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한 대학생에도 눈을 돌려라

 
지난 2010년 11월 탈북자수가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섰다. 매해 탈북자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은 미약한 상태다. 대학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정부 지원과 특례입학 등으로 탈북 청소년들이 대학 문턱은 수월하게 넘지만, 대학생활에 적응하고 졸업까지 마치기엔 험난하다. 언제 통일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학들이 미래를 보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급격히 늘어난 탈북자= 휴전 후 1999년까지 1000여명에 불과했던 탈북자 수는 2000년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통일부 2010년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 수는 2007년 누적 인구 1만명을 넘어서더니 3년 만인 2010년에는 2만명을 넘겼다. 2011년 현재 이들은 2만2500여명에 달한다.(*그래프 참조)

이수정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이에 대해 “남한행을 선택하는 북한주민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추세대로라면 몇 년 안에 수만 명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량입국사태의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장기적 관점에서 남한과 북한 주민들의 통합을 추구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현재 탈북자 정착지원체계는 지난 1997년 1월 제정된 통일부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구축됐다. 북한 출신 주민들은 입국 후 하나원과 지역사회에서 적응교육을 받고 정착금과 주거, 교육, 의료, 취업 등 제반 분야에서 다각적 지원을 받는다.

이처럼 정부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탈북자들의 적응은 쉽지가 않다. 허선행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기획실장이 지난 2010년 낸 <북한이탈주민 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 성인남녀 1200명을 상대로 한 경제활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 경제활동인구는 42.6%, 고용률은 38.7%였다. 남한 성인남녀의 평균 경제활동인구 비율 61.1%와 고용률 59.1%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반면 실업률은 남한평균 3.3%보다 2.8배가 높은 9.2%였다.

■ 탈북 청소년 대학입학 쉬워= 경제활동인구 비율과 고용률은 남한에 비해 낮지만 탈북 청소년이 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은 오히려 남한을 능가한다. 현재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 고졸자 대비 지원자의 85% 정도가 대학에 특례 입학하고 있다. 국·공립대학은 정부가 전액을, 사립대학은 50%를 지원해주는 데다가 정원 외로 선발하기 때문에 대학의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한만길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특임센터 소장은 “고졸자의 85%가 입학할 정도로 사실상 탈북 청소년들에게 우리 대학의 문턱은 상당히 낮다”며 “대학이 탈북 청소년들에 대한 입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인 배려 차원에서 대학입학을 지원해주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대학이 이를 느슨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탈북 청소년들에 대한 정부 정책은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에 특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들이 대학에 들어온 이후 교육이 미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 수학능력이 현저히 뒤처지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영어를 비롯해 전문교과 용어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한자어와 지식의 습득 능력, 인터넷 검색 능력 등에 대학 교육 등 대학에서의 ‘애프터서비스’가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 일부대학서 멘토링 제도= 실제로 탈북 청소년들이 대학에 들어온 후 대학은 이들을 거의 방치하는 수준이다. 거의 모든 대학이 선발만 해놓고 입학 후 교육을 하지 않아 중도에 대학을 그만두거나 졸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모 대학 학생처는 이를 두고 “탈북 입학생은 모든 면에서 남한 입학생에 비해 떨어진다. 이들이 함께 수업을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느냐”며 “사실상 이들은 ‘외국인’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대학이 교육지원 등에 나서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매년 15~20명 정도의 탈북 청소년들이 입학하는 서강대는 동아리 지원과 교육 지원 등으로 이들을 돕고 있다. 교수학습센터 김혜림 연구원은 “서강대는 입학 이후 모든 학생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그렇지만 탈북 대학생들이 졸업을 못하는 사례가 속출해 이를 보충하기 위해 2009년부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 워크숍은 전체 학사과정 16주 중 7주 과정으로 진행되며, 발표력이나 논리적인 사고력 등을 가르친다. 영어나 수학 등 중·장기 워크숍은 한 학기 내내 진행된다.

연세대는 멘토링 제도를 도입했다. 연세대 교육개발지원센터 교수학습지원팀 이혜원 연구원은 “대학생활에 적응을 원하는 탈북 학생들과 재학생 간 튜터-튜티를 맺어주고 있다”며 “지난 학기에는 3팀이 신청을 했는데 이번 학기에 11팀으로 대폭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초반에는 ‘어떻게 넘어오게 됐느냐’며 이들을 신기해하는 경우가 많아 탈북 학생들이 불편해했는데, 지금은 이런 일이 많이 줄었다. 게다가 탈북 학생들 사이에 ‘멘토링 제도가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 점차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사이버 교육 눈여겨봐야= 탈북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적은 현재 상황에서 온라인 교육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한국방송통신대(이하 방송대)가 진행하는 ‘탈북학생예비대학과정’이 좋은 사례다. 지난 2010년 시작한 이 과정은 모두 30시간으로 구성됐다. 탈북 청소년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 온라인으로 미리 대학 생활을 배우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교과부의 수탁을 받아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방송대가 이를 맡아 2010년과 2011년 2회 진행했다.

