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과 경쟁, 다양화 강조

*** 지난 1995년 김영삼정부의 ‘5·31 교육개혁’이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다. 최근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을 전가의 보도 삼아 교육계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한때는 국가의 자랑이었던 대학진학률 80%마저 최근에는 ‘비정상’으로 바뀌어 대학구조조정의 명분이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학구조개혁법안을 마련하고 간접적인 대학 통제방식 대신 직접 ‘칼자루’를 쥐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거센 구조조정의 광풍 속에서 정부의 규제강화로 위협받고 있는 5·31 교육개혁을 재조명하고 진단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고등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20년을 이끌어갈 교육적 가치와 방향, 지금 그 설계를 시작할 때다. <편집자 주>

정부의 대학통제 강화··· "5·31 교육개혁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교육의 시장경제화, 재정지원 통한 간접통제 등은 한계로 지적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정윤희·한철 기자] 자율과 경쟁, 창의, 다양화를 기치로 내걸고 우리나라 교육의 기본 틀을 재구성한 ‘5·31 교육개혁’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했던 가장 혁신적인 교육개혁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교육개혁안은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일부 보완을 거쳤으나 그 방향과 틀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물론 시장경제 이론을 원칙으로 교육을 재단하면서 공교육의 위기를 가져오는 등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 대학경쟁력의 강화, 교육 여건의 개선 등 과보다는 공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대한민국 교육, 5·31 교육개혁으로 ‘진일보’ = 5·31 교육개혁은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아우른 근본적인 교육전반에 대핸 개혁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로는 단연 교육여건의 개선이 손꼽힌다.

1995년 당시 우리나라의 교육체계와 재정지원 수준은 교육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전혀 뒤따라가지 못했다. 교육재정은 GNP 대비 4.04%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가입국 평균인 6.1%에 크게 못 미쳤다. 국립학교 교사 1인당 학생수는 33명으로 미국(19), 일본(21)은 물론 개발도상국인 말레이시아(20), 중국(22)보다도 훨씬 많았다. 유네스코 조사 대상국 194개국 중 120위에 해당할 정도로 참담한 수준이었다.

교육개혁 이후 교육예산은 꾸준히 늘어 2005년에는 GDP 대비 5%를 넘겼다. IMF를 겪으면서 끝내 교육재정 6%를 돌파하지는 못했지만,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의 법정교부율을 상향조정하는 등 재정 건정성을 크게 개선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올해 교육예산 규모는 다시 GDP의 4.55%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20년 전에 비하면 양호한 규모다. 2013년 현재 교원 1인당 학생수는 초등학교 15.3명, 중학교 16.0명, 고교 14.2명으로 개선됐다.

■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대학의 시대적 소명 실현 = 최근 들어 대학 난립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며 비판을 받지만 대학설립 준칙주의, 정원 자율화로 고등교육 기회를 확대한 것도 하나의 성과로 평가된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는 학력 간 임금 격차가 심화되고 학력이 승진에 중요 잣대가 되는 등 철저한 '학력지상주의' 사회였다. 당시 노동부 발표 '임금실태분석'에 따르면 1993년 말 학력 간 임금격차는 고졸을 100으로 볼 때 대졸 150, 중졸 89로 현격했다. 기업체나 관공서의 경우 학력에 따라 승진·승급 기회를 제한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민적인 열망이 높아지면서 대학 수도 크게 늘었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 수는 1994년 131개교였으나 교육개혁으로 최소 설립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는 준칙주의가 도입된 이후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4년제 일반대학은 188개교로 늘어났다. 이러한 준칙주의는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정원감축, 대학 수 줄이기의 원인(遠因)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 진학률 열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대학진학률은 1994년 45.3%에서 교육개혁이 시행된 1995년 51.4%로 처음 절반을 넘겼다. 이후 2000년 68%, 2005년 82.1%로 크게 증가했으며 2008년에는 83.8%로 정점을 찍었다. 2010년에는 79%를 기록하면서 현재는 70% 대에 머무르고 있다.

■ 입시 자율화…대학별 ‘인재상’ 맞춤형 전형 등장 = 대입제도도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면개편 됐다. 우선 국공립대는 1997학년도부터 국·영·수 위주의 대학별 고사를 폐지했다. 고교 종합생활기록부는 필수 전형자료로 부상했다. 또한 종합생활기록부 이외에 수능과 논술, 면접, 실기도 선택 전형자료로 분류돼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활용 가능해졌다.

