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생각]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와인의 고급이미지는 문화 사대주의에서 비롯
먼나라 이웃나라 대장정 ‘스페인’ 으로 마무리

▲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이원복’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만화책이 동시에 스친다. 1987년 처음 네덜란드편을 출간해 지금까지 총 1500만부, 매년 55만부씩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의 작가인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는 “역사를 쉽게 접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

이제 ‘이원복’하면 만화 외에 하나 더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이 교수가 2008년 출간한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이 50만권 이상 팔리면서 어느새 그는 ‘와인전도사’로 통하게 됐다. 그가 와인에 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도 단순하다. “허세로 위장한 와인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와인에 대한 용어, 예절 등등 와인을 고급스럽게 즐기는 법을 듣기를 기대하고 찾아간 이 교수에게선 “잔을 어떻게 잡든, 잔을 돌리든 말든, 마시다 춤을 추든, 생쇼를 하든… 정설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식으로 마시면 되는 거야”라는 책속의 구절 딱 그 만큼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와인전문가인데, “좋은 와인 좀 추천해 달라”를 뻔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와인을 권할 수는 없다”는 실망스러운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그는 와인은 이성과도 같아서 직접 교제를 해보지 않고는 평가할 수도 추천할 수도 없다고 했다. 대신 와인을 즐길 수 있는 3가지 조건을 일러줬다.

“와인을 즐기는 첫번째 조건은 남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인식해서 내 입맛에 맞지 않은 고급 와인을 고르지 말란 뜻이죠. 두번째, 비싼 게 좋은 와인이 아니라는 것. 좋은 와인은 나한테 잘 맞는 와인입니다. 마지막은 늘 마시는 거 말고 여러 종류의 와인을 접해보라는 것입니다. 1만 5000원짜리 마트 와인부터 시작해서 다양하게 마셔봐야 나와 가장 잘 맞는 와인을 고를 수 있습니다."

이 교수도 특별한 선호도 없이 다양한 와인을 호기심으로 접하다보니 와인 애호가가 됐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교환교수로 갔던 때, 현지 슈퍼마켓의 창고형 리커 스토어(Liquor Store)에 수백 종의 와인이 쌓여있는 장면에 반해 그 때부터 와이너리, 세계적인 와인행사 등등을 찾아다니면서 와인과의 연애를 시작했다고.

와인을 그저 좋아하다가 책까지 쓰게 된 건 한국 사람들이 막연히 갖고 있는 와인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신의 물방울이라는 책을 보고 집필을 결심하게 됐다”며 “와인도 소주와 맥주처럼 술의 한 종류에 불과한데 문화 사대주의가 와인의 환상을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사실 서양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게 된 배경은 와인이 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상에는 늘 국물이 있죠. 하지만 서양 음식은 따로 주문하지 않으면 국물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수프까지도 따로 주문을 해야 하죠. 소위 액체가 필요하다보니 흔한 맥주와 탄산수를 마시게 됩니다. 그러다 배부르니까 맥주보다는 와인을 찾게 된거고, 그렇게 흔히 마시는 게 와인인데 우리나라에선 그 이미지가 너무 고급화됐죠.”

이 교수는 ‘품질대비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탈리안 와인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또 자신의 책을 통해서 더 이상 비싼와인에 사기 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싼 와인도 자신과 잘 맞는다면 가장 좋은 와인이라고, 주변을 의식하지 말라는 말도 거듭 강조했다.

“한국인들이 와인에 대해 갖는 고급화된 이미지는 프랑스 사대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케이팝(K-POP)이 세계를 휩쓸고 있고,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문화 사대주의를 가져선 안 됩니다.”

와인과 알콜도수가 같은 ‘소맥’도 좋아한다는 그는 현재 <먼나라 이웃나라>의 완결편인 ‘스페인편'을 준비하고 있다. 올 여름 선보일 예정이다. 2010년 중국편으로 완간할 예정이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스페인을 빼 놓을 수 없어 다시 펜을 든 것이다. 2학기부터는 석좌교수로 다시 강단에 선다. 강의제목은 ‘먼나라 이웃나라’. 책은 스페인 편으로 마침표를 찍지만 와인향이 더해진 이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는 강단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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