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대필·면접컨설팅… 사교육 시장 '조장'

 *** 입학사정관제 현주소와 문제점 진단 ***
특목고·고소득층 유리… ‘무늬만 입학사정’
잠재력 평가할 정규직 입학사정관 ‘태부족’
 
[한국대학신문 홍여진 기자]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생들의 학업능력뿐만 아니라 소질과 특성, 잠재력을 모두 평가해 다양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제도를 악용한 부정입학 등 부작용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입학사정관제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차기정권에서의 제도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 폐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2회에 걸쳐 입학사정관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 입학사정관제 도입 5년이 지난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절반이 비정규직인 입학사정관의 신분 불안정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성균관대는 지난달 입학사정관제로 작년에 입학한 ‘봉사왕’ A씨의 합격을 전격 취소했다. A씨가 고2 때 지적 장애 여중생을 10여명과 집단으로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A씨의 고교 담임교사는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봉사왕으로 둔갑한 추천서를 써줬다. 그렇게 A씨는 인성·소질·지도성 등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 전형에 합격했던 것이다. 
 
당시 입학사정관은 이를 가려내지 못 했다. A씨에 대한 소문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대학은 사실 확인 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 대학은 “A씨가 지난해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하면서 집단 성범죄 가해 전력을 은폐하고, 추천 교사의 허위 추천서를 제출함으로써 입학 전형의 공정성을 해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며 입학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5년이 지났지만 연착륙은 여전히 멀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행 초부터 제기됐던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신뢰성 논란은 성균관대 사건이 불거지면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엉터리 추천 고교교사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학교폭력 전력을 학교생활부에 반드시 기록하게 하는 등의 후속대책을 내놨지만,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그라들고 있지 않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자기소개서 대필업체가 성행하고 있으며, 관련 사교육 시장은 급속도로 팽창하는 등 이미 많은 곳에서 허점이 드러난 탓이다. 이에 따라 입학사정관제의 근본부터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 입학사정관제는 ‘엄마사정관제’ = 입학사정관제는 학생을 성적보다 ‘잠재력’에 비중을 두고 선발한다는 취지로 2008년 도입됐다. 대학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다양한 선발전형과 평가방식을 마련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러한 대학들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만 66개 대학에 391억 원을 투입했다. 
 
대학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학사정관 전형 선발 인원을 확대해 나갔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전체 모집인원의 10%이상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다’는 평가기준을 충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올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전체 대입 정원의 13.5%, 지난해보다 6000명 늘어난 4만 6300여 명을 뽑았다.
 
문제는 선발인원을 확대할 만큼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는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우선 1차 서류전형의 핵심이 되는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대신 작성해 주는 업체와 브로커가 성행하고 있다. 비용은 수십만 원에서 수백 만 원대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는 ‘엄마사정관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입학사정관제가 부모의 재력으로 얼마든지 서류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한 포털사이트에 ‘입학사정관제 대필’또는 ‘자기소개서 대필’을 검색하면 관련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대필은 학생이 자료를 먼저 보내고 해당 비용을 입금하면 2~3일 이내에 자기소개서를 완성해 주는 식이다. 자료의 충실도에 따라 대필 비용이 달라진다. 
 
한 대필 사이트에 올라온 글 중에서는 “대필 자기소개서로 1차 합격했어요”“다 써주시고 성장과정만 제가 고쳤어요. 합격해서 좋아요”라는 식의 글이 빼곡하다. 또 다른 인터넷 카페에서는 “포트폴리오 제작, 자기소개서 작성, 대학 학과별 맞춤 면접 준비까지 모두 다 해드립니다. 입학사정관들은 절대 눈치 못 챕니다”라며 대놓고 대필 홍보를 하고 있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입시학원들이 ‘면접 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입학사정관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면접 준비까지 대행해주며 10~50만원의 비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영·수 위주의 시험 탓에 입시학원으로 몰리는 사교육을 막겠다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으나, 오히려 입학사정관제 컨설팅 업체까지 가세해 사교육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 특목고·고소득층에 유리…교육 양극화 = 사교육 시장만 심화된 것이 아니다. 입학사정관제가 교육의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특목고 출신 학생과 고소득층 자녀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유기홍 의원(민주통합당)이 2012학년도 서울대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일반계고 지원자 1만887명 중 합격자는 1477명(13.6%)에 그친 반면 영재학교 출신 지원자는 185명 중 122명(65.9%), 과학고 출신은 769명 중 217명(28.2%)이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고나 과학고 출신 학생의 합격률이 일반계고에 비해 최대 5배 가까이 높은 셈이다. 
 
