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학평가 한국에 물음을 던지다> ②유럽(영국ㆍ프랑스)

국가 재정지원과 연계하지 않는 평가, 대학 자발적 개선 기회 부여

본지에서는 창간25주년 특별기획으로 현행 정부주도 대학평가의 현황과 문제점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 대학평가’를 다룬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미국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대학 평가제도의 내용과 방식, 그 활용방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출처: 영국 배스대 홈페이지(http//www.bath.ac.uk)

[한국대학신문 백수현 기자] 영국과 프랑스 모두 국가로부터 대학평가와 관련된 고유한 권한을 인정받은 독립기구가 존재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일원적 평가인증을 실시함으로써, 적절한 수준의 교육 서비스와 높은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이는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력하고 명확한 기준에서 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평가결과 활용 측면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의 대학평가가 시설, 재정, 경영 등의 면에 치중하는 것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철저하게 학습자의 시선과 눈높이를 맞춘다. 프랑스 역시 감시와 처벌을 위한 평가가 아닌 대학의 자발적인 교육수준 개선을 유도한다.

■ 영국, ‘QAA’ 설립으로 일원적 평가시스템 구축= 영국은 대학을 설립할 경우, 국가가 정하는 대학설립기준 없이 국왕의 칙허에 의거해 설립된다. 이는 대학뿐만 아니라 도시나 공공기구 설립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대학이 외부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교육하는 전통으로 인해 1980년대 이전에는 대학별 교육 서비스의 질과 실행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1992년 3월, ‘계속 고등교육법’의 제정으로 변화가 맞았다. 대학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평가인증의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법에 따라 대학으로서의 법적 지위와 학위수여권을 부여하기 이전에 충분한 수준을 갖췄는지 확인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서 평가인증이 요구됐다.

이후 대학평가를 전국적으로 통합하고 보다 효율적인 평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1997년 새로운 평가기관인 ‘QAA(Quality Assurance Agency for Higher Education)’가 조직됐다. QAA는 국가로부터 평가인증과 관련된 고유한 권한을 인정받은 독립적인 기구이다. 고등교육기관이 국가에서 지정한 여러 기준을 충족시키고 교육의 품질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자율성과 다양성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QAA는 엄격한 대학평가를 실시해 주기적으로 그 결과를 공개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따라 재정지원에 있어서도 차등을 두고 있다.

■ 프랑스, ‘대학 자율성’ 존중하는 평가에 중점= 프랑스도 영국과 동일한 성격의 고등교육기관 평가담당 국가기구가 존재한다. 바로 2007년 발족한 ‘고등교육연구평가관리기구(AERES, Agence d’évaluation de la Recherche et de l’Enseignement Supérieur)’이다.

본래 프랑스에서는 상위 엘리트를 양성하는 그랑제꼴(grandes ecoles)과 일반대학이 별도로 존재하는 고등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각 대학 형태에 맞는 다양한 평가시스템이 존재해왔다. 1900년대 초반부터 현대의 평가인증과 유사한 제도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기존에 설립된 기관이 아닌 새로이 설립되는 학교에 초점을 둬 평가를 실시하는 등 유명무실한 체제로 존재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새로운 고등교육기관 평가 시스템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선 교육부 장관 클로드 알레그레(Claude Allegre)의 영향으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학평가 시스템의 체계를 잡아나갔다. 이어 1984년 고등교육법 제정으로 고등교육기관의 교육의 질과 수준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자율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의 평가가 주목받게 된다.

여러 과정을 거쳐 기존의 국가고등교육연구평의회(CNESER, Conseil National de l’Enseignement Superieur et de la Recherche), 국립평가위원회(CNE, Comite National d’Evaluation) 등을 하나로 통합한 성격의 ‘AERES’가 설립됐다. AERES는 독립적인 행정권한을 갖고 있으며, 다른 정부기관과 평가기관 등에 종속되지 않고 모든 평가결과와 보고서를 대중들에게 공개한다. 여기에는 평가의 절차와 방법도 포함된다. 평가를 담당하는 기관이 국가기관 하나라는 점에서는 정부 주도적이지만, 평가 기준이나 결과 활용 방식에 있어서는 각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 기준 미달하면 ‘개선’ 기회 부여= 영국의 QAA와 AERES의 이사회는 각각 17명과 25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직 교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QAA의 경우 교육기금위원회 위원, 전직 건축사 등록원 관계자, 기업 컨설턴트 등 전문직 종사자도 포함돼 있다.

기관을 직접 찾아 평가하는 방문 팀의 경우 QAA는 고등교육기관이 지명한 후보자 중에서 QAA가 선발하는 방식으로 선정하는데, 평가 간사는 일반기관의 중견 행정직원 중에서 선발한다. AERES는 교수를 비롯해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로 평가인단을 구성한다. 평가인단의 다양성으로 인해 보다 공정하고 질 높은 평가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평가는 두 기관 모두 △사전준비(서류심사) △방문 평가 △방문 후 단계(검토 및 수정)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QAA의 경우 해당 대학이 평가인증을 신청한 후 방문날짜가 공지되는 시기는 평가팀이 대학을 방문하기 약 52주 전이다. 평가기준은 아래 <표>와 같으며, 방문 팀은 세부 항목들을 기준으로 기관의 현재 상태를 다양한 차원에서 조망하면서 각 범주에 대해 3단계 혹은 4단계로 등급을 매겨 종합결과를 판정하게 된다.

