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한국의 대학은 우울하다. 대학이 더 이상 자유, 진리, 민주의 마 지막 보루와 양심으로 자처하기엔 대학 자체에 드리워진 시대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기 때문 이다. 취업난을 비관해 자살한 여대생, 리포트 대행으로 살아가는 미취업 졸업생, 늘어만 가 는 대학생 경제사범 등은 모두 국제통화기금(IMF) 시대의 대학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난달 28일 서울의 S대 노문과 사무실에는 때아닌 정적이 감돌았다. 밖은 며칠 전부터 계속된 대동제로 고성능 스피커가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이 학과 4학년 김모양이 전날밤 취업난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난 뒤부터 학과 사무실은 침묵만이 흘렀 다.

[대동제와 자살소식]

김양은 지난 24일에도 '초라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흉기로 자살을 시도했었다. 학 과 선배들로부터 '무역경기가 워낙 안 좋아 어학관련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다른 학과보다 심할 것'이라는 말을 평소에 많이 들어 김양이 의기소침해 있었다고 학과 친구들은 말하고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들어 취업난을 비관해 자살한 대졸자는 지난해에 비해 30%나 급증했 다.

취업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각 대학의 취업지도를 담당하는 교직원들도 요즘은 시쳇말로 죽을 맛이라고 아우성이다.

하루종일 찾아오는 4학년 학생들에게 변변치 못하더라도 입사원서 하나 건네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인턴사원제도로 취업정보실이 활력을 되찾고 있긴 하지만 기업들이 노동부 등 정부당국의 눈치보기로 일관, 채용폭이 미미하다는 게 대학취업 지도실 관계자들의 얘기다.

심각한 취업난은 지난달 28일 뉴코아 백화점이 4년제 대졸 인턴사원 접수를 마감한 결과2.26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데서 알 수 있다.

뉴코아에 따르면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인턴사원 희망자를 접수한 결과 70명 채용예정에 1백58명이 지원했다.

[백화점 '뻗치기'도 북새통]

월급여가 35만원에 불과하고 백화점 신입사원의 필수코스인 하루종일 매장에 서서 물품을 판매하는 일명 '뻗치기'를 하는 악조건인데도 이같이 높은 경쟁률을 나타내 뉴코아 관계자들 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뉴코아는 최근 최종부도이후 화의신청마저 법원에 의해 기각돼 사실상 회사의 미래도 불투명한 실정이어서 인턴사원들에게 줄 수 있는 장점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기 때문이다.

[고급음식점의 구인 문의]

심지어는 유흥업소일 가능성이 높은 고급 음식점에서조차 취업지도실로 구인문의가 들어 오고 있는 실정이다.

S여대의 한 취업정보실 관계자는 "강남의 일식집이나 고급 한정식집 등에서 괜찮은 여학 생을 소개해 달라고 전화가 온다"며 "아무리 구직난이 심각하다 해도 업주들이 해도 너무한 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최근 서울 강남의 유흥가에서 여대생 종업원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무역센터와 논현동 주변의 단란주점 거리에는 오후 7시만 되면 이른바 '단란주점 아 르바이트'를 하러 출근하는 이스트팩 배낭을 멘 여대생들이 즐비하다.

이들의 대부분은 술을 나르거나 출입문 대기 서비스만 한다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조건으로 하루 4시간 정도 일하고 일당 7~8만원을 챙기고 있으나 윤락행위를 서슴지 않는 여대 생들도 적잖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용돈 궁해 취객털이 전락]

대학생들의 범죄행각도 심심치 않게 적발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새벽 2시 동대문 경찰서 형사과. 3명의 대학생이 술에 취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들은 전날밤 귀가중이던 택시운전사 이모씨(44)를 구타하고 현금 7만원이 든 지갑을 빼앗아 달아나다 인근 주민들에 의해 붙잡혔다.

대학 1학년생인 장모군 등 3명은 모두 S대 같은 학과 친구로 술을 마시고 귀가도중 용돈이 궁해 이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학교축제 중 친구들과 놀면서 용돈이 항상 부족했다"며 "여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던 중 지나가던 아저씨를 보고 갑자기 충동이 생겼다"고 말 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대학생들의 범죄가 과거 단순한 충동범죄에서 계획된 범죄로 옮겨가 고 있으며 범죄양상도 경제사범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특히 PC통신을 이용한 물품판매 사기나 프로그램 불법복제는 사업화될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또한 최근 대학가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대학시험 족보의 PC통신 판매 외에도 공과대나 통계학과 등의 프로젝트 리포트를 전문적으로 대행해 주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이들은 시험족보로도 해결할 수 없는 학생들의 특수(?) 숙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며 1 건당 2~3만원을 리포트 대행비로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서울대 등 명문대학을 졸업한 이 른바 대졸 미취업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는 대학생을 주고객으로 했던 업소들에게도 찬서리를 내리고 있다. 수도권 제2캠퍼스 대학 통학버스의 종착점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도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비껴가 지는 못했다.

이른바 물 좋기로 유명해 강남 나이트의 대명사가 되었던 '오딧세이'는 올 봄 일찌감치 나이트클럽 간판을 내리고 호프집으로 전환했다.

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IMF이후 대학생들이 주고객이었던 이 업소는 지난해에 비해 손님이 무려 70%나 줄었다.

또다른 유명 D나이트 클럽은 손님유치를 위해 맥주기본이 3만5천원, 양주기본이 6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거의 50%이상 가격을 내렸으나 아직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대학생들이 몰리고 있는 업소가 있다.

[뜬 구름잡기 만연]

다름아닌 프로필 사진전문 업소. 강남에서 비교적 사진을 잘 찍는다고 소문이 난 한 프로 필 사진 전문 스튜디오는 요즘 몰려드는 대학생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한 순간에 돈을 벌기 위해 연예인이 되려는 대학생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최근 취업난으로 대학생들이 한번 '뜨면' 그야말로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연예인, 잡지모델 로 나서길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스튜디오는 각종 연예에이전시의 프로필에 들어갈 사진을 찍어주고 무려 15만원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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