특히 영재고 출신 학생들의 서울대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서울 소재 주요 4년제 대학 15곳의 입학사정관 전형 결과 영재고 출신이 총 134명 합격했는데 이중 122명이 서울대에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뿐만이 아니다. 15개 대학의 2012학년도 입학사정관 전형 학생선발 실적을 분석한 결과 경희대, 중앙대, 한국외대, 홍익대 등 4개 대학에서 특목고 및 영재학교 학생 합격자 비율이 일반계고보다 높았다. 유 의원은 “서울대 등 입학사정관 전형 선도대학으로 선발된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전형의 본 취지에 맞지 않는 선발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목고 출신 경력뿐만 아니라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소득 부모의 자녀일수록 입학사정관제에서 더욱 유리하다는 조사 결과도 제기됐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박혜자 의원(민주통합당)이 광주, 전남 소재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 62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꼴로 ‘부모 소득이 높을수록 입학사정관제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응답자의 77.4%가 ‘학부모가 전문직일 경우 유리하다’고 답했으며, 76.6%는 대도시 거주 학생들이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누가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합격이 결정되는 제도는 교육현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으려면 대대적인 보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 입학사정관이 가짜 못 거르는 이유는? = 문제는 가짜서류부터 학생들의 잠재력까지 ‘진짜’를 가려낼 입학사정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학생 수는 늘어나는데, 사정관 수는 많게는 20명에서 적게는 5명, 1명만 두고 있는 대학도 있기 때문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대필 자소서 등의 문제를 막으려면 서류평가에 의존하지 말고 입학사정관들이 꼼꼼한 심층면접을 통해 서류의 진위여부와 학생의 잠재력을 파악해야 한다”면서도 “국내 대학의 사정은 입학사정관 수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그마저도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 이미 사정관제의 문제는 예측 가능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문가는 “미국은 한 학교당 입학사정관만 50여명이고, 연륜 있는 사정관들이 많다”며 “국내 대학에선 인건비 부담으로 20대의 젊은 사정관들을 많이 뽑고 있다. 15~20명에 달하는 젊은 사정관들이 지원자들의 서류, 인성평가를 꼼꼼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최근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태원 의원(새누리당)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입학사정관 가운데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데다 연륜 있는 사정관이 극히 드물었다. 입학사정관제 정부 지원금을 받는 66개 대학에서만 비정규직 입학사정관이 절반을 넘었다. 입학사정관 618명 중 비정규직은 352명, 57%였다. 또 입학사정관 퇴직자 352명의 이력을 살펴본 결과, 평균 재직기간은 14.3개월에 불과해 이들 대다수가 한 해 입시 업무에 종사하고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학사정관 연령대는 △20대가 전체의 23.9%인 148명이 차지하는 있어 공정성 시비를 △30대가 307명, 49.7%로 가장 많았고 △40대 119명, 19.2% △50대 이상 44명, 7.1%순이다. 입학사정관들의 신분이 불안한데다 연륜과 경력 있는 전문 사정관도 많지 않다는 뜻이다.
 
김태원 의원은 “입학사정관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 신분이라 신분이 불안한 입학사정관들이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인력풀이 형성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각 대학들이 선발인원을 경쟁적으로 확대하면서 대학 간 인적 이동도 빈번해진 상황이다. 입학사정관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근본적 대책마련 시급…폐지론도 ‘솔솔’ =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입학사정관제 폐지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대 교수는 “입학사정관제까지도 돈 있는 자녀들의 입학수단이 됐다. 대학들도 정권이 바뀌고 지원금이 중단되면 언제까지 입학사정관제를 유지할 지 의문”이라며 “이럴 바에는 수시제도를 없애고 차라리 객관성이 담보되는 수능제도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입학사정관제를 보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강제성 경희대 입학처장은 “어떤 제도든지 완벽할 수는 없다. 성균관대 문제도 사회의 SBS라는 문화가 정화시켜 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도 입학사정관제는 사회의 정화능력과 함께 점차 진화해 나갈 것이다. 다시 찍기위주의 시험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면 큰 방향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배 성균관대 입학처장도 “정시 합격생이였으면 애초에 문제가 안 됐을 성폭행 전력이 입학사정관제였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가려낸다는 차원에서 입학사정관제는 필요하다”며 “다만, 대학과 고교 모두 교육기관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입학한 학생에게 엄중 단호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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