방송대 기획운영부의 최선자 평생교육사는 이 과정에 대해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의 학사제도에 대해 아예 모르기 때문에 교육과정 전반에 걸친 내용은 물론, 대학의 각 계열에 대한 설명과 향후 직업 선택 등에 대해 가르친다”며 “이밖에 외래어나 학술 용어, 글쓰기 방법 등 학습 분야가 넓다. 사이버교육이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난 2004년 시작돼 7회를 맞은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학입시박람회’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화여대에서 열렸던 박람회에는 이화여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국외대 등 4년제 대학 26개교와 2년제 9개교 등 모두 35개 대학 입학 담당자들이 나와 재외국민특별전형에 대한 안내를 했다. 탈북 학생과 학부모 등 모두 350여명이 방문했다.

박람회를 주최한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강철 교육지원부 주임은 “대부분 탈북 청소년은 ‘수시’ ‘정시’ ‘검정고시’ 같은 용어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문제들을 대학 입학 전부터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주임은 이와 관련 “지난 2004년 대학입시설명회로 시작해 규모가 차츰 늘면서 명칭을 박람회로 바꿨다”며 “탈북 청소년은 물론, 이들의 부모 역시 방문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학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다른 북한의 대학"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북한의 고등교육기관은 480곳이다. 북한의 대학은 어떤 곳일까.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를 졸업하고 함경북도 청진 모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가 지난 2004년 탈북한 현인애 교수에 따르면, 북한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있다. 하지만 이 대학들은 남한처럼 많은 대학들 가운데 상위권이 아닌 최고의 유일 대학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은 인문사회학과 기초과학, 김책공업종합대학은 공학의 유일한 종합대학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북한의 대학은 이 두 대학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과대학이다. 단과대학들은 도급 대학과 중앙급 대학으로 분류된다. 도급 대학은 모든 도마다 설치된 대학으로, 주로 도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입학한다. 사범대학, 교원대학, 의학대학, 농업대학, 예술대학이 있으며, 졸업 후 학생들은 거의 도 관내에 배치된다.

도들에는 전국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배치하는 대학들도 몇 개씩 있다. 예로 강원도의 원산수산대학, 원산경제대학, 함경남도의 함흥약학대학, 함흥수리대학 등이다. 이런 대학이 중앙급 대학이다.

[인터뷰]“탈북 대학생들에게 희망 심어줘야”
쇼핑몰 CEO 된 탈북 대학생 승설향씨

“제가 사업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이상한 애’라고 합니다. 탈북 학생들에게는 사업은 커녕 대학에 적응하는 것조차도 어렵기 때문이죠.”

건국대 경영학부에 재학 중인 탈북 대학생 승설향씨는 친구들에게 ‘독특하다’는 이야길 자주 듣는다. 탈북 출신 친구들이 기본적으로 대학에 적응하기도 어려워하는 데 반해, 승씨는 친구와 함께 쇼핑몰을 오픈했고, 지금은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 골프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승씨는 “이곳에서 살아보니 남한 사회는 학력이든 돈이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잘 살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사업이나 돈 버는 방법 등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행복해지고 가족이 행복해지려면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 내 2세와 3세가 힘들게 살도록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승씨는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할머니를 설득해 지난 2006년 12월 탈북을 감행했다. 그리고 2008년 4월 남한으로 온 후 2010년 건국대 경영대학 경영학부에 입학했다.

현재 외할머니와 둘이 받는 돈은 한 달에 70만원이 전부다. 등록금은 정부가 50%, 대학이 50%를 내준다. 의료비도 지원해준다. 그렇지만 월세를 내고나면 생활비가 빠듯하다.

“정부가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정말 고맙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아요. 특히 공부가 너무 어려웠어요. 따라가려면 남한 학생의 두 배 이상 해야 해요. 사업도 마찬가지죠. ‘전자상거래’라는 말도 3년 전 처음 들었는데, 북한에서는 ‘인터넷’이란 게 아예 없거든요.”

‘자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친구들은 더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승씨는 탈북 대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들을 도외시 하는 시선이 아닌 ‘남한에서 열심히 일해야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취시켜 달라고 강조했다.

“대학생활도 그렇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소통입니다. 남한에 온 탈북 출신 친구들은 저처럼 부모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생활비, 친구관계, 공부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남한 생활이 힘들다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대학이 적극 나서서 도와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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