대학의 자율성은 점차 확대 돼 수시모집과 가·나·다 군별 모집 등 모집시기 선택부터 대학별 인재상에 맞춤한 대입전형의 개발도 가능해졌다. 배영찬 한양대 입학처장은 “과거 학력고사나 수능은 정부가 학생들을 줄을 세운 개념이라면 오늘날 학생부종합전형 등은 대학에게 학생 선발권을 완전히 이양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 교육의 시장경제화 초래…정부 규제도 그대로 = 그러나 5·31 교육개혁으로 시장경제 원리가 교육에 도입됐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는 “5·31 교육개혁은 미국의 ‘미국 2000’ 교육개혁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며 “당시 우리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너무 급하게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을 도입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자율과 경쟁을 기본 가치로 내세웠지만, 평가연계 재정지원 방식으로 대학에 대한 통제는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정부가 직접 칼자루를 쥐진 않았다고 해도 대학 자율화 측면에서는 거의 나아진 것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 교수는 “교육개혁 이후 정부는 평가를 통해서 재정지원을 차등 지원하는 전략을 도입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며 “정권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평가지표를 적용하고 이를 통해 대학을 지원해왔다. 대학들은 사업을 따내기 위해 정부의 입맛에 맞춰야만 했고, 특성화를 내세웠지만 비슷비슷한 특성화가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박스) 세계의 교육개혁, 정권 바뀌어도 지속 추진

WTO 체제 출범으로 국제화·개방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세계 각국은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지식기반 경제사회로 접어들면서 고급두뇌의 양성과 확보가 곧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공통의 인식도 존재했다.

주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교육개혁의 공통분모는 자율성과 효율성·평생교육의 확대 그리고 정부의 일관된 고등교육정책을 들 수 있다. 특히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일관된 교육정책은 한국사회에 시사점을 안겨준다. 미국은 1980년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 영국은 1979년 대처정부 이후로, 일본도 자민당 정권 하에서 교육체제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들 국가의 일관된 정책추진은 고등교육이 안정된 기조 속에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이다.

■ 미국, ‘성과중심 예산편성체제’로 재정 효율성 강조 = 미국은 1991년 ‘미국 2000’, 1994년 ‘목표 2000: 미국교육법’, 1997년 ‘21세기 미국교육을 위한 행동강령’을 통해 국가경쟁력 제고와 교육기회 균등이라는 교육개혁 목표를 지속적으로 계승했다.

미국 정부는 ‘21세기 연구기금’을 마련해 기초과학·응용연구 분야에 균형적으로 연구비를 늘려나갔다. 동시에 대학 재정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성과중심 예산편성체제’를 운용해 대학예산 배정시 교육성과와 연계시키는 방안도 이때 추진됐다.

학령기 이외의 성인들에게도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대학교육을 평생학습체계로 연계했다. 또 외국인 유학생 유치 등 고등교육의 세계화에도 발 벗고 나섰다.

■ 영국, 평생학습의 실현 ‘대전제’ = 영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평생학습사회의 실현’이란 대전제 하에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해왔다. 1997년 고등교육평가위원회는 ‘학습사회에서 고등교육 보고서’를 통해 평생학습사회의 구축을 실행하기 위한 고등교육의 기본방향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학습사회를 모든 국민이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평생학습에 참여하는 사회’라 규정하고, 고등교육은 학습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창출해 국민 모두에게 평생학습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1997년에는 기존의 교육부와 고용부가 통합해 ‘교육고용부’를 신설하고 ‘산업연계대학’도 설립했다.

■ 일본, 학력주의·서열화·획일화 타파 = 일본은 1991년 대학설치기준령을 제정해 특색 있는 교육 및 연구를 전개할 수 있도록 했다. 학력주의와 서열화, 획일화 등을 벗어던지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학에 대해 자기점검 및 평가를 실시해 경쟁력 향상을 도모했다. 이를 위해 대학교육과정을 개혁해 이수과목 구성을 폐지하고 교육과정 구성의 최소한의 기준만을 제시했다. 나머지는 자율에 맡겼다. 이러한 교육개혁으로 △과제탐구능력 육성을 겨냥한 교육연구의 질 향상 △교육연구 시스템의 유연화에 의한 대학의 자율성 확보 △책임 있는 의사결정과 실행을 위한 조직운영체제의 정비 등의 성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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