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본지 논설위원·서울여대 교수/ACE사업단장)

유독 방향감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 ‘길 눈이 어두운 사람’ 속칭 ‘길치’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이런 길치는 통계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많다. 사람의 두뇌 중에서 맨 바깥쪽인 대뇌 신피질의 최상부 두정엽은 길치 여부를 가늠하는 공간지각력을 주관한다. 여성은 많은 영역에서 뛰어나지만 두정엽에서의 공간지각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래서 앨런피즈는 자신의 책 제목에서 이러한 차이점을 극명하게 표현했다.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분명 여성은 남성과 다르다. 이것은 능력이 많고 적음, 힘이 세고 약함의 차원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 창조주가 아담으로부터 아내 하와를 만들 때 잠든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왜 아담의 머리뼈도 아니고, 아담의 발가락뼈도 아닌 정중앙에 있는 갈비뼈이었을까? 여자와 남자는 분명 다른 존재이지만 이것이 높고 낮음, 지배와 피지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지 못함을 상징한다. 여성의 다름을 인식하고 그에 맞추어 대응하는 것은 더 이상 약자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갖추어야할 ‘성숙’의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다름을 인식하는 것은 대학교육에서 절실하다. 공학 분야에서만 해도 전공분야의 성격상 남성 중심적 교육방법론이 그동안 주류를 이루어 왔다. 전체 학문 분야 가운데 의료 분야를 제외하고 취업률이 가장 높은 분야가 공학 분야이지만, 공학 분야의 남성 중심적 흐름은 이 분야에 있어서 여대생들의 진학률은 물론 취업률도 뚝 떨어뜨렸고 이것이 전체 취업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역사상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여성이었다. 에이다(Ada)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유명한 시인 바이런의 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공학 분야에서의 프로그래밍 교육은 언제나 남성 중심적 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 ‘성 인지 교육’(gender-sensitive instruction)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 들어 미국의 일부 대학에서 여성의 다름을 인식하며 공학 분야를 중심으로 성 인지 대학교육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우리 대학교육에도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청년 프리랜서 중에서 남성의 비율은 36.5%이고 여성의 비율은 63.5%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여성들은 가정을 기반으로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며, 재택근무는 물론 SOHO 창업의 트렌드는 여성을 중심으로 더 확산될 것이다. 그런데 재택근무나 SOHO 창업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겪게 되는 여성의 갈등과 어려움은 예상보다 크고 심각하다. 직장과 가정이 공간적으로 혼재된다는 것 자체가 멀티 플레이어 여성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가정과 직장의 공존에 따른 미래의 홈 시뮬레이션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은 여성의 다름을 인식하는 차원에서 지금부터 우리가 준비해야할 과제이다.

우리 대학교육은 이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획일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 아울러 여성의 다름에 대한 인식도 없이 획일적 취업률로 평가하는 데서도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성 인지적 차원에서 대학교육 및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하게 변화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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