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C.S.루이스 著 <나니아 연대기>

[한국대학신문 김기중 기자] ‘말도 안 되는 허구’ ‘유치한 애들 이야기’ ‘시간이나 때우려 읽는 소설’. 판타지 소설에 으레 쏟아지는 평가다. 이 평가는 과연 합당한가. 이인성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인간의 영원한 벽은 무엇일까요. 바로 시간과 공간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공간을 넘지 못합니다. 판타지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극대화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욕망하지요. 무엇이든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힘이든 권력이든, 미(美)든지 간에요. 판타지는 이것을 핵심적으로 드러냅니다. 마법이라든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초인들이 등장하는 이유지요. 그리고 인간은 영웅을 원합니다. 리더를 따르는 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판타지에는 반드시 영웅이 등장합니다. 이 세 가지가 바로 판타지의 특징이라 할 수 있어요.”

이 교수는 판타지의 대표 작품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꼽는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론가로 꼽히는 C.S.루이스가 쓴 7편의 소설로, 두께만 해도 1000쪽이 넘어간다. ‘세계 3대 판타지’에도 꼽히는 걸작으로서 무엇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판타지로서는 독보적이라는 게 이 교수의 평가다.

“인간의 한계는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판타지는 이런 한계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극대화합니다. 루이스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었습니다. 런던이 폭격당하고 조카들이 집에 오면서 조카들을 위해 이 작품을 쓰게 됐지요. 이러한 환경에서 루이스가 가상의 이상향인 ‘나니아’를 만들었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이상향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이를 통해 한 단계 현실을 업그레이드하자는 것. 그러니까 판타지는 허구가 아닌, 리얼리티를 업그레이드시킨 장르라고 봐야 합니다.”

이 교수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다양성을 읽어낸다. 아이가 읽어도 재밌고, 어른이 읽어도 재밌는 소설. 초등학생 권장도서이지만 영문과의 박사논문도 나오는 소설. 세대를 불문하는 객관적인 재미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의 깊이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다. 그 가치야 어쨌든, 1000쪽이 넘는 책을 읽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로 제작이 되고 있기에 “영화부터 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이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

“무조건 책부터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면 ‘멘탈 픽처(mental picture)’를 그릴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루시의 경우, 책을 읽을 때는 이 아이가 어떤 인물인지 자기만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자기만의 루시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가 없어요. 영화에 나오는 루시는 감독의 멘탈 픽처를 구체화한 것이기 때문이죠.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독자는 결국 수동적으로 멘탈 픽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멘탈 픽처’란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뜻한다. 이 교수가 고안한 개념으로, 책에서 글로 묘사된 것을 독자가 능동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의미한다. 책을 읽고 멘탈 픽처를 만들 경우 다른 이가 만들어낸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나라면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을 텐데’ 비교 분석하면서 영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영화로 제작된 소설은 절대 영화부터 보지 말라”고 말한다.

“먼저 읽고, 자신만의 멘탈 픽처를 소화한 후 그것을 드러내 보이라고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종이에 그려보라’라든가 ‘영상으로 만들어보라’고 주문합니다. 고민 끝에 자신만의 멘탈 픽처를 만들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며 공유해야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상력은 확장됩니다. 바로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의 과정인 것이죠.”

이 교수는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지하철에서 휴대폰만 보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개인의 업그레이드는 물론 조직의 진보, 사회 발전에 이르기까지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창의력인데, 책을 읽지 않으면 이것이 희박해진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가 숭실대 독서후기클럽에서 학생들과 책을 함께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창의력의 주체적 확장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 중 하나가 바로 크리에이션입니다. 이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내가 컨트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멘탈 픽처를 그리는 작업, 즉 ‘이매지네이션(imagnation)’을 주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테이션(imitation·모방)’밖에 할 수 없어요. 대학생들이 책을 읽고 자신만의 창조 과정을 거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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