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형 ‘규모의 경제’와 칼텍형 ‘소수정예’ 싸움

SIC논문·연구비 KAIST 우위 1인당 실적은 포스텍
학계 “공학은 KAIST, 자연과학은 포스텍 강점” 평가

[한국대학신문 신하영 기자] 대학 관계자들은 유독 다른 대학 소식에 관심이 많다. 특히 경쟁관계에 있는 대학의 소식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보안에 신경 쓴 나머지 극도로 말을 아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쟁심리가 대학 발전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고 본다. 이에 본지는 창간 24년 기념호를 시작으로 매월 2차례씩 ‘대학 VS 대학’ 코너를 운영한다. 비교가 되는 양 대학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MIT와 칼텍의 차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KAIST와 포스텍을 비유한 말이다. KAIST가 MIT(매사추세츠공대)처럼 종합대 수준으로 규모를 키워왔다면, 포스텍은 개교 이래 꾸준히 소수 정예를 고수해왔다. 미국의 명문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이 벤치마킹 대상이기 때문이다.

▲ KAIST 창의학습관 전경
◆ 이공계 ‘메머드’ 꿈꾸는 KAIST= 서남표 KAIST 총장은 지난 2006년 취입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모’를 강조해 왔다. 규모가 커져야 연구 성과도 더 많이 나온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2009년 한국정보통신대(ICU)와의 통합을 확정지을 때도 “지금보다 규모가 더 커져야 세계적 대학들과 경쟁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이유로 KAIST는 서 총장 취임 이후 지금까지 무려 279명의 교수를 신규 임용했다. 현재 KAIST의 전임교원 수는 2012년 기준 588명에 달한다. 한 KAIST 공대 교수는 “현대의 기술 분야가 워낙 세분화 돼 있고, 연구 인력이 많을수록 세계적인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세계 일류대학은 교수 대 대학원생 비율이 5대 1, 6대 1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총장 취임 이후 끊임없이 규모를 키워온 KAIST는 6년 동안 많은 성과를 냈다. 최근 세계적 대학 평가기관인 ‘QS’와 ‘더타임즈(THES)’가 발표한 세계 대학순위에서 KAIST는 1971년 개교 이래 최고 성적인 63위와 68위를 차지했다.

연구비 수입도 급증했다. 2006년 1182억 원이던 연구계약액이 2011년 현재 2558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에 따라 학교가 거둬들인 연구 간접비도 165억 원에서 460억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KAIST에 대한 정부지원은 1105억에서 1525억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이런 연구비 증가로 KAIST 총 예산은 3064억에서 7205억으로 늘었다. KAIST가 보유한 자산도 5700억에서 1조1300억으로 확대됐다.

◆ 포스텍, 소수정예로 세계정상 노린다= 반면 포스텍은 1986년 개교이래 칼텍을 모델로 발전해 왔다. 학생 규모도 칼텍과 같이 10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현재 포스텍의 입학정원은 326명이지만, 지난해 창의IT융합공학부(20명)가 개설되기 전까진 줄곧 300명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학부생만 970명에 달하는 KAIST의 3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교수 수도 2012년 현재 265명으로 KAIST(588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칼텍이 세계대학 순위에서 MIT 못지않은 성적을 내고 있듯 포스텍 또한 KAIST에 비해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평가에서 양 대학의 순위 다툼은 ‘업치락 뒤치락’ 이다. 지난달 11일 발표된 QS 세계대학 평가에서 포스텍은 서울대(37위)와 KAIST(63위)에 밀려 97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달 초 발표된 더타임스 평가에서는 포스텍이 서울대(59위)와 KAIST(68위)를 밀어내고 50위에 올랐다.

포스텍 관계자는 “더타임스 평가의 경우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비중이 높아서 유리하지만, QS평가는 학문 평판도나 졸업자 평판도에 대한 비중이 높아 역사가 짧은 우리 대학의 경우 불리하다”고 밝혔다.

실제 QS평가는 학문평판도(40%)와 졸업자평판도(10%)가 전체의 50%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높다. KAIST(1971년 개교)에 비해 역사가 짧은(1986년 개교) 포스텍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 더타임스 평가는 연구성과와 논문인용 수에 대한 비중이 60%에 달한다. 연구성과와 평판도가 30%를 차지하며, 연구영향력을 평가하는 논문인용 수가 30% 반영된다. 포스텍 관계자의 말은 연구 성과로만 평가하면 KAIST를 충분히 압도한다는 항변인 셈이다.

