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된다"… 제도 전면 보수 필요 '공감대'

*** 입학사정관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
"도입취지 왜곡됐다" 차기정권 폐지론 우세
"양적팽창 → 질적관리 전환필요" 유지론도

[한국대학신문 홍여진 기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 5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공교육 정상화와 다양한 인재선발이라는 도입 취지를 잃고 부정입학 등 부작용이 속출하면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사후검증시스템 등 대책을 내놨지만 제도에 대한 불신을 막기에는 속수무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도 현행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회의론을 내비치면서 차기정권에서는 입학사정관제가 폐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이미 제도가 도입된 만큼 본래의 취지를 살려 양적팽창보다는 질적관리 차원으로 보완,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 한동대 입학사정관들과 고교 교사들이 지난해 2월 입시윤리서약식을 가진 뒤 선서를 하고 있다.

■ 5년 만에 ‘폐지론’ 모락모락 = 26일 양당 대선후보 캠프에 따르면, 양당 모두 현행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박근혜 후보측 국민행복추진위원회는 “현재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부작용이 많아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입시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선캠프 정책팀에서도 “현행 입학사정관제는 운영상의 단점이 많아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교육양극화를 해소하는 방향의 입시정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워낙 부정적 여론이 많아 차기정부에서는 입학사장관제가 폐지되거나 국내 실정에 맞는 비슷한 형식의 다른 제도가 도입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들이 입학사정관제의 대폭 수정 또는 폐지로 정책의 가닥을 잡은 것은 입학사정관제가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잠재능력으로 다양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도입 취지를 이미 잃어버렸다는 이유에서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정진후 의원실 홍기돈 보좌관은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뽑는다고 하지만 대학마다 수능등급을 반영한다. 학생들은 오히려 수능, 내신에 입학사정관제 준비까지 추가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입학전형만 3000여개에 달해 입학사정관제를 전문하는 사교육 시장과 입시브로커만 생겨났다”고 비판했다.

수도권 주요대학 입학사정관제에 특목고 합격생이 쏠리면서 사실상 고교등급제의 부활이라는 지적 역시 폐지론이 힘을 받는 한 요인이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대표는 “대학 입학처장들이 사석에서 ‘특목고 학생 몇 명 유치했다’고 자랑하는 실정”이라며 “헌법에 삼불원칙이 있는데 입학사정관제는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허용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도입 초기부터 나왔던 것으로 현 정부도 꾸준히 개선노력을 해 왔다. 올해 초 교과부는 대학 신입생 선발을 맡는 입학사정관이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형법상 뇌물죄로 처벌하고 퇴직 후 3년간 입시업체 취업을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처벌을 강화했다.

또 허위로 추천서를 써준 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대학에서 공유하고, 입학 후에라도 가짜서류로 합격한 사실이 적발되면 입학취소가 가능한 ‘사후검증시스템’도 마련했다. 최근 이중처벌 논란이 된 학생부에 학교폭력 전력을 기재 방안도 이러한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커져버린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꺼뜨리기에는 역부족인데다 실효성도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진학사 김희동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제자의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어느 교사가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적겠느냐”며 “이는 임시방편일 뿐 입학사정관제 부작용의 근본적 해결방법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상헌 전국입학사정관협의회장도 "블랙리스트 공유가 고교에 경각심을 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 해결방법은 안 된다"고 말했다.

■ 무조건 폐지? 교육현장 혼란 초래 = 그러나 10만여 명의 학생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 데다 교대까지도 입학사정관제를 도입,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폐지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주호 장관은 지난 22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학부모 대상 입학사정관제 교육과정 개강식’에 참석해“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입법된 만큼 입학사정관제는 대선이나 정치 환경과 관계없이 잘 진행될 것”이라며 정책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때문에 이미 제도가 도입된 만큼 본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의 김종우 회장(서울 성수고 교사)은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한다고 해도 입시제도의 대안이 없다. 배치표 보고 대학 보내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실질적으로 고교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된 것은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대학에서 객관성 담보노력을 계속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가 정착될 것이라 본다”며 유지론에 힘을 보탰다.