학문적 기준에 대해서는 조건 충족, 개선 권고, 기준 미달 등 세 가지 등급으로 판정하고, 나머지 3개의 범주에 대해서는 상위 등급인 우수 판정을 추가한 4가지 등급으로 판정하게 된다. 모든 평가범주에서 개선 권고, 기준 미달 판정을 받지 않으면 평가인증을 수여하게 된다. 인증을 받지 못할 경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과 구체적인 방안을 담은 계획서를 추가적으로 작성해 송부해야 한다. 위원회는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기관의 변화와 실현 가능성을 판단해 이전의 판단을 상향 조정해 평가인증을 수여하거나 기각할 수 있다.

프랑스는 법률상 대학의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AERES가 별도로 설정하는 평가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이 사전에 제출한 자기평가보고서를 기본으로 전문가들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지를 평가하며, 개선 방향에 대한 피드백과 조언을 덧붙이는 식으로 결론을 내린다. 평가팀이 학교를 방문하면 기관 관리자, 경영진, 기관장을 비롯해 기관 소속 학생, 교수, 직원과의 심층 인터뷰를 갖는 것은 물론 교육프로그램을 검토한다.

■우리나라와 정부 주도 같지만, 평가목적ㆍ활용방식은 달라= 영국과 프랑스 모두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정부 주도형 대학평가를 실시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평가결과의 활용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대학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 결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우리나라와는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영국의 경우 해당 기관이 신청한 재정지원에 대한 타당성 검토나 질 관리 차원의 평가 등에 반영돼 국가의 보조금 지원과 연계될 수는 있지만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정부의 보조금을 활용하지는 못한다.

또한 대학평가가 ‘처벌’ 혹은 ‘감시’의 의미가 아닌, ‘대학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도 다른 모습이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자율성에 초점을 두고 대학이 자발적으로 교육수준을 개선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 각 대학기관의 상황에 맞지 않는 운영 실태와 재정, 경영 상태에 평가의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이 제출한 자체평가 보고서를 토대로 맞춤형 평가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출처: 영국 배스대 홈페이지(http//www.bath.ac.uk)

[영국의 대학인증평가 사례] 바스대, 학습기회에 대한 정보 ‘우수’
“보완과 개선 통한 ‘교육의 질 제고’의 기회로”

바스대(University of Bath)는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에 위치한 공립 종합대학이다. 5명의 평가자로 구성된 QAA 평가팀은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바스대를 찾아 평가를 진행했다.

평가 결과, △학업적 기준 △학습기회의 품질 △학습기회의 향상 정도, 이상 세 가지 항목에서는 ‘조건 충족’, △학습기회에 대한 정보 항목에서는 ‘우수’ 판정을 받았다. 종합하면 모든 평가 범주에서 조건 충족 이상의 판정을 받아 평가 인증을 획득했다.

평가보고서를 통해 언급된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학생의 참여를 극대화시키는 시도와 학생의 관점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하는 대학의 태도 △학생들의 취업 정보 제공과 지원에 최선을 다하는 것 △학생과 직원, 대중들을 위해 접근가능하고 유용한 최신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범 사례(Good Practice) 평가를 받았다.

또한 평가팀은 권고사항으로, △외부 심사관을 기관으로 인도하는 절차 △외부 심사관의 보고서를 학생들과 공유하기 위해 대학 기관의 감독을 강화할 필요성 △학습 파트너십 관계에 있는 기관의 일관성 있는 참여를 보장하고, 협력 파트너 직원과 학생 연락위원회 고문들과의 긴밀한 연계의 필요성 검토 등을 제시했다.

학교 관계자는 “평가 내용을 토대로 해 우수하고 획기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현행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개선점 및 확인사항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보완과 개선을 시도하겠다”며, “이번 평가를 계기로 더욱 높은 수준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표> 영국과 프랑스의 대학평가 기준(출처: 한국대학평가원)

영국

범주

세부 항목

학문적 기준

(Academic standards)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격기준을 충족시키는가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서 외부 심사자를 활용하는가

적절한 평가방법과 기준을 활용하고 있는가

적절한 프로그램과 기준을 설정하고 유지하고 있는가

프로그램의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가

학습기회의 품질

(Quailty of learning opportunities)

교수와 학습에 대해 전문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가

학생들의 학습을 위한 충분한 학습 자원을 활용하고 있는가

학생들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경영 및 관리 정보가 교육 수준 및 기준 향상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가

다른 대학과의 교류 및 입학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학생들의 불만사항과 요구사항을 적절히 수용하고 반영하고 있는가

취업 및 진로와 관련해 학생들에게 적절한 조언이 이뤄지고 있는가

장애학생들을 위한 충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국제교류학생들을 위한 충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과정 후 연구생들을 위한 충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학습이 상호협동적인 준비과정을 통해서 학습자에게 전달되고 있는가

유연하고 적절하게 분배된 이러닝의 활용 정도는 어떠한가

현장기반 학습 및 졸업 후 취업 알선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학생회의 활동은 학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뤄지고 있는가

학습기회에 대한 정보(Public information)

대중이 원하는 기관의 목적과 접근성, 신뢰도에 맞춰 정보를 생산 및 제공하고 있는가

학습 기회의 향상 정도(Enhancement of learning opportunities)

학생들의 학습 기회를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 단위에서 신중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

프랑스

법률상 대학의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AERES가 별도로 설정하는 평가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에 있어서도 등급을 매기지는 않는 질적 평가를 추구한다. 사전에 대학이 제출한 자기평가보고서를 기본으로, 이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하는 식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대학이 제시한 사항에 대해 전문가들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지를 평가하며, 개선 방향에 대한 전문가의 피드백과 조언을 덧붙이는 식으로 결론을 내린다. 각 대학은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의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이후 평가 시 그동안의 개선 노력과 후속활동 결과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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