▲ 포스텍 대학본부
◆ 포스텍 “교수 1인당 성과로 따져야”= 실제로 양 대학의 연구 성과를 따지면 KAIST가 SCI 논문 편수에서 앞서는 반면 교수 1인당 편수에서는 밀리는 모습이다. 올해 정보공시에 따르면 KAIST의 2011년 SCI급 논문 수는 564.5편으로 포스텍의 345.2편에 비해 많다. 하지만 전임 교원 1인당 논문 편수로 따지면 포스텍(1.3)이 KAIST(1)보다 앞선다.

연구비 수혜실적도 마찬가지다. KAIST의 2011년 연구비 실적은 2249억 원, 포스텍은 2111억 원이다. 교수 1인당 연구비로 따지면 KAIST는 3억8636만원, 포스텍은 7억9660만원이다.

학계에서는 양 대학을 어떻게 비교 평가할까. 일반적으로 공학은 KAIST가 자연과학은 포스텍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점은 KAIST 교수도 인정하는 바다. KAIST 자연과학대학 A교수는 “자연과학은 포스텍이 낫고, 공학은 KAIST가 강하다고 본다”며 “학과 구성도 포스텍은 응용보다는 순수과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제 3자’인 고려대 공대 B교수도 이 점에 공감을 표했다. 그는 “학계에서도 자연과학은 포스텍, 공학은 KAIST란 인식이 있다”며 “정부 지원을 받는 KAIST에 비해 사립인 포스텍이 칼텍을 모델로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 지역적 한계 가진 포스텍의 고민= 하지만 포스텍이 KAIST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바로 학교가 위치한 지역적 배경이다.

A교수는 “포스텍의 경우 포항이란 지역적 한계가 약점으로 작용한다”며 “유능한 교수의 경우 서울의 대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수한 교수자원의 수도권 유출이 포스텍이 가진 고민이란 지적이다.

▲ KAIST, 포스텍 2011~2012년 주요 정보공시 현황.
양 대학의 학생 수준도 딱히 우열을 매기기 어렵다. 대학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울대·KAIST·포스텍 순으로 입학성적을 매긴다. 그러나 “어차피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의대로 빠져나간 뒤 차 순위 이공계 학생들이 양 대학에 오기 때문에 수준이 비슷하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높다. A교수는 “최근 서울대 신입생 19%가 수학 기초학력이 미달됐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KAIST와 포스텍도 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KAIST는 여전히 우리나라 ‘간판 과학기술대학’이다. 대학이 보유한 특허 현황이 이를 대변해 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발간한 ‘2010 산학협력백서’에 따르면 KAIST의 국내 특허 보유건수는 2247건으로 포스텍(1214건)보다 1000건 이상 많다. 해외 특허도 618건으로 포스텍(368)과 서울대(534)를 압도한다.

기술이전 수입도 2010년 현재 KAIST가 21억 원인데 비해 포스텍은 17억 원이다. 하지만 기술이전 1건당 수입료에서는 포스텍(7490만원)이 카이스트(5270만원)보다 낫다. 쉽게 말해 기업에 이전한 기술로 봤을 때 포스텍이 개발한 기술의 수익성이 더 높았다는 얘기다. 김승환 포스텍 연구처장은 이에 대해 “논문의 편수보다는 연구의 파급효과를 키우는 쪽으로 교수들을 독려해 왔다”며 “기술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를 강조해 온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 KAIST ‘특허 우위’ 포스텍 ‘오너십 강점’= 포스텍이 KAIST에 비해 오너십(소유주)이 확실하다는 점은 ‘보이지 않는 강점’이다. 1986년 포스코에 의해 설립된 포스텍은 KAIST처럼 총장 자리를 놓고 갈등할 필요가 없다. KAIST는 2006년 서남표 총장이 등장한 이래 정년보장(테뉴어) 심사를 강화하면서 교수들과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반면 포스텍은 2010년부터 정년보장심사 탈락 교수들을 1년 유예기간 뒤 퇴출시키면서도 갈등 한번 표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KAIST의 한 교수는 “KAIST는 정부지원을 안정적으로 받는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오너십이 없어 갈등이 있다”며 “하지만 오너십이 확실한 포스텍은 이런 갈등 없이 교수들이 연구에 집중한다는 점이 보이지 않는 강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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