안상헌 전국입학사정관협의회장도 “지금까지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 학생이 전국 10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한 두건 부정사례가 발생했다고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섣부르다”며 “정부와 대교협, 차기정권 역시도 부분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제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대학과 고교현장의 입시 분위기도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의 폐지는 수험생과 학부모에 입시제도 변화에 따른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강문식 전국입학처장협의회장은 “문제점이 있다고 해도 급격하게 폐지해선 안 된다. 제도 도입 이전이라면 모르지만, 이미 중학생까지도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은 혼란만 초래한다”며 “다만 입학사정관제 선발인원을 늘리는 등 그간 양적팽창에 치중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질 관리에 대한 지원으로 내적인 준비를 탄탄히 갖춰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폐지보다는 속도를 조절하고 질적관리를 통해 점차 정착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제도가 너무 급하게 추진되다보니 부작용이 속출한 것이다”며 “어떠한 제도가 도입되든 문제는 발생한다. 급격한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바로잡고, 정부지원 방식도 입학사정관제 질관리를 잘하는 대학에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속도와 방향 전면적 수정 '공감대' = 폐지론과 유지론이 모두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행 제도의 전면적 보수가 필요하다는 점과 기존의 수능시험 위주의 대입제도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대안은 있을까. 유지론측에서는 입학사정관제의 안착을 위한 조직과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안상헌 회장은 “입학사정관제의 존폐를 떠나 이제는 대학에도 학생을 선발하는 전문적인 조직과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입학사정관제도의 안착이라는 큰 방향을 유지하면서 비정규직이 절반인 입학사정관의 신분안정화를 위한 집중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동 소장은 “입학사정관제도가 유지된다면, 학생선발에 필요한 객관적인 데이터들을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며 “입학사정관제 취지는 지원자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살펴 선발한다는 것인데, 현재는 고교 학생부 기록에 너무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학생에 관한 자료와 기록들을 관리하는 행정적인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폐지론을 폈던 장은숙 회장은 “사실 입학사정관제는 참여정부 시절 사회소외계층에 한해 성적을 보지 않고 재능과 잠재력을 본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MB정부 때 전면적 확대되면서 스펙쌓기를 종용하는 제도로 변질됐다”며 “제도의 폐지가 아니라면 본 취지대로 점차 사회소외계층을 배려하는 쪽으로 옮아가고 교육여건이 다 같아 입시점수가 똑같다면 지방이나 시골 학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육환경과 입시제도 전반의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홍기돈 보좌관은 “입학사정관제 하나로 공교육 정상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며 “결국에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자격고사제(최소 성적 기준을 넘으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로 가는 교육환경과 입시제도전반에 대한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도입 300년 미국, 민간 전문협회가 전문성·신뢰성 확보>
해외의 입학사정관제는 어떻게 진화했나

입학사정관제의 선진 사례로 꼽히는 미국의 경우에도 입학사정관제 공정성·신뢰성 문제는 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제도 도입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입학전문가들은 “수백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정착 단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에도 잡음은 있었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의 대입시험격인 SAT(Scholastic Apt itude Test)의 대리시험이 문제가 됐다. 6명의 학생이 돈을 주고 시험결과를 샀다. 이 시험은 2003년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제출 서류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것. 이 때부터 시험에 쓰기 항목이 추가돼 필적을 비교하게 됐다.

입학사정관의 전문성과 제도의 신뢰성은 민간 전문협회를 통해 확보했다. 미국은 국내 한국대학협의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대학협의회를 비롯해 미국입학상담협회, 미국대학입학사정관협회, 교육개선보완협의회 등을 두고 있다. 입학사정관제 연구부터 데이터베이스 구축, 윤리강령 제정까지 세부적인 사항을 각각의 전문협회가 담당한다.

이들 협회는 입학사정관의 자질개발도 맡는다. 협회들은 입학사정관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연수와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대학입학사정관협회는 입학사정관의 자질을 13가지로 제시했다. 각 분야는 기초기술과 심화기술로 나눠 구체적인 개발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연구 분야의 자료 수집 기법으로 ‘다른 대학 사무실을 지속적으로 방문할 것’ 등을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입학사정관제의 정착은 국내와 다른 교육환경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과 비슷한 교육환경을 가진 일본은 도입 20년 만에 제도가 축소되고 있다. 와세다대는 이번해부터 정경학부 입학사정관 전형의 정원을 90명에서 50명으로 줄였다. 축소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문제도 비슷하다. △입학사정관 전형 준비와 수능공부의 병행 △모호한 선발기준 △제출서류의 신뢰성 부재 등이다.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학생의 학력저하 등도 지적됐다.

교육환경이 각기 다른 양국의 사례는 국내 입학사정관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입학관리팀 김병진 팀장은 “양국의 차이는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일본사회와 자율성을 강조하는 미국사회의 차이”라며 “일본의 교육은 우리와 유사해서 객관적 지표로 입시를 치러와 입학사정관제의 포괄적인 학생평가에 거부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 기자 jael@unn.net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