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교육부 국정감사가 역사 교과서 논쟁에 매몰돼 ‘정치공세의 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향후 대학입시에서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될 전망이기 때문에 교과서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다른 교육 이슈가 산적한 상황에서 여·야가 교과서 문제만 갖고 입씨름 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있었던 국감에선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을 증인으로 채택할지를 놓고 오전 내내 여·야간 공방이 오갔다. 의원들은 오후 3시 가까스로 국감 속개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교과서 문제로 첨예하게 대치했다.

사실 이번 국감을 앞두고 본지가 상임위원들을 대상으로 미리 조사한 결과에서는 고등교육 이슈에 대한 문제 제기도 적으나마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여전히 대학과 학생·학부모의 공통 관심사인 등록금과 국가장학금은 물론이고, 대입제도 개선안이나 국립대 기성회비, 대학 구조조정 문제도 당연히 국감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국감 시작 전에는 고등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아보였던 의원들이 국감 시작과 동시에 교과서 문제에만 천착했다. 국감장 한편에서는 “대한민국의 교육문제가 교과서 하나뿐인가”하는 개탄이 나올 정도였다.

매년 열리는 국정감사가 ‘정책국감’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여야가 정치적 목적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국감도 여야 의원들이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의 증인 채택을 두고 날선 공방을 벌이다 파행을 빚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야당 의원들은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우편향 논란을 낳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감장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여권도 질세라 여당 간사인 김희정 의원이 다른 교과서의 ‘친북’ 의혹을 들고 나왔다. 교과서에서 인용한 사료가 북한 책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박창식 의원은 “북한 책이 나오니 난리네”란 말로 다시 한 번 국감장을 뒤집어 놨다. 피감기관도 국감 파행에 한 몫을 보탰다.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은 “햇볕정책은 친북정책”이란 발언으로 이미 불이 붙은 국감장에 기름을 부었다.

상임위원들이 제시한 국감자료도 예년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모두 이번 국감이 교과서 문제로 점철될 것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 같았다. 이번 국감에서 제시된 자료는 작년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정감사는 유신 시절 폐지됐다가 민주화 직후인 1988년 부활했다. 올해로 국감이 부활한지 25년이 지났다. 그 동안 권력의 부정비리를 밝혀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도 올렸지만, 최근 들어선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교육관련 상임위는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로 명칭이 바뀌는 등의 변화는 있었지만 몇년 째 ‘불량 상임위’란 불명예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매년 국감 때마다 정치 이슈에 매몰돼 파행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피감기관은 국감이 정치 공세로 파행이 되면 오히려 부감을 덜게 된다. 국감 시작 전날 밤을 새 준비를 했다는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교과서와 무관한 실·국·과는 부담을 덜었다는 표정이다.

국감의 목적은 국민 혈세를 집행하는 피감기관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데 있다. 국감이 파행되면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손해를 본다. 국감 자체를 운영하는 데에도 국민 혈세가 들어가지만, 과도한 자료요구에 응하는 공공기관의 행정력 낭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는 31일에는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에 대한 확인국감이 예정돼 있다. 또 다시 교과서 문제에 매몰돼 국감이 파행을 겪는다면 국회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몇 년 째 불량상임위란 지적을 받고 있는 교문위가 이를 벗어날 기회는 아직 남았다. 매년 되풀이되는 피감기관의 비효율을 막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국감을 다른 상임위가 아닌 교문위에서 먼저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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