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학생·대학원생 제치고 전국대회 입상…편견 이겨낸 ‘인내’와 ‘끈기’

[한국대학신문 백수현 기자] 지난 12월 13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서울호텔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와 국립전파연구원이 주최하고 한국전자파학회가 주관한 ‘2013 미래전파연구 아이디어 공모 및 창의설계 제작 경진대회’의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던 관람객들은 웅성댔다. KAIST, 연세대 등 내로라 하는 4년제 대학과 대학원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수상자들 사이에서 한 전문대학 학생의 이름이 보였기 때문이다.

■ 국내 최고 4년제 대학들 제친 전문대생의 ‘신념’= 화제의 주인공은 동양미래대학 정보통신과 3학년 이호상씨<사진>. 이씨는 동기인 이용범씨와 함께 창의설계제작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안테나 방사패턴 측정 시스템’은 안테나와 전파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측정해야 하는 안테나의 방사패턴 즉 전파를 어느 방향에서 잘 주고받는지를 스마트폰으로 쉽게 측정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해낸 작품이다.

이씨는 “대회를 준비하면서 밤샘은 부지기수였고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다가 실험실에 갇힌 적도 있었어요.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라는 무력감까지 들었죠”라며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지친 이씨를 번번이 일으켜 세운 것은 지도교수인 박군종, 유태훈 교수의 격려어린 지도, 그리고 ‘신념(信念)’이었다. 이씨는 “수상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믿겨지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드디어 우리가 해냈구나’라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무엇보다 세상이 저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켜온 제 신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올해 28세인 그는 사실 고교 졸업 후 수도권에 위치한 한 4년제 대학의 특수교육과에 입학했었다. 또래의 남학생들과 비슷한 길을 걷던 그에게 닥친 사고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군에서 병장 때 사고로 큰 부상을 당했어요. 지금은 팔을 어깨위로 높이 들지 못할 뿐이지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심각해 혼자서는 거동하지 못할 정도였죠. 몸이 아픈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상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는 거였어요. 평소 강조하던 전우애 대신 사고를 숨기기 급급한 사람들을 보며 큰 상처를 받았죠. 사람에 대해 상처받은 제가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어야 하는 특수교육을 전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 “기술이 살 길이다”= 힘겨운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이씨는 다시 일어서겠다는 결심으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 후 수능을 한번 더 치르고 25살이라는 나이에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고교 때까지도 인문계였던 이씨가 공업계열의 전공을 택한 것은 불편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기술’이 유용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전문대학을 택한 이씨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주변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는데 친구들이 제 선택을 많이 말렸어요. 저에 대한 기대가 크셨던 부모님도 실망감으로 저에게 냉랭하게 대하셨죠. 세상이 저를 인생의 패배자로 보는 것 같아 자괴감에 시달렸어요.”

그런 이씨를 붙잡아 준 것은 많은 이들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비난했던 ‘학교’였다. 1학년 1학기에 수강한 ‘정보통신개론’은 이씨가 학업과 진로 계획을 세우는 데 바탕이 됐다. 그는 “교수님들께서 정보통신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하나씩 맡아 팀 티칭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들으면서 ‘나도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변하니 공부가 재미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후 이씨는 달라졌다. 학기 중에는 교과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방학기간 중에는 토익과 전공 관련 특강에 충실하게 참석했다. 특히 ‘작품연구회’ 동아리에 가입해 교과과정에서 배운 이론들을 실제 작품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 설계, 제작, 측정,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연구에 중요하게 활용되는 네트워크 분석기기 같은 경우 1억원이 넘는 등 고가의 장비들이 많아요. 교수님들께서 연구자는 직접 만져보고 실험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며 장비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실습실도 24시간 개방해주셨어요. 다소 낯설고 어려운 내용도 끈기를 갖고 스스로 깨닫는 데 큰 도움이 됐죠.”

■ 인내와 실천이 만들어낸 ‘보석’= 이런 노력들을 바탕으로 4년제 대학 그것도 내로라 하는 명문대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가장 큰 성과로 ‘자신감’과 ‘자존감’을 꼽는다.

“‘세상이 전문대학이라는 꼬리표만 볼 때 그들이 보지 못하는 나의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리라’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믿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왔던 것이 잘한 일이고 옳은 일이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이씨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심화학위과정을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원석’이며, 원석을 얼마나 깎고 다듬어 가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씨는 “볼품없는 원석이라고 할지라도 인내하며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면 틀림없이 언젠가는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보석이 될 거예요. 누구나 아름다운 보석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전문대학 진학을 망설이는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제가 돌아온 길을 봤을 때, 전문대든 4년제 대학이든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방학인 현재도 영어공부를 하고, HFSS와 FEKO(3차원 고주파 전자장 해석 소프트웨어) 특강도 듣고 하면서 학기 중과 마찬가지로 노력하고 있어요. 지식과 기술을 동시에 갖춘 전문대 출신 학생들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전문대의 위상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 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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