 없다국민의 정부가 개혁정책의 핵심으로 추진해 온 재벌개혁의 공과(功過)를 비판적 대안의 시각에서 정면으로 다룬 책.

최근 출판된 '신화는∼'는 82년 대우그룹에 입사, 20여 년 동안 대우에 +몸담아 오다가 지난달 말 정부의 대우그룹 해체에 따라 대우를 떠난 백기승 씨가 재벌과 경제개혁 정책의 문제점, 그로 인해 비극적 상황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한국 경제의 필연적 장래에 대해 대우 해체과정에서 드러난 배후논리와 동원수단 등을 관련 사례를 통해 산업현장의 절박함과 생생함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신화는∼'은 국민의 정부의 재벌개혁이 '우리 기업의 체질 및 경쟁력 강화'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정치적 성과의 조기 가시화를 위한 상징적 +정책에 집착한 결과 한국경제에 회복하기 어려운 혼돈과 정체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이 책에서는 또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인 '왜 하필 대우가 재벌개혁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객관적 해답을 보여준다.특히 최근 잇단 대기업의 몰락과 최대 기업인 현대의 불안 현상과 관련, +국민의 정부 경제 브레인 가운데 재벌에 반감을 가진 인사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주장, 눈길을 끈다.(지금원 펴냄/8000원)

○삿뽀로 여인숙'식사의 즐거움'에 이은 하성란의 두 번째 장편소설집. 이 소설에서 하성란은 '식사의 즐거움'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징과 은유를 통해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사실 하성란은 인간의 감정적 내면을 표현하기보다는 냉정하고 정밀한 묘사를 통해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하성란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주인공들은 사회, 혹은 관계로부터, 이른바 소외된 각각의 개인으로서 고립되고 삭막한 생활 속에서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길은 연민과 따스함을 담고있는 게 특징이다.

'삿뽀로 여인숙'은 상실과 단절에 맞부딪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이전 그녀의 작품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주인공인 진명(나)이 +쌍둥이 남동생 선명의 죽음에서부터 발을 내디뎌 삿뽀로 여인숙에 +다다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명을 사랑하여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윤미래와 일본 남자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김유미,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내,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진명에게 손을 내미는 김정인 등 무수한 인상군상들이 모자이크화 되어 있다.(이룸 펴냄/7500원)

○ 남자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가족 시네마'를 비롯해 가족 소외 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다뤄왔던 유미리의 최근작. 남자의 육체, 성과 욕망의 +프리즘을 통해 본 유미리 최초의 자전적 성(性) 체험 소설집이다.

'남자'는 올 1월 미혼의 몸으로 출산한 유미리가 한 달만에 일본 문단에 선보여 충격을 안겨줬던 문제작으로 자신이 겪어 온 남자들을 총동원, 논픽션과 픽션을 번갈아 구사하며 '사랑을 낳는 몸이 존재하는가'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문예지 편집장으로부터 포르노 소설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은 주인공 +'나'는 남자에 관한 기억을 신체 부위 별로 나눠 회고한다. 엉덩이, 눈, 어깨, 손, 입술 등을 차례로 다루면서 친구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기억, 서점에서 중년 남자에게 성추행 당한 일, 연극 연출가와 동거한 경험 등을 실오라기 하나 거치지 않고 써 내려간다.

하지만 주인공 '나'는 포르노 소설 완성에는 실패한다. 모든 환상이 사라진 다음에 남자의 육체만이 남고, 그 육체에 대한 정욕이 새로운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마침내는 환상 자체가 성욕을 일으키는 데까지 닿지 않으면 포르노는 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문학사상사 펴냄/7000원)

○ 닷컴 쇼크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SAPIO』지에 기고한 칼럼들을 중심으로 묶은 경제평론집.

미국 등 경제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는 선진국의 흐름에 주목하는 한편 닷컴기업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모습의 산업사회를 예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주목을 받는 것은 필자가 언급한 내용들이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실린 칼럼들은 일본의 상황을 중심으로 했지만, 그 내용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입되고 있다. 제 2강좌의 내용(21세기에 살아남는 길)은 특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현재 계속 추진되고 있는 금융권 개혁과 기업 구조의 개편, 재벌의 변화 등과 관련해서 다룬 부분은변화의 방향을 놓고 혼선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좋은 충고이자메시지가 될만하다.(중앙M&B 펴냄/이선희 옮김/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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